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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월세에 대기업 다니'던' 이 과장 이야기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사는 김 부장 이야기>을 읽고

by 엠마

아침 5시.

알람보다 먼저 눈이 떠진다.
부지런해서가 아니라, 부지런해야만 살아남는 인간처럼 살아서 그렇다.


주방으로 걸어가며 생각한다.
‘오늘도 나를 적당히 착취해 보자.’
커피 머신에서 똑똑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어젯밤의 다이어트 결심은 어디로 증발했고

왜 아침부터 배가 고픈지

알 수 없는 의문들이 머릿속에 새벽 회의를 연다.


아이들이 일어나 집안에 소리가 퍼지면
전쟁도 평화도 아닌,
그냥 엄마 업무 개장 알림이 울린다.


4살 딸은 양말 하나 고르면서도 국제회의급 진지함을 발휘한다.
나는 그 진지함을 현실 시간표에 맞게 조율하는 비서 겸 통제관.
역할은 많지만 경력 인정은 없다.
늘 그렇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옆집 워킹맘 같은 분과 마주쳤다.
찰랑거리는 머리, 다려진 코트, 인간의 아침 버전.
그리고 나는…
전투 직후 긴급 대피한 ‘생존자 버전’.
머리엔 베개 자국, 후줄근한 티.
'오늘도 야생 모드인가요?' 하는 자조가 절로 나온다.


부러움이 스멀대면
내 전문 방어기제가 자동으로 작동한다.
‘근데 저 집은 택배 좀 줄여야지. 문 앞이 물류센터던데.’
부러움 + 비판 = 체면 유지.
이건 인간의 기본 방위 시스템이다.
특히 나 같은 인간에게는 더.


아이들 다 내려놓고 차로 돌아오면
고요가 찾아오지만, 그건 평온이 아니다.
그건 후회·불안·자기 검열의 파노라마다.

공부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과
소파에 10분만 눕고 싶은 욕망이 싸운다.

의무의 목소리: “공부해. 너 뭐든 해야 할 거 아니야.”

현실의 목소리: “일단 누워. 넌 인간이잖아.”

둘 다 맞는데 둘 다 지기 싫어한다.
문제는 내가 둘 중 누구도 이기지 못한다는 점이다.


날씨 확인하려고 핸드폰을 켠 순간,
알고리즘이 나를 인질로 잡는다.
짧은 영상 하나,
다음 영상 하나,
그리고 또 하나.
정신 차리면 1시간이 훌쩍 사라져 있다.


아침엔 양말 찾는 5초도 아까워하던 내가
왜 알고리즘에게 1시간을 기부하고 있는가?
아마 원래부터 효율적인 인간은 아니었던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




나는 지금 월세에 산다.
이게 또 아이러니한데,
원래 살던 집은 자가였다.
그런데 아이 학군 때문에 그 집은 월세로 내놓고,
나는 여기 이 동네로 월세로 들어왔다.


문제는 이 동네가 학군이 환상적인 것도 아니다.
그냥 살기 편한 동네,
그러니까 ‘아이 미래’도 ‘부모 노후’도
전부 애매한 절충안 같은 곳이다.


부모님이 근처라

'복직하면 도와주실 수 있겠다'는 계산까지 해놓았는데,
정작 내가 복직을 하느냐가 가장 불투명하다.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과장, 너는 진짜 복직할 거니?
왜 회사랑 더 멀어진 동네로 와놓고
복직 의지는 점점 가까워지지 않지?'


솔직히 말하면,
이 동네로 이사 온 건
아이 학군 + 부모님 도움 + 나의 복직 가능성
이 세 개가 동시에 존재한다고 가정했을 때만 유효한 선택이었다.

근데 현실은

셋 중 하나가 엷게 흔들리고 있다.
바로 복직.


그렇다고 다시 옮기기도 어렵다.
왜냐하면 이 동네는 묘하게 편해서
나갈 때는 또 후회할 것 같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매일 묻는다.
'이게 맞나? 나는 지금 뭘 하고 있지?'
그리고 아무 결론도 못 내린 채
오늘도 또 산다.
그게 인간이고, 그게 이 과장이고, 그게 이 삶이다.




그리고 오후, 첫째 아들을 데리러 갈 시간.

학교 앞에서 아들이 영어로 툭 말한다.
나는 반사적으로 주변을 스캔한다.
'야… 한국말해.'

겉으로는 아이를 겸손하게 해야 하는 훈육이지만,
그 겸손이라는 말속에는 0.3초 정도 자랑이 들어있다.

우월하기 때문에 그걸 좀 남들이 보기 편하게 걸러서

겸손하라는 것 아닌가.


근데 더 냉정히 말하면
우리 아이는 그냥 미국에서 잠깐 살다 와서 영어를 아는 것뿐이다.
미국 가면 우리 애 같은 애들
카트 밀고 있고, 놀이터에서 모래 먹고 있고, 길바닥에서 울고 있다.
아무도 감탄 안 한다.


한국에만 오면 갑자기 ‘영어 천재’가 된다.
환경 보너스에 국적이 붙으면 금테가 생긴다.
이게 웃기고, 냉소적이고, 솔직히 말해 조금 짜증 난다.


하지만 더 웃긴 건

그 금테를 슬쩍 즐기는 나 자신이다.


