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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광효 Oct 23. 2023

68. 아들도 서울로 상경했다.

해운대 주간 일기 68 – 아들도 서울로 상경했다.


주말에 아들이 서울로 상경했다. 둥지를 떠나 세상으로 나아간다.

오늘부터 첫 출근이다. 설레는 마음이 가득할 것이다. “아빠 갔다 올게” 심플한 말 한마디 남기고 갔다. 상경의 두려움과 첫 출근의 긴장감을 어찌 떨칠 수 있을까. 특히 근무지가 공사의 최일선 현장이니 걱정도 될 텐데. 내색하지 않는 모습이 대견하다. 나의 서울 첫 상경을 되돌아보면서 나도 한마디 “잘해라, 조심해라” 그리고 “도전하다가 쉬어가고 싶을 때 언제든지 돌아오면 따뜻한 밥은 주마”


유치원 나이에 아빠 따라 이국 땅 미국 미시간으로 갔었다. “thank you”라는 영어 한 마디도 못하고 미국의 Kindergarten에 입학했다. 선생님이 말을 할 때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뒤에서 멀찍이 무심한 표정으로 친구들을 응시하던 모습이 선하다. 낯선 환경에 어떻게 적응했을까. 얼마나 힘들었을까. 늘 미안하다.


그냥 보통의 학생처럼 중, 고교를 졸업하고, 부모를 떠나고 싶었는지, 부모가 형편이 어렵다고 생각했는지 부산의 사립대를 마다하고 인근 지역의 국립대로 떠나갔다. 상근예비역의 판정을 받고도 현역으로 복무하고 싶다고 전방부대에 지원했던 것과 꼭 학생회 간부를 하고 싶다고 전공 자격시험도 뒤로 하고 그 일에 매진하는 걸 볼 때는 아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난 86년 행정고시 1차 합격하고 서울에 첫발을 디뎠다. 

고속버스를 타고 올라가 처음으로 지하철도 타보고, 신림동 고시촌으로 갔다. 2주간 머무르면서 2차 시험을 치르는 선배를 뒷바라지하면서 2차 시험을 준비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신림동은 사다리를 오르거나 꿈을 좇는 수험생들과 고시촌, 이들과 공존하는 학원들이 살고자 피 터지는 치열한 경쟁을 하는 곳이었다.


다음 해, 87년 5월 나도 첫 출근을 하러 다시 서울로 상경했다.

연수원 주변에 하숙집을 구하기 전까지 인천에 있는 선배 집에서 신세를 졌다. 신혼을 만끽할 시기에 불청객 후배를 받아준 선배와 형수님께 늘 고마움을 갖고 있다. 그 당시 지하철 1호선은 승객은 그냥 짐이었다. 푸시맨들이 승객을 밀어 넣기를 수차례 해야 열차가 출발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낯선 서울생활이 시작되었다.


낯선 새로운 환경에의 도전은 이때부터 시작된 것 같다.

무모한 도전 같았던 독일 유학은 난감 그 자체였다. 독일의 폐쇄적 문화와 정보의 부족은 한국에서 온 유학생이 적응하기엔 힘겨웠다. 그 당시에 적응을 못해 귀국했다가 다시 출국하는 유학생도 있었다. 학문을 하는 유학생들도 등록금이 없는 것과 궁핍한 생활로도 살아갈 수 있는 대학환경 때문에 어려운 시간을 잘 견디는 것으로 보였다. 사람은 도전하면서 성장하는 법을 배우는 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고향을 다녀왔다.

뒷산을 보니 숲이 무성하다. 사람이 발을 디디기도 어려울 것 같다. 저곳이 어릴 적에 내가 놀던 놀이터인데. 누가 먼저 올라가는지 내기도 하였고, 뛰어다니면서 전쟁놀이도 했으며 또 숨바꼭질도 했다. 나무라고는 전부 베어 땔감으로 쓰고, 풀이 조금만 길어도 베어서 소먹이에 사용했다. 뒷산은 민둥산 그 자체였다. 뒷산이 변하듯 내가 가만히 있어도 세상이 변한다. 또 사람이 세상의 변화를 이끌기도 한다. 난 이 환경에 어떻게 적응해서 살아왔고 살아가는가.


아들이 낯선 환경에 잘 적응해서 살아갔으면 좋겠다.

“살아남는 자는 가장 강한 자도, 가장 현명한 자도 아닌 변화하는 자다”

옛 석학의 글을 떠올린다.(23.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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