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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기술은 자연으로 돌아가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 마거릿 와일드, <할머니가 남긴 선물>

지구 상에 태어난 모든 것들은 언젠가는 다시 땅으로 돌아갑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죽음이라고 말합니다. 다 아는 것이지만 죽음은 세상에서 가장 슬픔 이별이기도 합니다. 다시는 만나지 못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사람들은 더더욱 죽음을 두려워하고 무서워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먼저 떠난다는 것,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떠나보내야 한다는 것, 둘 모두 견디기 어렵고 상상만으로도 눈물이 그렁하고 맺히는 건 모든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입니다.



자연스럽게 나이를 먹고 늙게 되어 자신의 죽음이 멀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면 사람들은 천천히 떠날 준비를 조금씩 합니다. 그중에 꼭 해야 하는 것이 주변 사람들이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시간을 주는 것인데요, 그 이유는 그 시간을 갖지 못하게 되면 슬픔과 두려움, 그리고 그리움이 우리의 몸과 마음을 겉잡을 수없이 상하게 하고, 그렇게 되면 일상생활을 하는 것이 불가능해지는 위기에 놓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림책 <할머니가 남긴 선물>은 죽음을 준비하는 할머니 돼지와 할머니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손녀 돼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왠지 상상만으로도 슬픈 이야기일 것 같죠? 하지만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어차피 죽음을 피할 수 있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없으니까요. 대신 할머니는 손녀가 담담하게 이별을 받아들이도록 준비합니다.



할머니 돼지와 손녀 돼지는 항상 모든 것을 함께 합니다. 할머니가 밥을 하면 손녀 돼지는 집안일을 합니다. 할머니가 꽃을 심으면 손녀 돼지는 물을 줍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할머니는 기운이 없으신지 아침밥을 드시지 않네요. 손녀 돼지는 할머니가 걱정이 됩니다. 할머니가 누워 계신 동안 손녀 돼지는 할머니가 했던 일까지 도맡아 하고 혼자서 밥도 먹었습니다. 매일 할머니와 함께 하다 이제는 모든 걸 혼자서 하려니 외로운 건 어쩔 수가 없네요.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기운이 나셨는지 할머니는 정리 해야 할 일이 많으시다며 가방과 모자를 주섬주섬 챙기고 외출 준비를 하십니다. 손녀 돼지는 할 일이 많다는 할머니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차렸습니다. 그건 할머니가 하늘나라에 갈 준비였으니까요. 죽음을 막을 수도, 그렇다고 죽음을 도와드릴 수도 없는 손녀 돼지는 너무나 슬프지만 잘  참아냅니다.


집으로 돌아오신 할머니 돼지는 손녀 돼지에게 돈을 건네줍니다. 그리고 이 돈을 현명하게 쓰라고 당부하네요. 여러분도 알겠지만 돈은 쉽게 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얻어지는 건 더더욱 아닙니다. 그래서 어른이 되면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현명하게 쓰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돈을 모으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쓰는 데는 몇 시간도 걸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할머니 돼지는 손녀 돼지와 함께 마을을 돌아다니며 아름다운 풍경들을 보기 위해 밖으로 나갑니다. 할머니는 스치는 모든 것, 보이는 모든 것, 느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기 위해 눈을 감고 피부로 느낍니다. 햇살, 바람, 강가에 비친 풍경, 새소리, 톡톡 떨어지는 빗방울 냄새들… 이 모든 것들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모든 것이 새삼 새롭고 경이롭게 느껴집니다. 햇빛에 반짝이는 나뭇잎, 물 위에 반사된 풍경, 그리고 비 맛까지도 뭔가 다릅니다. 아무래도 할머니가 몸으로 자연을 느끼시는 걸 보니 할머니는 자연으로 돌아갈 때가 다 된 듯합니다.      


그렇게 마지막 산책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손녀 돼지는 이제는 익숙하게 혼자서 귀리죽을 쑤어 먹고 설거지를 하고 찬장 정리를 합니다. 이제 요리는 할머니 없이도 혼자 할 수 있습니다. 비록 할머니가 만들어주신 음식을 이제는 먹지 못하지만 손녀 돼지는 괜찮습니다. 그동안 혼자서 하는 연습을 했으니까요. 밤이 되고 손녀 돼지는 할머니를 살포시 안고 잠이 들었습니다. 오늘의 밤은 손녀에게는 흔한 밤이지만 할머니에게는 더 이상 오지 않는 마지막 밤입니다.      



이별이란 마음을 아프고 상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누군가 나를 떠나는 것, 혼자가 된다는 것은 가장 불안하고 두려운 일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불안을 견디지 못해 일상의 생활을 하지 못하고, 심각하게는 우울증이란 병을 앓기도 합니다. 그런데 만약 손녀 돼지가 할머니의 죽음을 두렵다고만 생각하며 매일 울거나, 혼자서는 밥도 먹지 않거나, 무섭다고 잠도 자지 않는다면 할머니는 어떤 마음이 들까요? 아마 손녀 돼지 걱정만 하다 할머니마저도 죽음이 두렵다고 느낄 겁니다. 하지만 할머니가 편히 마지막 밤을 맞이할 수 있었던 건 손녀 돼지가 할머니의 죽음 앞에서 담담히 혼자서도 잘 지내는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슬퍼하지 않길 바라는 할머니의 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자연에서 태어난 모든 것들은 반드시 자연으로 돌아가게 마련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영원함을 가르쳐주는 기술뿐 아니라 이별 혹은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기술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사랑의 반대말을 죽음이라고 생각하거나 죽음은 나쁜 것이라 생각하며 지나치게 슬퍼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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