이제 영어학원 갈 시간.
‘원어민반’ 골목에 들어서면

공기 중에 우월감 미세먼지가 떠다닌다.
엄마들 표정은 말한다.
“아~ 거기 보내세요? 그런 실력이긴 하죠”


나는 속으로 외친다.
“아, 이런 분위기 진짜 별로다.”
그런데 그 ‘별로’인 분위기에서
나도 미세하게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
이게 바로 인간의 은밀한 민낯이다.


9살짜리 아이 영어 실적이
내 사회적 점수처럼 느껴지고,
아이 시험 잘 보면 내가 칭찬받은 것 같고,
틀리면 내가 부족한 부모가 된 느낌.
이게 무슨 부모-자식 연동 주가 시스템인가.



저녁이 되면
남편 없는 집에서
아이 둘 씻기고 먹이고 재우며 하루를 닫는다.
주말부부라 감정노동은 100% 내 몫이다.
그래서 내 직함은 명확하다.

감정 쓰레기 처리 실장.


아이들이 한국에 적응하면서 쏟아내는
불안·피로·짜증·정체성 혼란.
그 모든 감정의 최종 목적지는
고스란히 나다.


9살 아들은 사실 그렇게 예민한 아이가 아니다.

울지도 않고, 과하게 부각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요즘 그의 표정엔

자기는 25명 중에 24등 아니면 23등이라며

아주 조용한 비교가 배어 있다.

25등은 학교에 오지 않는 아이이다.


4살 딸은 또 다르다.

이 아이는 거의 정서 토네이도다.

아침에는 바나나를 사랑한다며 껴안고 다니다가

저녁에는 그 바나나를 집어던지며 운다.

어린이집에서 친구가 자기 물병 색깔을 따라 했다고

세계 평화가 깨진 것처럼 소리를 지른다.


그럼 나는 또 그 감정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한다.


정확한 감정 분류는 불가능하다.
그냥 슬픔, 피곤, 죄책감, 고집, 변덕 같은
온갖 감정 쓰레기가
경유지 없이 바로 나에게 떨어진다.


나는 그걸 주워 담고 분리수거하지만
정작 내 감정은 리스트에 없다.
왜냐면 나는 쓰레기통이니까.
아이 감정은 즉시 처리,
남편 감정(주말 한정) 빠른 처리,
내 감정은 '나중', 즉 영원히 미처리.


내가 희생자 코스프레 중인 것도 알지만

이 역할을 내려놓지 못한다.

나는 또 내일 무덤덤하게

감정 쓰레기봉투를 들고

이 시스템 속에 출근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게 엄마 시스템의

공장 초기 설정값이니까.




우리는 주말부부이다.

남편은 지방에서 일을 하고 주말에만 서울 집에 올라온다.

주변 사람들은 말한다.
"주말부부면 너 진짜 힘들겠다. 대단하다.”
그 말을 들을 때
나는 잠깐 성모처럼 빛난다.
고생하는 엄마라는 이미지가
내 무수입 상태와 경력 단절을
기묘하게 가려주기 때문이다.

희생의 PR 효과, 부작용은 자기기만.


아이들과 있는 시간은
생산적이지도 않고
‘혼자 버티는 것’도 과장이다.
그건 그냥
내 정신이 조금씩 증발하는 과정이다.

그래도 포장이라도 해야 버틸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삶은 반품 불가니까.


결국 내일도
이 패턴은 그대로 반복된다.
이건 생활이 아니라 시즌제 시리즈다.
제목은 분명하다.

〈엄마, 시즌 무한 리필〉




Epilogue


지난주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을 읽고는 며칠 동안 괜히 마음이 가라앉았다.
책 속 부장, 과장, 대리, 사원 얘기가 하필이면 나를 그대로 비추는 CCTV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애들한테는 “절약해!” 하고 전등을 장군처럼 탁탁 끄던 내가,
정작 아이들 학교 보내고 소파에 누워
애들이 읽지도 않을 한글 전집 5만 9천 원을 결제하고 있었다.
이사 갈 때 욕 나오게 만드는 짐이 될 걸 알면서도, 내 손가락은 멈추지 않았다.
이게 소비인지 자기 위안인지,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


어제는 오랜만에 광화문 회사 근처에서
전 팀장님들과 점심을 먹었다.
회사는 여전히 번쩍번쩍했고,
그 안에서 사람들은 톱니바퀴처럼
정해진 속도로 아주 정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 속으로 다시 들어가면
내 우울, 혼란, 이 복잡한 감정들이
깔끔하게 ‘업무’라는 이름 아래 마취될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남들이 보기엔 성실하고 꾸준한 사람처럼 살고 있지만
사실은 내 감정을 잠시라도 잊게 해주는 시스템에
중독돼 살아온 건 아닐까?


그 시스템이 회사든, 육아이든,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허우적거리는 건
양쪽 다 똑같을 테니까.


그래서 이 글을 마무리하며 인정한다.
나는 지금도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냥 하루를 버티고,
그 버틴 하루를 이렇게 글로 기록하며
내가 어디쯤에 서 있는 사람인지
잠깐이라도 들여다보려고 한다.


어쩌면 이게
내 삶이 허우적대는 와중에
유일하게 ‘내가 나를 이해하려고 애쓴 흔적’ 일지도 모른다.


이 과장의 하루는 여기까지.
내일도, 아마 똑같이
허우적대며 살아갈 예정이다.


IMG_6209.jpg 광화문 거리, 그 단단한 톱니바퀴들이 솔직히 그리운 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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