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적당한 온도는 몇 도일까?
핫초코 레시피
1. 우유를 뜨겁게 데운다. (전자레인지를 이용할 경우 나중에 차가운 우유 넣을 공간을 남겨두자)
2. 핫초코 가루를 넣어서 다 녹인다.
3. 차가운 우유를 1/3 정도 더 넣어 식힌다.
사랑하는 아들에게.
엄마가 너에게 물려주고 싶은 두 번째 레시피는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핫초코야. 만드는 방법이 너무 쉬워서 지금 당장이라도 만들 수 있을 것 같지? 만드는 방법은 너무 쉽지만 이번에 엄마가 말해주고 싶은 건 '온도’야. 너무 뜨겁게 만들면 잔에 손을 댈 수도 없고, 너무 차가우면 '핫'초코가 아니겠지? 더 중요한 건, 사람마다 좋아하는 핫초코 온도가 다르다는 거야. 조금 뜨겁지만 그걸 식혀 먹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차가운 우유를 마시면 배가 아픈 사람도 있어. 핫초코 한잔을 만들 때도 먹는 사람을 다정히 생각해야 해.
엄마는 아들이 가장 편안해하는 온도를 알고 있지. 15분간 몸을 담그고 있을 정도의 목욕물 온도, 후루룩 마실 수 있는 국의 온도를 정확히 맞춰. 추운 겨울 아침에 일어나면 발이 시릴 것을 알고 미리 슬리퍼를 꺼내두고, 샤워하고 나오면 추울 걸 알고 폭신한 샤워가운으로 감싸주지.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 것도 모르고 뛰어놀면 차가운 얼음을 넣은 물을 내어주고, 땀이 식으면 추울까 봐 한여름에도 얇은 겉옷을 챙겨 다녀. 물론 아들이 가장 잘 먹는 핫초코의 온도도 잘 알아. 뜨거운 우유에 차가운 우유를 적절히 섞어서 내어주면, 아들은 단숨에 그걸 들이켜고선 ‘아 맛있다’하고 입가에 예쁜 초코 모양을 만들어 내잖아.
하지만 엄마가 그 온도를 알고 있음에도 맞춰주고 싶지 않을 때가 있어. 엄마 마음의 온도 조절을 하지 못할 때가 그래. 바쁜 아침에 아들이 늦장을 부릴 때, 해야 하는 공부를 계속 미루려고 할 때, 가시돗힌 말을 함부로 내뱉을 때 엄마의 마음은 너무 뜨겁거나, 너무 차가워져. 그때는 뜨거운 국도 그냥 마시라고 내밀고, 덜 데워진 차가운 물로 아들 얼굴을 씻겨 버리기도 해.
며칠 전 아침에는 전날 밤에 그렇게 일찍 자라고 했는데도 늦게 자고 미적미적 일어난 아들이 미워서 미처 식지 않은 뜨거운 국을 먹으라고 내줬어. 그랬더니 아들이 엄마 화난 걸 알았던 건지, 군소리 없이 국을 후후 불어가며 먹더라. 저렇게 스스로 식혀 먹는 것을 배우는 것도 필요한데, 그동안 엄마가 너무 딱 맞는 온도를 미리 맞춰주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어.
지난여름, 아들의 여름캠프 간식을 싸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어. 새로 만난 아들 친구가 간식으로 사과 한 개, 복숭아 한 개를 통째로 싸 온다고 했잖아. 그걸 보고 엄마한테도 과일을 통째로 간식으로 넣어달라고 했던 거 기억나니? 엄마는 항상 사과 껍질을 벗겨서 한 입 크기로 잘라서 간식으로 줬었는데, 더운 여름날에는 그냥 과일을 크게 한 입씩 베어 물어 먹는 게 더 맛있었나 봐. 농약이 좀 묻어있고, 껍질이 질기다고 해도 그렇게 사과즙을 손에 입가에 묻혀가며 먹는 재미도 있는 건데 엄마가 너무 안전하게만 아들에게 음식을 내어줬었던 거 같아.
엄마가 지나친 배려를 해왔던 게 분명해. 지금도 아들은 조금이라도 뜨거운 음식은 안 먹으려고 하지만, 아기 때부터 식혀먹는 걸 연습한 여동생은 뜨거운 것도 먹잖아. 엄마의 마음 온도 조절도 그래. 엄마가 화를 내기 싫어서 꾹 참고 있다가 꽥하고 소리를 지를 때가 있잖아. 그러다가 가족 외 사람에게는 싫은 소리 한마디 못하고 말이야. 그것보다는 화가 다 차오르지 않았을 때 엄마의 감정을 정확히 표현하는 게 나을 때가 있더라. 뜨거운 감정, 그리고 그걸 식히는 과정까지 모두 다 보여줘도 괜찮은 거더라고.
아들아, 그거 아니? 추운 겨울에 뜨거운 핫초코가 담긴 컵을 손에 쥐면 차가웠던 손이 따뜻해져. 김이 나는 핫초코에 코를 가까이 대면 달콤한 냄새가 코를 말랑말랑하게 만들지. 그 향기를 한번 쑥 코로 들이마시고, 다시 내뱉어 봐. 그리고 다시 한번 들이마시고 내뱉어. 그러면 달콤한 향기와 온기가 코에 가득할 거야. 그런 다음 입술을 살짝 핫초코에 대보고, 아직 뜨거우면 입으로 후후 불어봐. 공기가 입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갔다가 천천히 숨을 쉬다 보면 핫초코를 마실 마음의 준비가 돼. 그때 따뜻해진 핫초코를 목구멍으로 넘기면, 너는 최고 맛있는 핫초코를 먹게 될 거야.
마냥 아기 같던 아들이 점차 소년이 되어가고 있지. 엄마가 이렇게 뜨거운 핫초코를 식혀 먹는 방법을 차근차근 알려주지 못하고, 그냥 미리 식혀진 핫초코를 내밀어서 미안해. 엄마가 마음의 온도 조절하는 것을 배우지 못했던 것처럼, 아들이 뜨거운 핫초코를 식혀 먹는 것을 배우지 못했던 것뿐이야. 이제 우리 같이 배워나가 보자. 우리 자신에게 미리 맞춰진 완벽한 온도가 아니라, 스스로 식혀나가는 온도조절이 더 재밌을 거야.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게, 뜨거운 핫초코를 호호 불어 식혀 먹는 것도 꽤 맛있거든.
#읊기위한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