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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장편소설 디누 8화

부모의 마음 1

by 권재원

부모의 마음

1

“아이고, 어서 온나.”

구수하고 따뜻한 목소리가 나를 맞아 주었다. 경상북도 사투리가 권위적이고 딱딱하다는 선입견을 깨는 그런 목소리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정우의 아버지 권영길 씨다. 정우 장례 치르고 나서 처음 뵙는 것이었다. 3년이 지났지만 머리가 좀 벗겨지고, 그나마 남은 머리도 허옇게 물들었다는 것 되에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부모님 다 잘 계시나?”

“네. 잘 계십니다. 참 미우 누나는 요즘 어떻게 지내요?”

“잘 지낸다. 너무 바쁘다 카더라.”

“한국 안 온대요?”

“그게 도무지 틈이 안나는 모양이라. 참, 너 정우 위인전 쓴다켔나?”

위인전? 스테이크 접시 위에 올라간 깍두기 마냥 어감이 이상했다.

하긴 영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정우는 틀림없이 위인이니까. 장군, 정치가, 과학자만 위인이 되란 법이 어디 있는가?

“아, 그거, 유선이가 부탁해서.”

“뭐, 유선이가?”

정우 어머니가 놀란 기색으로 우리 사이에 끼어 들었다.

“유선이 지금 디누 기념관도 만들고, 기념 재단도 세우고 아주 정신없어요. 모르셨어요?”

“모른다. 영국 가고 나선 소식이 워낙 뜸해 놔서.”

“아, 그래요?”

“생각해 봐라. 남편 세상 뜬지 삼 년이 다 되 가는데, 옛날 시어마이, 시아바이 연락하는 게 뭐 그리 반갑겠나?”

“왜요? 그래도 쌍둥이한테는 할머니, 할아버진데?”

아차차 실수했다.

쌍둥이라는 말이 나가는 순간 정우 어머니 낯빛이 달아오르는게 눈에 뻔히 보였다. 최유선과 그 시어머니, 아니 전 시어머니와의 갈등의 핵심이 바로 쌍둥이었던 것이다.

유선은 정우가 BBC심포니에서 오퍼를 받기 훨씬 전에 먼저 영국으로 갔다. 쌍둥이를 둘 다 데리고 말이다. 그래서 정우는 1년 넘게 이른바 기러기 아빠 생활을 했고, 그 때문에 고부간에 안 좋은 소리가 오갔던 모양이었다.

“어, 그런 일을 하고 있었단 말이라? 기특하기도 해라.”

정우 아버지가 고개를 이리 저리 가로로 저으며 어색해진 공기를 흩었다.

“유선이한테 정우는 남편 이전에 위대한 예술가 디누였으니까요.”

나도 어색하게 대답했다.

“정우가 전기가 출판되고, 기념관이 남을 정도로 살았구나. 그만하면 잘 살았네. 자, 궁금한 거 있음 뭐든지 물어보거라. 전기든 소설이든 네가 쓰고 싶은 대로 쓸 수 있게 내가 기억나는 건 다 말해 주마.”

“우선은 야 뭘 좀 먹이고 시작합시데이. 이 영감이 성질은 급해 가지고.”

정우 어머니가 한 소리를 하더니 부엌에서 뭔가를 만들기 시작했다.

내 머릿속에서 추억이라는 제목의 흑백영화 필름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학창 시절 걸핏하면 정우네 집에서 마치 당연한 권리인 양 밥 받아먹고, 밤이 늦어지면 자고 갔던 시절.

전업 주부인 정우 어머니 손맛은 약사인 어머니와 비교도 되지 않았고 당연히 나는 집 밥보다 정우 집 밥을 훨씬 좋아했다.

간장과 참기름으로 간을 한 불고기와 잡채 냄새가 흘러나왔다. 아주 익숙한 음식들이다. 자석처럼 냄새에 끌려간 나는 게걸스럽게 음식을 지워 나갔다.

“이거 꼭 여쭤보고 싶었는데”

하지만 나는 찾아온 목적이 인터뷰라는 것을 결코 잊지 않고 질문을 던졌다.

“정우도 그렇고 미우 누나도 그렇고 이름이 좀 남다르지 않았어요?”

“이름이? 뭐가?”

“원래 정우도 저처럼 다섯 오자 항렬이잖아요? 그런데 미우 누나도, 정우도 벗 우자를 돌림자로 썼는데, 안동 권씨에 그런 돌림자는 없거든요?”

“별 싱거운 것도 다 묻는다.”

“의외로 이런 사소한 게 이야기거리가 되거든요.”

“우습지 않겠나?”

‘네? 뭐가요?”

“권오미, 권오정이라믄 이름이 좀 우습지 않겠나?”

이런. 이런 식으로 말씀하시면 내 이름 권오석은 뭐가되나 싶었다. 하긴 나도 오석이라는 내 이름이 영 마음에 들지 않긴 했다.

