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2-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입장에서 사건을 재구성한다지만 할머니의 이야기에는 늘 그 이상이 있었다. 6.25 부산 피난 시절, 무지와 고통으로 가득 찬 시대적 배경 속에서 할머니는 끝내 다리를 내어주고 왕자님 대신 지식을 쟁취한 훌륭한 신여성 인어공주가 된다. 신체가 불편하지만 공부를 잘했던 할머니와 빼어난 외모에 호탕한 성격의 할아버지의 운명적 이끌림은 6.25, 세계 2차 대전, 독일 등으로의 간호사 파병 등의 시대적 배경을 등에 업고 로미오와 줄리엣의 뒤를 잇는 희곡이 된다. 아 이곳이 동화였다면 그들은 대대손손 행복하게 살았을 텐데. 아쉽게도 현실 속 손녀딸은 결국 원형탈모를 쟁취해내고 만다.
할머니 손을 잡고 교회를 가면 성가대에서 찬양을 부르는 할머니가 좋았다. 홀로 찬양을 하는 날은 내 어깨에도 덩달아 힘이 들어갔다. 어느 날은 집에 갔더니 불편한 다리를 끌고 마당에 벽돌로 아궁이를 세우고 가마솥을 올려 바비큐존을 만들어두었다. 갑자기 철망을 사서 닭장을 만들어 사람을 기가 막히게 하는 것도 예삿일이었다. 내가 아는 간호사 중에 혈관을 가장 잘 찾았다. 다재다능이 사람으로 형상화된다면 이런 느낌일까? 참 사랑할만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랬을까? 한 때는 그녀의 성격과 행동을 여성학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이해하고자 했던 시절도 있었다. 무수한 동화가 결혼 이후의 삶을 보여주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결혼이 반드시 해피엔딩인지 여부에 대한 논의와 로맨스 신화에 대한 토론은 잠시 뒤로 하자.
왜, 그런 흔한 이야기 있지 않은가. 가장으로서 능력이 다소 부족한 아빠와 가장의 역할을 하며 돌봄의 역할도 수행해야 하는 무적 엄마 스토리 말이다. 아빠의 외도와 폭력까지 더해진다면 더욱더 금상첨화다. 타고난 이야기꾼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는 과거 회상 속에서 할머니는 철저히 피해자로 남고 할아버지는 무조건적인 가해자가 된다.
이 올곧은 편견은 내가 대학에서 여성학을 공부하는 시점까지 공고히 유지된다. 아니 오히려 나의 배움은 진실을 가리는 도구가 된다. 할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과는 별개로, 할머니의 말과 행동에 20년 가까이 시달려 너덜너덜해진 마음과는 정말로 별개로 내 마음속에서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관계는 전복되는 일이 없었다. 아니 없어야만 했다.
우리 가족이 할머니가 자기애성 성격장애, 병리적 나르시시스트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채 몇 년이 되지 않았다. 아마 연예인 박수홍 씨의 어머니, 장윤정 씨의 어머니의 사례가 미디어에서 깊게 다루어지면서 나르시시스트가 하나의 키워드로 떠올랐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특히,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두 아들을 본격적으로 차별하는 행위는 한국의 문화 내에서도 보편적이지 않은 행동이기에 더욱 주목받을 수 있었다. 박수홍 씨의 어머니가 나르시시즘으로 똘똘 뭉친 발언을 실컷 해준 덕분에, 편집자들이 죽어라 편집을 했음에도 편집본에 많이 남은 덕분에, 우리는 대표적인 행동 양식을 많이 학습할 수 있었다. 그 후로 SNS에 쏟아져 나오는 나르시시스트 부모 아래에 자란 사람들의 경험 공유를 통해서 과거에 네이트판에서 ‘완전체 남친’ 등으로 불리던 존재들이 학문적 관점에서 새롭게 재조명되고 있었다.
유아기의 주양육자와의 애착관계가 전생애를 좌우한다는 것을 누구라도 알았다면 내가 4살 때 할머니 댁에 홀로 맡겨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단 1년 만에 나는 당연하게도 나의 주양육자인 할머니를 너무나 사랑하는 손녀딸이 되었고, 할머니도 그의 방식으로 나를 딸처럼 아꼈기에 우리의 사랑을 방해할 자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질문이면서 5살 아이 인생 최대의 난제인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도 나는 늘 막힘 없이 진실로 승부 볼 수 있었다. 이 사랑이 비정상적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은 조금 더 먼 훗날의 이야기다.
한때는 할머니를 가정폭력 가해자로 바라보는 것이 명백히 가정폭력 피해자인 할머니에게 피해자 다움을 요구하는 것이 아닐까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동시에 할머니는 명명백백히 가정폭력 가해자로 존재했다. 특히 자신의 진짜 아들과 가짜 딸인 나 손녀에게 그러했다. 스무 살 무렵 평생 나를 붙잡고 한 이야기들이 거짓으로 점철된 허상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차라리 몰랐다면 좋았을 진실들까지 할아버지의 장례식을 기점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무수한 방식으로 그녀를 이해하고자 한 나의 마음은 이 모든 사랑의 결과가 병리적 나르시시스트의 행동 양식 반복 속에 놀아났을 뿐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대로 바다 아래로 가라앉고 만다. 나는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물거품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