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자연을 가르친다는 것
산 밑에 지어진 정남향의 집이라 해가 빨리 뜨는 이유도 있지만
이상하게도 시골의 아침은 일찍 시작된다.
시내 공기와 달라서 그렇다는 사람도 있고
낯선 환경 때문에 그런 것뿐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뭐 둘 다 가능성 있는 말이다.
그런데 사실 빨리 눈을 뜨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온갖 새들이 잔디밭에서, 나무 위에 앉아서 떠들어대는
소리 때문이다.
아침부터 뭔 할 말이 그렇게 많은지.
아이 역시 전원주택으로 이사한 후,
일곱 시 반이면 일어난다.
눈뜨면 씻지도 않고 자전거를 타러 나가자고 신발을 신는다.
집 앞 개울가를 지나
뽕나무에 매달린 오디를 따먹으러 가는 게
하루의 시작이다.
절대미각인가?
오디가 너무 맛있단다.
사실 난, 뽕나무와 오디를 지금까지 살면서
본 적이 없었다.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물어볼 일도 없었고 물어봐도 사실 대답해줄 만한 사람도
없었다.
뽕나무에 열린 오디열매를 열두어 개 정도 따먹으면 오늘 수확 할당량은 끝이 난다.
아직 오디 철이 아니라 익은 게 얼마 없기도 하지만, 오늘 다 따먹으면 내일 다시 왔을 때 먹을 게 없게 되는데 그럼 아이가 실망할 수도 있으니 아이에게 고지한다.
"오늘 욕심내서 다 먹으면 내일은 먹을 게 없어."
그럼, 망설일 법도 한데 이 아이는 뻗은 손을 다시 접고는
"그래. 안 먹을게"
하고 뒤도 안 돌아보고 간다.
대형 마트, 아울렛이 익숙한 도시 생활을 했을 땐
내 배가 불러도, 나에게 필요가 없어도, 당장 쓰지 않아도 우선 사놓고, 쟁여놓고, 전시해 놓는 게 습관이었다.
결국
반은 썩어 버리고, 필요 없어 버리고, 촌스러워서 버리게 되었지만.
자연을 옆에 두고 살다 보면
우리의 욕심이 때때로 대자연의 것을 뺏는 것을 넘어 얼마나 치명적인 상처를 줄 수 있는지
피부로 느낀다.
아스팔트로 덮여 숨을 쉴 수 없게 된 흙길, 풍광을 위해 잘려나가는 고목들의
비명소리가 들리는 걸
환청이라고 말하기엔 너무나 선명한 절규다.
열댓 개 따먹은 탓에 손톱 밑이며 혓바닥이며 입이 검게 물들어 씩~하고 웃는 아이가
많이 따자고, 따서 집에 가져가자고, 더 먹겠다고,
욕심부리지 않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자연에 대한 예의가 무엇인지 조금은 알아가는 것 같아
마음속으로 기특하다.
아무리 아껴도 똥이 되지 않는 유일한 건 대자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