“집안에서 뭐라 안했어요?”

“말도 마라. 이름 그 따위로 짓는다고 문중 어른들이 집까지 찾아와서 얼마나 꼬장을 부리던지, 말로 하자면 끝도 없다.”

정우 어머니가 손을 내저었다.

“그래도 이 사람 고집이 좀 세야지? 아무도 못 이긴다. 일단 고집을 세우면.”

“왜 그렇게 고집 부리셨어요?”

정우 아버지는 대답하지 않았다.

“외롭다 아이라?”

정우 아버지의 침묵을 덮으며 어머니가 대신 대답했다.

“외롭다뇨?”

“이 양반 학교 다닐 때 요즘 말로 왕따였다는 거 아나?”

“당신은, 무슨 없는 말을 지어내고 그래요? 왕따는 무슨 왕따? 다들 찢어지게 가난하던 시절에 우리 집이 남 보다 좀 넉넉하게 살다 보이 이래 저래 딴 집 아들하고 어울리기 어렵고 그랬던 거지.”

“어이 되었든, 친구 없었던 건 맞잖아요? 오석이 아빠 말고 당신 친구 있으면 한 번 대 보소.”

“으음.”

정우 아버지가 더 이상의 반박을 포기한 초탈한 표정을 지었다. 정우 어머니의 독무대가 거침없이 펼쳐졌다.

“이 양반이 얼마나 친구가 없고, 따돌림을 당했나 카면, 글쎄,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담배를 다 피웠데이. 외로워서 말이지. 안 그래요? 당신이 그랬잖아? 아 글쎄, 담배한테 이름도 붙여주고 그랬다고?”

“나 참, 뭐 그런 이야기를 다 끄집어 내요?”

“재미있잖아? 어쨌든 이 양반이 이래 친구에 한 맺힌 사람이다. 세상에서 제일 부러운 사람이 돈 많은 사람, 출세한 사람이 아이고 친구 많은 사람이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한 천번은 말했나? 그라이께네 아 낳자마자 이름에 ‘벗 우’자를 이름에 집어 넣은기라. 집안 돌림자 안 쓰고 말이지. 친구 마이 사귀라고. 이름 안 좋나? 예쁜 친구, 바른 친구.”

“아, 예.”

이름 돌림자에 그렇게 간절한 염원이 담길 수도 있다니 안 그래도 매력없는 오석이라는 내 이름이 갑자기 지루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이름이 지루하니 인생도 지루해진 것이 아닐까 하는 미신스러운 생각까지 떠올랐다.

“그런데 미우가 그 이름 덕을 마이 봤다.”

분위기를 추스른 정우 아버지 차례가 왔다.

“미우는 서양 사람들이 부르기 쉬워서 외국 나가서 연주하고, 음반내고 할 때 따로 이름 안 지어도 되고 참 좋았다.”

내 생각에도 그랬다. 미우라는 이름은 서양인들이 발음하기도 쉬울 뿐 아니라 서양 사람들 귀에도 꽤 귀엽게 들리는 이름이니까. 고양이 울음소리 같기도 하고.

여권에 Mi Woo 이렇게 안 쓰고 Miu 이렇게 써서 더 그랬다.

“그런데 문제는 정우라.”

이번에는 어머니 차례.

“외국 사람들이 정우라는 이름 발음하기 어렵다며 이 놈이 느닷없이 Dinu라고 이름을 쓰는 기라. Miu & Dinu, 이렇게 둘이 운도 잘 맞고 해서 그래라 했다. 만약 이기 요절한 피아니스트 이름 딴 거라는 거 알았으면 절대 못하게 했을낀데.”

“정우는 역사상 디누 리파티 보다 훌륭한 피아니스트는 없다고 입에 침이 마를 정도로 말했어요.”

“그게 다 뭔 소용이냐? 이래 허망하게 가버린 걸?”

“하느님이 모든 걸 주시지는 않잖아요? 많은 능력을 주셨으니 수명은 조금밖에 안 주신 거죠.”

그러자 신앙심 두터운 노부부의 고개가 끄덕끄덕 상하운동을 했다.

“그래. 정우야 그마하면 잘 살았지. 그래도 쌍둥이라도 여기 있으면 늙은이들이 덜 서운할 텐데. 니, 유선이한테 쌍둥이 데리고 한국에 언제 오냐고 말 좀 꼭 전해라.”

“예. 꼭 전할게요.”

나는 그날 정우 부모와 밤이 늦도록 정우의 어린 시절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흥미로운 일화들도 많이 들었다. 꿰어야 할 한 무더기 구슬 조각들을 얻은 셈이다.

그렇게 이야기 꽃을 피우다 보니 어느새 자정을 넘기고 말았다. 옛날 같으면 밤도 늦고 하니 그냥 하룻밤 자고 갔을 터였지만, 부모님 슬하가 아니라 처자식과 살고 있는 처지라 심야 할증료를 감수하고 택시로 귀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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