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는 대형 마트가 별로 없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는 농협 하나로마트가 대부분이다. 농협 하나로마트. 물론 정겹고 좋긴 하지만, 가끔씩 육지 기분을 내고 싶은 날이 있다. 파인애플, 아보카도, 오렌지 등등 외국에서 건너온 과일을 잔뜩 만나고 싶은 그런 날 말이다. 그런 날이면 1시간을 달릴 각오를 하고 영차 집을 나선다.
10시 오픈 시간부터 구경할 생각으로 9시에 집을 나섰다. 서귀포 이마트로 향했다. 노형동 이마트나 롯데마트보다는 서귀포에 있는 이마트가 왠지 모르게 끌린다. 노형동보다는 서귀포가 덜 복잡해서 운전하기 편하기도 하고, 이마트 바로 옆에는 내 기준 제주도 핫플인 (주차하기 편한) 맥도날드가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가는 길에 셀프 주유소에서 주유도 했다. (아직 1800원대다. 비싸다.) 얼마 전까지는 주유소에서 셀프로 주유하는 것도 바들거렸는데, 자주 하니까 덤덤해졌다. 노란 손잡이 호스를 기계에 걸고 내 차 주유구를 닫을 때면, 이런 내가 좀 멋있게 느껴져서 괜스레 매우 능숙한 척 주유구를 꽝 하고 닫아보기도 한다. 운전도 많이 익숙해졌다. 복잡한 시내에서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맞이할 때 급 당황하는 것은 여전하지만, 차 없는 쭉 뻗은 길을 운전할 때면 조수석에 있는 밤식빵의 밤을 골라 먹고 커피를 한 모금 들이킬 수 있는 정도의 여유가 생겼다.
10시의 이마트는 여유롭다. 동물 마크가 그려져 있는 차 옆에는 절대 주차를 하지 말라던 남편의 말을 떠올리지 않아도 될 정도로 주차장이 텅 비어 있다. 어디에든 주차가 가능하다. 장을 보고 나서 마트 바로 옆 맥도날드의 널따란 주차장에 능숙하게 주차를 하고, 혼자서 여유롭게 1955 버거세트를 사 먹을 계획을 세웠다. 마트 안에서 절대로 달달한 도나스의 유혹에 넘어가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며 장을 봤다.
별로 산 것도 없는데 10만 원이 훌쩍 넘은 영수증을 보며 주차장 키오스크 앞에 섰다. 키오스크 앞에서 잔뜩 불안한 모습으로 홀로 서성이고 계시는 백발의 어르신이 보인다.
"어르신 제가 도와드릴까요?"
"내가 이거를 어찌하는지 몰라서.. 큰일이네.."
"영수증 받아오셨어요? 영수증 주시면 제가 도와 드릴게요."
"내가 이거를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겁나서 마트를 못 들어가겠어"
어르신은 주차장에 주차를 하시고, 주차 정산하는 키오스크를 보시고는 어쩔 줄 몰라하며 마트에 들어가지 못하고 계셨다.
"어르신 제가 하는 거 잘 보세요. 이렇게 차 번호 찍으시구요, 그다음에 이 바코드 있죠. 줄 길쭉한 거 막 여러 개 그어져 있는 거 이거. 이걸 바코드라고 부르거든요. 이거를 여기 네모진 구멍에 불빛 나도록 갖다 대시면 돼요."
어르신 표정에 여전히 물음표가 보여 다시 설명해 드렸다. 이미 정산 완료 되었다고 나와서 말로 찬찬히 설명해 드렸다.
"아이고 고마워요. 진짜 진짜 복 받을 거야."
"저도 이거 어려웠는데 하다 보니까 돼요. 어르신 이거 별 거 아니에요 하다 보면 하실 수 있어요."
키오스크 앞에서 불안한 듯 서성이시던 어르신은 설명을 서너 번 들으시고는 그제야 안심이 되신 듯 마트 안으로 들어가셨다. 진심 어린 표정으로 나에게 복을 나눠주시며.
마트를 나와 바로 옆 맥도날드에 능숙하게(내 생각) 주차를 하고 1955 버거를 주문하려고 키오스크 앞에 섰다. 온통 키오스크로 가득한 요즘. 키오스크 앞에서 아이처럼 불안해하던, 진심으로 고마워하던 어르신이 떠올랐다.
할머니. 저도 운전 처음 배울 때 진짜 무섭고 불안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운전하다가 목마르면 커피도 한 모금할 수 있고 셀프 주유소에서 멋들어지게(내 생각) 주유도 해 내요. 집 근처 마트 안 가시고 대형 마트 문 앞까지 차 몰고 오신 것만 해도 대단해요.
키오스크. 진짜 별 거 아니에요. 이제 마트 안으로 들어가셔도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