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집으로 출근합니다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 를 읽고

by 엠마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는 아이를 낳아야 할지 오랫동안 망설였다고 한다.


“이 힘든 세상에 아이를 데려오는 게 맞는 일일까?”

그 질문은 마치 내 안에서도 오래 울리던 질문처럼 낯설지 않게 마음을 파고들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그녀 남편의 말은 그 고민을 단숨에 흔들어놓았다고 한다.


“세상엔 맛있는 게 너무 많아. 여름엔 수박이 달고, 봄엔 참외가 향긋하고, 목마를 땐 물도 달잖아.

그런 걸 아이에게도 맛보게 해주고 싶지 않아?”


나 역시 오래 잊고 있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여름 오후, 수박 한 덩이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아이가 “엄마, 너무 달아!” 하고 웃던 순간. 그 웃음의 온기와 그 작은 존재로부터 밀려오는 살아 있음의 기척이 그 어떤 두려움보다 더 진실하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었다.


그 장면을 떠올린 이유는 최근 읽은 <여자에게 일이란 무엇인가>가 내 어깨를 거칠게 흔들었기 때문이다. 책은 등을 떠밀듯 말했다.


“엄마가 일을 그만두는 건 치명적인 실수다. 밖으로 나가라. 서둘러 복귀하라.”


그런데 책장을 덮는 순간, 내 안에서 또 다른 질문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정말 회사로 돌아가는 길 밖에 없는 걸까?’


여름의 수박 같은 그 순간들, 아이의 체온과 숨결과 웃음으로 가득 찬 그 부정할 수 없는 행복은 아이와 살로 부대낄 때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한 사람의 희생으로만 지탱되는 이 행복이 부조리하게 느껴지더라도, 당장 피부로 와닿는 이 안온함을 걷어차고 집 밖으로 나갈 수 있을까?







집으로 출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 질문을 품은 채 읽은 책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내가 꿈꾸는 ‘일하는 삶’을 보여준다.


책 속 사람들은 출근카드도, 사무실도 없이 집에서 자기 일을 이어간다.

아주 유명한 사람도 있었고, 지금은 검색조차 되지 않는 작은 가게의 주인도 있다.


그들의 이야기는 하나의 공통점으로 이어진다.


돌봄이 영감이 되고,

돌봄 덕분에 오히려 시간은 더 절실하고 집중된다는 것.


아이 때문에 일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 덕분에 일의 농도가 더 깊어진다는 말들이었다.

아이와의 시간을 중심에 두고 그들은 그 틈 사이에서 묵묵히 작업을 이어간다.


책을 읽으며 나는 괜히 설렜다.

아이와 나의 삶을 지키면서도 내 일을 다시 세우는 방식은 꼭 회사로 돌아가는 것만은 아닐 수 있겠구나 싶었다.


상상헌의 ‘일상의 예술’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소개된 사람들 중에 가장 인상적인 분은 꿈꾸는 사람들의 집,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가는 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상상헌'의 안나였다.


그녀는 무역회사에서의 일상을 지나 퇴사 후 블로그 ‘안나의 캔들나이트’를 시작했고, 거기서 스스로 마음의 방향을 잡았다. 그녀는 타샤 튜더가 말한 ‘잼을 저으면서도 셰익스피어를 읽을 수 있다’는 감각으로 집에서 일하고 창작하고 돌보는 삶을 조용히 디자인해 왔다. 그녀는 집 안에서의 일상, 아주 사소한 동작 속에서도 예술이 피어난다고 믿었다. 정원에 물을 주고, 장작을 패고, 아이와 빵 반죽을 하며 살아가는 하루 자체가 이미 하나의 예술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마음을 밝은 데 두고 나아가다 보면

그땐 보이지 않던 미래가 어느 날 눈앞에 펼쳐진다.”


그 말은 작은 움직임을 잃어버렸던 나를 조용히 일으켰다. 일은 삶이 흐르는 곳 어디에서든 마음을 두는 곳에서 시작되는 것이었다.



집이라는 기적 같은 장소 – 돌봄과 창작이 동시에 피어나는 곳


이 책을 읽으며 나는 깨달았다. 집은 단순히 “돌봄이 이루어지는 공간”이 아니다.

집은 놀랍게도 돌봄과 창작이 동시에 일어나는 드문 장소였다.


돌봄과 창작은 전혀 다른 일처럼 보이지만 실은 깊은 곳에서 닮아 있다.


1) 둘 다 ‘존재를 키워내는 일’

돌봄은 아이의 가능성을 자라게 하고

창작은 내 안의 어떤 생각과 감정을 자라게 한다.

둘 다 없던 것을 ‘존재하게 만드는 과정’이다.


2) 보이지 않는 시간과 정성이 쌓여야 한다

아이의 하루는 작은 행동들이 쌓여 만들어지듯

한 문장, 한 작업도 눈에 보이지 않는 실패와 사유의 층이 쌓여야 형체를 갖는다.


3) 예측할 수 없는 흐름을 받아들여야 한다

아이의 하루가 늘 예측할 수 없듯

창작도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둘 다 ‘통제하기보다 함께 흐르는 능력’을 요구한다.


