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Ich bin ein Berliner”

by 배광효

해운대 주간 일기 20 – “Ich bin ein Berliner”


1980년, 고등학교 3학년으로 대학입시에 매진하고 있을 때이다. 아침에 등교하면 보충수업도 있고, 자율학습도 있어 밤 10시가 되어야 학교를 마쳤다. 거의 3년간을 함께한 전라도 사람 하숙집 아주머니는 음식 솜씨가 좋았고, 특히 김치를 맛있게 담았다. 고성에서 온 룸메이트와 3년을 함께했으니 어지간히 잘 맞추어 지냈다는 생각이다.


그해 5월 어느 날 하숙집 아들이 안 보여 물어보니 광주에 갔다가 나올 수 없어 통행이 풀리길 기다리는 중이라고 한다. 그 후 통행금지 조치가 풀려 집으로 온 아들로부터 우리는 그때의 광주 상황을 어름 풋이 들었다. 시위하는 이야기, 탱크가 진입하는 이야기, 총칼을 탈취했다는 이야기, 광주로의 통행 진입과 진출이 안 된다는 이야기 등등.


그 광주가 40여 년의 세월을 보냈다.

윤 대통령의 5.18 기념식 참석을 계기로 여러 가지 말들이 있기에 궁금증이 생겨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의 기념식과 비교를 해 보았다.


우선 형식의 면에서 크게 차이가 없다.

여자 아나운서가 단독으로 개식, 국민의례, 헌화·분향, 경과보고, 기념사, 기념공연,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의 순으로 진행하였다. 과거 보수정권의 대통령이 차량으로 식장을 왔다면, 윤 대통령은 정문을 통해 도보로 입장하였고, 17년엔 대통령 여사님이 참석했으나 22년엔 참석하지 않았으며, 기존 보수정권에서 논란이 되었던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논란 없이 진행했다. 참석자의 일부는 손을 아래위로 흔들면서, 일부는 옆 사람과 손을 잡고 앞뒤로 흔들면서 노래를 불렀다. 통일된 모습이 없다는 것은 아직도 서로 다른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17년이나 22년이나 정부 관계자들은 대체로 손을 잡고 불렀고, 단체나 시민들은 손을 아래위로 흔드는 모습이었다. 정부의 기념식에 형식의 통일이 필요하다.


내용면에서는 많은 부분에 생각의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17년이 눈물과 애환이 깃들인 감성의 장이라면, 22년은 무미건조한 이성의 장이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17년 기념식에서는 5.18의 아픈 기억을 되새기고, 외면할 수 없는 분노와 부채감을 언급하고, 눈물을 흘리고, 보듬어 주고, 진상규명과 책임규명을 밝혀 참석자들의 박수도 제법 나온다. 하지만 22년 기념식은 5.18을 이해하고, 인권과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책임 있게 계승하겠다는데 방점을 두어 무거운 분위기다.


기념공연도 17년에는 ‘슬픈 생일’, ‘그대와 꽃 피운다’, ‘상록수’ 등의 노래로 눈물과 아픔에 주안점을 두었다면, 22년에는 ‘오월의 노래’, ‘나의 5월은 … ’, ‘행복의 나라로’ 등으로 희망 가득한 오월, 행복의 나라를 지향하는데 초점을 두었다.


특히 22년 기념사에서 “자유와 정의, 그리고 진실을 사랑하는 우리 대한민국 국민 모두는 광주 시민입니다.”라는 말을 대통령이 직접 추가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 말은 존 F. 케네디의 연설을 인용한 것이다.


위키 백과를 보면, “나는 베를린 사람입니다(Ich bin ein Berliner)”라는 말은 1963년 6월 26일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 서베를린의 라트하우스 쇠네베르크에서 한 연설에서 한 유명한 말이다. 이 말은 그 당시 했던 연설 전체를 가리키기도 하는데, 이는 케네디가 한 연설 중 최고라 여겨진다. 이 연설은 소련의 지원 하에 베를린 장벽이 세워진 후 동독이 언제 자신들을 침략하는지 모른다는 불안을 안고 있던 서베를린 시민을 격려하기 위한 것이었다. 연설 당시 케네디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 2000년 전, 가장 자랑스러운 말은 ‘나는 로마 시민입니다(라틴어: Civis romanus sum)’였습니다. 오늘날, 자유세계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말은 단연 ‘나는 베를린 시민입니다(Ich bin ein Berliner)’일 것입니다. (중략) 모든 자유민은, 그 사람이 어디에 살건 간에 그 사람은 베를린의 시민입니다. 고로, 자유민으로서, 전 ‘나는 베를린 시민입니다(Ich bin ein Berliner)’라는 이 말을 자랑스레 여길 겁니다!”. 이러한 발언은 당시 중앙유럽 공산국가들을 겨냥한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동독 및 소련에 맞서 서베를린을 지키겠다는 단호한 어조가 담긴 발언이기도 했다.


나의 광주의 페친은 “5.18은 군인의 힘으로 시민들의 정치적 표현을 억누르는 것에 맞선 광주시민들의 장엄한 민주화 투쟁,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라고 말한다.


이제는 5.18 민주화운동이 광주만의 것이 아니라 4.19나 부마 민주항쟁처럼 전 국민 모두의 것이 되어야 한다. 더 이상 광주가 홀로 서 있지 않았으면 한다. 달빛동맹이 그립다.


오늘 노무현 대통령의 추모식이 있는 날이다. 많은 분들이 함께한다고 한다. 너무 지나치면 또 다른 갈등을 낳는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22.5.22)

#해운대 #5. 18 #기념사

20. 윤, 문대통령 5.18기념사, 오마이뉴스22.5.18.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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