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을 여니 선풍기 소리만 맴도는 방에 귀뚜라미 소리가 비집고 들어온다.
이미 경험해본 듯 익숙한 밤의 느낌과 소리.
난 열일곱, 열여덟, 그리고 열아홉부터 지금까지,
매번 내 기억 속 밤은 귀뚜라미 소리로 기멸된다.
천진난만한 열일곱 친구들과의 장난 어린 밤과
희미한 빛을 비추며 매일을 지새던 열여덟의 밤,
마구 일렁이던 마음을 고요히 해준 열아홉 위로의 밤.
반복적이고 적요한 귀뚜라미 소리는 밤 기억의 기폭제가 된다.
그럼에도 매일의 다른 감정과 시간들로 이 밤은 내게 새로운 맛을 느끼게 해주었고,
또 오늘 새롭게 발 디딘 숲에서의 밤은 이렇게 생각할 여유를 주었다.
자칫 고음의 기계음으로 들릴 수 있는 이 귀뚜라미 소리가 사실은 내일의 나도, 과거의 나도 공유하고 있는 밤의 유일함임을 깨닫는다.
스무살의 늦여름, 귀뚜라미 소리가 밤공기를 메우는 오늘 밤의 나는 내일에 어떤 기억으로 기억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