4) 관찰과 감각이 핵심

돌봄은 작은 변화를 읽는 예민함이 필요하고,

창작도 일상의 결을 발견하는 감각에서 시작된다.


5) 나를 더 깊이 들여다보는 과정

돌봄도 창작도 결국 나의 진짜 마음을 드러나게 한다.

둘은 서로를 비추는 거울처럼

나라는 사람의 한계와 욕망, 사랑과 두려움을 보여준다.


이 모든 과정이 동시에 일어나는 곳이

바로 집이라는 사실이 얼마나 기적 같은지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나의 작은 출근길


<여자에게 일이란 무엇인가>를 읽고 나는 ‘끈을 놓지 않겠다’고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육아휴직 중이지만, 끈을 간신히 붙잡고 있는 나의 첫 번째 일터는 안방에 있는 아주 작은 책상이다.



우리 집 안방. 화장실 앞 화장대 한쪽에 폭 30cm 남짓한 얇은 판을 덧대어 만든 책상. 책상은 들여다 보지 않으면 있는지도 모를 구석에 자리하고 있다. 사실은 책상이라고 부르기에도 조금 민망하다. 하지만 요즘의 나에게는 이보다 더 잘 맞는 자리도 없다.


밤이 깊어 아이들이 잠들면 집 안은 마치 시간을 잠시 멈추는 것처럼 고요해진다.그 고요 속에서 화장대 위 작은 스탠드 하나가 켜지면 우리 집 안방 한편, 폭 30cm의 좁은 판을 덧댄 그 책상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작업실이 된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단 열 걸음의 거리. 어두운 집 안에서 유일하게 켜져 있는 주황빛. 그 빛 아래에서 나는 오늘의 나를 겨우 붙잡고, 내일의 나를 조용히 부른다.


어느 날은, 노트북을 펼친 채 한 문장도 쓰지 못하고 그냥 그 불빛만 바라볼 때도 있다.


‘나는 왜 이리 작은 책상밖에 없을까.’


그 생각을 품은 채 손바닥만 한 책상을 가만히 쓰다듬는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친다.


'아, 이 작은 책상이 바로 지금의 나구나.'


돌봄과 나라는 두 기둥을 아슬아슬하지만 정직하게 세워가는 나처럼 이 책상도 흔들리면서 버티고, 좁지만 분명히 나를 지키고 있다.


가끔 내가 너무 어두운 곳에서 혼자 공부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거실 베란다에 아이와 함께 쓰는 공용 책상으로 가서 햇빛을 받으며 책을 읽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문득 대낮에 혼자 집을 지키는 자만 누릴 수 있는 이 호사를 나만 누려도 되는 건가 싶다.



이렇게 매일 작은 책상 앞에서 나만의 출근을 이어가고 있음에도

나는 여전히 한 가지 질문 앞에서 멈춰 서곤 한다.


'그럼에도 왜,

나는 회사로 복직하는 문제를 놓지 못하는 걸까?


불안은 늘 가슴 아래쪽에서 가장 먼저 일렁인다. 그리고 그 불안은 생각보다 구체적이다.


장바구니에 넣어둔 물건들을 보다가 결제를 망설이는 것, 마음에 드는 내 옷을 봤음에도 '이건 나중에 사야지.'라며 다시 걸어두는 것, 아이 학원 상담에서 대낮에 운동복을 입고 온 나를 훑어보며 '엄마도 일하시나요?'라는 질문 앞에서 말이 반박자 늦게 나오는 순간. 한 달 가계표를 보는데 '나의 수입' 칸이 비워져 있는 것을 발견할 때.


그럴 때면 '경제적인 활동을 제대로 하고 있지 않은 현재의 내가 과연 쓸모 있는 사람인가?' 이 질문이 내 뒤통수를 슬며시 치고 나간다. 돈과 관련된 모든 결정에서 나는 작아진다. 나는 아이에게 세상의 단맛을 건네고 있고, 내 삶의 미래를 조용히 빚어내는 중이라고 하지만, 이건 그저 집 안에 안락하게 있고 싶은 내 변명인 건 아닐까.


생각해보면 내 책상이 집의 중앙이 아닌 이 구석에 놓여 있는 것도 아마 이런 마음 때문일 것이다. 스스로를 향한 연민과 자조감이 나를, 그리고 내 자리를 조용히 한켠으로 밀어두곤 한다.


이런 마음이 정당한 건지, 아니면 내가 대단한 착각을 하고 있는 건지 아직은 정확히 모르겠다. 다만 알 수 있는 건 지금 이 작은 출근길이 나를 단단하게 해주는 동시에, 또 다른 문 앞에 세워놓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다음 책에서는 그 문을 조금 더 열어보려고 한다. 내 안의 불안을 향해 조용한 걸음으로 천천히 다가가 보려고 한다. 그 불안을 마주 앉히고 나는 비로소 그 얼굴을 바라볼 준비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서야 나는 내 작은 책상을 연민 없이, 순수하게 사랑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keyword
이전 02화쿠키 굽는 엄마, 돈 벌어오는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