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말 만들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고집 Aug 03. 2024

귀뚜라미가 우는 밤

창문을 여니 선풍기 소리만 맴도는 방에 귀뚜라미 소리가 비집고 들어온다.


이미 경험해본 듯 익숙한 밤의 느낌과 소리.


난 열일곱, 열여덟, 그리고 열아홉부터 지금까지, 

매번 내 기억 속 밤은 귀뚜라미 소리로 기멸된다.

천진난만한 열일곱 친구들과의 장난 어린 밤과

희미한 빛을 비추며 매일을 지새던 열여덟의 밤,

마구 일렁이던 마음을 고요히 해준 열아홉 위로의 밤.

반복적이고 적요한 귀뚜라미 소리는 밤 기억의 기폭제가 된다.


그럼에도 매일의 다른 감정과 시간들로 이 밤은 내게 새로운 맛을 느끼게 해주었고,

또 오늘 새롭게 발 디딘 숲에서의 밤은 이렇게 생각할 여유를 주었다.


자칫 고음의 기계음으로 들릴 수 있는 이 귀뚜라미 소리가 사실은 내일의 나도, 과거의 나도 공유하고 있는 밤의 유일함임을 깨닫는다.


스무살의 늦여름, 귀뚜라미 소리가 밤공기를 메우는 오늘 밤의 나는 내일에 어떤 기억으로 기억될까.

매거진의 이전글 지하철을 기다리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