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아직 퇴근하지 않았다
5월, 요즘 같은 때면 시작되는 게임이 있다.
햇살과 구름, 그리고 나 사이의 치열한 눈치싸움.
매일 아침 외출하기 전 날씨 어플로 기온을 확인하며 그날의 옷차림을 결정한다.
하지만 결과는 뻔하다.
나는 대부분 진다.
그래도 아직은 쌀쌀한 공기가 남아있을 거야 하고 고집스레 두꺼운 외투를 걸치고 집을 나선다. 정오가 넘고 태양이 정점을 찍는 시간.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든다.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햇살이 등을 찔러도 나는 외투를 벗지 않는다. 벗는 순간 나는 지는 거다. 그리고 태양이 퇴근하는 밤이 오면, 속으로 ‘거봐 내 말이 맞지. 아직 춥다니까’하며 외투를 입은 어깨를 으쓱하며 이긴듯한 기분을 만끽하는 거다.
그런가 하면 새로 산 봄옷을 빨리 입어보고 싶은 마음에 앞서가는 날은 꼭 해가 지기 전에 집에 들어와야 한다. 이 옷에는 아무런 외투도 걸치지 않는 게 예쁘겠다고 생각하고 구매한 옷인데 자존심 상하게 외투를 챙겨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낮 동안에 외투를 들고 다니는 것 또한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니까. 하굣길 언덕을 내려가며 가속도가 붙어 자꾸 바람이 거세져도 걸음을 늦출 수는 없다. 얼른 따뜻한 집으로 들어가고 싶으니까. 그저 바람은 모른 척하며 집을 향해 빠르게 걷는 수밖에 없다.
이런 눈치싸움을 하는 건 나랑 날씨뿐이 아니고 낮과 밤끼리도 하는 거 같다. 이맘때 여름과 봄은 낮과 밤을 반씩 나눠가진다. 요즘은 봄이 거의 없어졌다고 얘기하지만, 아직 그렇게 쉽게 떠나고 싶지는 않은가 보다. 모두가 집에 들어가고 나면 그제야 봄은 납작한 그림자를 그리며 찾아온다. 나는 아직 봄밤에 머물고 싶다. 시간의 흐름을, 지구의 부지런함을 조금은 모른 체 살아가고 싶다.
낮과 밤끼리 합의하는 시간 동안
나는 그 틈에 조용히 숨어,
봄밤에 더 오래 머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