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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마 Nov 19. 2023

무조건 맛있는, 간장계란밥

무조건 따뜻한 엄마를 떠올리길



간장계란밥 레시피

1. 밥을 준비한다. 
2. 계란프라이를 한다. 
3. 밥 위에 계란프라이를 올리고, 그 위에 간장 세 방울, 참기름 한 방울을 넣는다. 


- 사랑하는 아들에게


 아들아, 엄마가 너에게 주고 싶은 레시피 중 첫 번째는 간장계란밥이야. 이 음식은 재료도 단순하고 만드는 방법도 아주 쉬워. 들이는 공에 비해 맛은 무조건 보장되니 아들이 처음 만들어보기에 좋을거야. 필요한 재료는 딱 네 가지야. 계란, 밥, 간장, 참기름. 너무 간단해서 초라해 보이는 음식이지만, 한번 냄새를 맡아봐. 부드럽고 짭조름하면서 고소한 향기가 입맛을 다시게 하지 않니? 


 비결은 참기름이야. 엄마는 대전할머니가 직접 농사지어서 주신 귀한 참기름을 썼단다. 엄마는 간장계란밥에 무조건 좋은 참기름을 넣어. 향이 다르거든. 그리고 참기름은 진득한 밥과 바삭한 계란프라이를 잘 섞이게 해줘서 윤기나는 근사한 음식으로 만들어주지. 엄마는 평범한 간장계란밥에 참기름을 휙 두를 때 마다 이것 분명히 맛있을 거다 확신을 가지게 된단다. 엄마는 오늘 이런 단단한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너에게 들려주고 싶어. 


 간장계란밥은 엄마가 어릴 때 자주 먹던 음식이기도 해. 지금은 엄마가 너에게 밥 좀 잘 먹어라 잔소리를 하지만, 사실 엄마는 어릴 때 지금 너 보다 훨씬 밥을 잘 안 먹었어. 엄마를 키워주신 할머니는 밥 잘 안 먹는 엄마를 먹이려고 끼니때마다 돌아다니며 엄마 입 속에 밥을 직접 넣어주셨어. 그때 엄마가 겨우 한 숟가락씩 목구멍이 넘기던 음식이 이 간장계란밥이야.


 엄마의 할머니는 대한민국 지도에서 가장 끝에 있는 땅끝마을 해남에서 50여 년을 사시다가 엄마를 키워주려고 부산에 오셨어. 백옥처럼 흰 얼굴에 몸 어디 한 구석에 모난 것 없이 폭신폭신한 몸을 가진 분이었지. 할머니는 엄마를 절대 혼내신 적이 없어. 어린 딸을 일찍 하늘나라에 보내야 했던 할머니는 엄마를 '우리 예쁜 내 딸'이라고 공주님처럼 대해주셨어. 엄마가 밥을 안 먹겠다고 식탁을 뛰쳐나가 버리면, 혼내는게 아니라 쫓아다니며 먹여주셨다는 것만 봐도 어떠셨을지 알겠지?


 1051007. 이 숫자는 엄마가 어릴 때 할머니랑 같이 살던 아파트의 동호수를 연결해 놓은 숫자야. 그 아파트에서 살던 시절이 엄마에게는 너무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어서 아직도 그 숫자를 잊을 수가 없어. 할머니가 만들어주신 간장계란밥을 많이 먹던 것도 그 때야. 그 집에서 할머니, 엄마의 남동생, 그리고 엄마가 한 방을 썼어. 그러다가 더 큰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할머니와 다른 방을 쓰게 되었어. 엄마는 그게 너무 싫었어. 엄마는 할머니랑 같이 자고 싶어서 한밤중에 몰래 할머니방으로 간 적도 많아. 다음 날 부모님께 혼날 것이 뻔한데도, 그것은 다 잊은 채 할머니의 살결을 만지며 잠들곤 했단다. 할머니는 차가운 내 손을 뜨끈한 품으로 성큼 이끌어 꼭 안아주셨지. 엄마한테는 비밀로 하자고 속삭이며 말이야. 


 혼자 자는 법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고, 영양소가 고루 갖춰진 밥을 먹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요즘 엄마는 할머니의 그 넉넉한 품이 그리워. 그 때 먹었던 뜨끈한 간장계란밥, 따뜻한 할머니 품에서 같이 잠들었던 시간들이 엄마를 조금은 부드러운 구석이 남이있는 어른으로 만든거야.


 사실 엄마는 너에게 간장계란밥을 줄 때마다 미안했어. 너무 영양가가 부족한 음식을 주는 게 아닐까, 대충 끼니를 때우게 하는 거 아닌가 하는 마음에 말이야. 하지만 네가 이거 저거 아무것도 안 먹겠다고 하면 결국 냉장고에 계란을 꺼내 이거라도 먹어라는 심정으로 간장계란밥을 만들지. 엄마의 할머니도 아마 그러지 않으셨을까 싶어. 영양소가 꽉꽉 채워진 잘 차려진 밥상도 좋지만, 결국 그것을 아이가 안 먹으면 다 무슨 소용일까. 만들면서 지치고, 먹이느라 지치는 힘든 육아보다는 간장계란밥처럼 무조건 맛있고 편안한 음식이 아이를 키우기도 하는 것 같아.


 엄마가 아들과 딸을 키우며 살아가다보니, 아이가 잘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혼내기도 하지만, 어떨 때는 무조건 안아주고 믿어주는 것이 도움이 될 때가 있더라. 제대로 식탁 앞에서 앉혀놓고 다 먹으라고 호통을 친다면 영양소가 아이 몸 속으로 들어가긴 하겠지만, 그게 결국 아이의 마음을 살찌워주지는 않을 것 같아. 어른이 되었을 때 세상의 풍파에 힘든 순간, 우리를 바로 세워주는 건 어릴 때 받았던 무조건적인 사랑의 힘이더라구.


 그래서 엄마는 이제 이 간장계란밥을 우리 집 대표 레시피로 적어두려고 해. 세월이 흘러 엄마가 지금 할머니의 사랑을 떠올리면, 결국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간장계란밥인 것처럼 우리 아들도 그랬으면 좋겠거든. 고소한 그 냄새가 너무 익숙해서 먹기도 전에 이건 무조건 맛있는 음식이라는 확신이 드는 것, 그런 단단한 마음이 바로 '사랑'이야. 우리 아들이 힘든 세상에서 뒤쳐질 까봐 걱정이 되거나, 혹은 사랑 때문에 아프거나 넘어져서 아픈 날이 있다면 이 '무조건 맛있는' 간장계란밥이 떠올랐으면 좋겠어. 그리고 엄마는 아들에게 그 간장계란밥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할거야.






#읊기위한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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