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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기술에는 시간을 천천히 흐르게 하는 비밀이!

-상드라 푸아로 셰리프, <까치가 물고 간 할머니의 기억>

신이 인간에게 준 선물 중 하나가 무엇인 줄 아나요? 바로 망각, 즉 기억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살면서 좋은 일은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고, 나쁜 일이나 슬픈 일은 빨리 잊어버리고 싶어 합니다. 좋은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웃음을 짓게 하지만 나쁜 기억은 떠올릴 때마다 불쾌함을 주기 때문이죠. 그런데 나쁜 기억뿐만 아니라 좋은 기억도 모두 사라지게 하는 슬픈 병이 있습니다. 이것을 사람들은 치매라고 부릅니다. 치매는 기억을 점점 잃게 만드는 병입니다. 이 병은 나쁜 기억만 가져가면 참 좋겠지만 불행하게도 좋은 기억까지 모두 가져가는 안타까운 병이기도 합니다. 만약 여러분의 사랑하는 사람들, 이를테면 할머니, 할아버지, 아빠가 엄마가 치매에 걸려 여러분의 얼굴을 조금씩 잊어버리게 된다면 어떨까요?    


   <까치가 물고 간 할머니의 기억>은 치매에 걸린 할머니와 그런 할머니를 너무나 사랑하는 할아버지의 이야기입니다. 할아버지는 점점 기억을 잃어가는 할머니를 위해 엄청난 발명품을 만들어냅니다.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하죠?       




자동차 위에 올라가 하염없이 까치를 쳐다보고 있는 할머니가 있습니다. 할머니는 까치가 할머니의 자동차 열쇠를 훔쳐간 못된 도둑이라고 생각합니다. 열쇠가 없으니 운전을 할 수 없게 된 할머니는 어쩔 수 없이 차를 두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아, 그런데 피자는 벤치에 그냥 두고 가시네요. 아무래도 할머니의 것 같은데 말이죠.

돌아가는 길에 할머니는 땅바닥을 살펴봅니다. 혹시나 까치들이 땅바닥에 보물 창고를 만들어 놓곤 할머니의 열쇠를 숨겨놨을 수도 있으니까요. 정말로 까치의 보물창고 같은 게 있다면 좋겠습니다.  어쩌면 할머니의 잃어버린 기억도, 벤치에 두고 온 피자도, 자동차 열쇠도 있을지 모르잖아요.


피자를 사러 간 할머니가 돌아오지 않자 할아버지는 걱정이 됩니다. 할머니는 점점 기억을 잃어가는 병이 있었거든요. 저기서 걸어오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고 마음을 쓸어내린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따뜻하게 안아줍니다. 할머니가 집을 찾지 못할까 봐 걱정을 많이 하셨나 봐요.  할아버지는 저녁에 먹기로 한 피자는 어디에 있냐고 할머니에게 물어봅니다. 그런데 할머니는 피자에 대한 기억은 하나도 없네요. 벤치에 놓고 왔다는 건 까치와 우리만 알고 있을 뿐입니다.    

  

할아버지는 옆에서 잠든 할머니를 바라보며 하루하루 지나면서 사랑하는 자신도, 사랑하는 아이들도 기억하지 못하는 그날이 빨리 올까 봐 마음이 아파옵니다. 그 시간을 최대한 늦추고 싶은 할아버지는 무언가를 만들기로 합니다. 며칠이 걸려 완성된 선물을 가지고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찾습니다. 할아버지가 만든 건 무엇이었을까요? 얼핏 보니 옷인데요, 희한하게도 여러 개의 창문이 달려 있고 열 수 있는 신기한 드레스입니다. 옷에 달린 창문을 열고 자세히 살펴보니 세상에, 할머니의 아름다운 기억들이 곱게 꿰매져 있네요. 젊은 시절에 할아버지와 데이트했던 사진, 할머니의 산책로를 그려놓은 지도, 집 주소, 핸드폰 번호, 오늘 해야 할 일, 사랑하는 가족사진, 할머니만의 빵 만드는 비법, 그리고 평생을 함께 하기로 할머니와 약속했던 그날의 사진까지.  비록  할아버지는 기억을 잃어가는 병을 고쳐줄 수는 없지만 할머니의 기억을 되도록 천천히, 느리게 사라지게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을지도 모릅니다.  




많은 아이들은 엄마와 아빠가 백 살까지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엄마 아빠와 오래오래 함께 사는 것만큼 좋은 것도 없지요. 그런데 막상 어른이 되고 나면 오래 살고 싶은 바람보다 시간이 천천히 흘러갔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커집니다. 지금의 소중한  기억들과 추억을 잊지 않고 싶기 때문이에요. 할머니를 위해 만든 할아버지의 드레스는 할머니의 시간이, 할머니의 기억이 천천히 지나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만든 것입니다. 


시간을 이길 수 있는 건 어떤 것도 없습니다. 내가 성장한 만큼 엄마와 아빠는 그만큼 늙게 마련인 것처럼 말이죠. 그리고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것 역시 어떤 것도 없습니다. 내가 다시 아기가 될 수 없듯이 말이죠. 하지만 사랑은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시간을 기억이란 이름으로 조금 천천히 가게 만들 수는 있습니다. 기억을 잃어버리는 병에 걸린 할머니를 낫게 해 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천천히 잊게 만들 수 있는 유일한 기술이 할아버지의 사랑이듯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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