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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마 Nov 12. 2023

아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레시피북이 있다


 완연한 어느 봄날, 주말에 가족과 놀러 갔다가 우연히 공원묘지에 들어갔다. 그곳은 넓은 잔디밭과 특유의 고요함 덕분에 산책하기 좋은 곳이었다. 이제 막 글자 읽는 것에 재미를 붙인 아들은 묘비에 적혀 있는 문구들을 하나씩 읽으면서 걸었다. ‘Beloved mom and wife’, ‘Loving memory’, ‘He always chose to love'. 묘비에는 하나 같이 ‘Love’라는 말이 들어가 있었다.

 아들이 물었다. “엄마, 왜 돌에 이런 글자를 적어 둔 거야?” 나는 묘비, 죽음, 유가족, 그리움 같은 무거운 단어를 알 리 없는 6살 아들에게 어떻게 말을 해줘야 할까 고민했다. 내가 답했다. “먼저 하늘나라에 간 엄마나 아빠에게 남은 가족들이 꼭 해주고 싶은 말을 적어 둔 거야, 잊어버리지 않게.” 이미 떠난 고인에게 보내는 사랑의 외침이 가득한 그 공원묘지에서 나는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아이들에게 무엇을 남겨줘야 할지 떠올려 보았다. 그것은 역시나 사랑이었다.


 나에게 사랑은 음식이다. 어릴 때 내가 밥 먹기 싫다고 투정 부리면 할머니가 간장 계란밥과 물김치를 한 입 씩 입에 떠 넣어 주셨다. 명절에 시댁에 갔다 친정에 오면 엄마는 8첩 반상으로 나를 먹여 주셨다. 나는 요리를 할 때, 내가 먹어왔던 그 익숙한 음식의 맛을 떠올린다. 그 맛을 재현하려고 노력하며 내가 받았던 사랑을 아이들에게 대물려준다.


 가끔은 사랑도 요리도 지친다. 건강한 ‘집밥’에 대한 신화, 돌봄 노동을 당연하게 여기는 문화 속에서 신이 된 자는 투정을 부릴 수가 없다. 요리가 특별한 누구 한 명만이 할 수 있는 위대한 일이 되면 입을 닫은 자는 지치기 마련이다. 나는 내가 하는 요리가 숭고한 희생이 아니라, 조금의 정성과 상상력이 있으면 재현할 수 있는 가벼운 행위이길 원한다. 사랑의 그림자를 물려주지 않기 위해, 나는 딸과 아들이 모두 있지만 특히 아들에게 이 레시피북을 물려줄 것이다.


 사실 내 음식은 종종 실패한다. 맛이 없거나, 너무 양이 많거나 적을 때도 있다. 실패를 반복하면서 나만의 레시피를 만들어 간다. 매일 사랑 넘치는 최고의 엄마가 될 수 없듯이 내 요리도 그러하다. 그러다 드물게 만족할만한 요리가 만들어졌을 때 나는 그것을 노트에 기록한다. 마음도 배도 허기진 어느 날, 아들 곁에 내가 없더라도 아들이 엄마의 음식을 떠올리며 힘이 날 수 있다면 좋겠다. 그날을 위해 주방 서랍 속에 노트와 볼펜을 넣어두고 내 사랑의 레시피를 만들어 나간다.




내가 물려줄 최고의 유산, 레시피북



가장 마음 아팠던 묘비, 아이를 잃은 부모의 마음.
아이들을 위한 장난감이 묘비에 세워져 있었다.
슬프고 아름다웠던 공원묘지
나도 ‘사랑’을 선택해보자, 했던 묘비 문구
모두 그곳에서 평안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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