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병원 쇼생크 탈출'

<장애인> 뇌경색에 걸린 아빠와 딸의 이야기

by 정겨움


아빠가 건강하셨던 시절, 나는 아빠를 이겨 먹었다.

아빠가 집안을 병적으로 뒤집고 나가면 절대 먼저 연락하지 않았다.


아빠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전화가 오면 화를 참지 못하고 말했다.


(나) 아빠 딸이라고 해서 아빠가 저한테 이럴 순 없는 거에요..


아빠가 아픈 후, 우리의 관계는 역전되었다.

그 기점이 언제였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빠가 ‘쇼생크 탈출을 감행한 날’ 부터였던 것 같다.


매주 주말이 되면 아빠는 살고 있던 천안 집에 가고 싶어 했다. 옷이랑 세면도구를 다 정리해서 가방에 넣고 새색시처럼 다소곳이 내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내가 장롱운전면허 소지자라, 운전할 수 있는 가족들의 도움을 받았다.


그러나 가족들이 매주 서울에 올라 올 수는 없었다.

한 달에 한 번 차를 갖고 와서 모시고 갔지만 아빠 성에 차지 않았다.



(나) 아빠, 이번주에 다들 바빠서 올 수가 없대요. 병원에서 나랑 데이트해요.


그렇게 다독이는 것도 한 두 번이지, 아빠는 점점 짜증을 내고 화를 냈다.


어느 날, 어떻게든 집에 가시겠다고 단단히 고집을 부렸다. 달래도 보고 애원해봤지만 듣지 않으셨다.


(나) 그럼 아빠 혼자 가던가 해! 난 못 가니까!!!


소리를 버럭 지르고 병실을 나왔다.

'아빠는 어쩜 저렇게 늘 이기적일까?'


흥분된 마음을 가라 앉히느라 두 세 바퀴 병원 주변을 걸었다. 걸으면서 생각을 정리하니 화가 가라앉았다. 하긴 당신도 오죽하시겠나 싶어서 가서 달래야지 하고 병실로 갔는데 안 계셨다.


간병인 분을 찾아서 아빠가 어디 계시냐고 물었더니 휠체어를 타고 짐을 챙겨서 나가셨다는 것이다. 아빠가 너무 화가 나 있어서 그냥 둘 수 밖에 없었다고, 왜 자기 전화를 받지 않았냐고 하시는데 전화기를 병실에 두고 그냥 나온 지라 전화를 받을 수 없었다.


병실 층을 빠르게 살폈다. 아빠가 자주 가는 다른 병실이나 탕비실, 화장실 모두 가 봤지만 허사였다.


(나) 혹시, 저희 아빠 못 보셨어요?

(행인1) 아까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가시던데?


‘내려갔다고?’

놀란 마음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갔다.

1층의 리셉션과 화장실, 로비를 모두 샅샅이 뒤졌지만 그곳에도 계시지 않았다.


(행인 2) 아~ 아까 병원 입구 나가시는 거 봤어요.

(나) 네???


정신이 혼미해졌다.

간호사 분께 부탁을 해서 병원 전체에 방송을 했다.아빠를 찾고 있으니, 보시는 분은 연락을 달라고.


그리고 나서 병원 밖으로 나가 주변을 미친 듯이 뛰어다니며 아빠를 찾았다.


(나) 아빠! 아빠!


병원 앞 산책로에도 아빠는 없었다.


(나) 혹시 휠체어 탄 환자 보셨나요?

(행인 3) 네.

(나) 어디서요?

(행인 3) 이 길 따라서 저 밖으로 나가시던데~


그 분이 가리킨 방향은 병원 밖 길이었다. 미처버릴 것 같았다. 인도를 따라서 정신 나간 사람처럼 뛰었다.


한참을 뛰어가니 사거리가 나왔고

그 사거리는 6차선 도로로 이어졌다.

‘어디에 계신거지?’


(나) 아빠~ 아빠~!!!


사거리가 끝나고 6차선 도로가 이어지는 지점에...


아빠가 있었다.



휠체어에 앉아

무릎 위에는 집에 가져갈 짐을 올려놓고는.


당신이 유일하게 쓸 수 있는 왼손을 열심히 들어 차를 세우려 했다. 흰 머리카락들이 바람에 나부끼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추운 겨울 날 속옷도 입지 않고 환자복 하나 입은 채로 말이다.


자기 밖에 모르는 아빠는 천안까지 가는 택시를 잡겠다고 6차선 도로 한 켠에 휠체어를 타고 앉아 있었다. 고집스럽게. 너무나 고집스럽게도.


(나) 아빠! 아빠! 아빠!!!!!!!


목놓아 아빠를 부르며 뛰어갔다.

아빠가 나를 무심하게 쳐다보았다. 아빠를 안고 주저 앉아 울기 시작했다.


(나) 아빠, 제가 잘못했어요 .죄송해요. 제가 진짜 잘못했어요.


-흐..흑…


아빠가 흐느꼈다. 내 삶의 가장 거대한 산이 어깨를 들썩이며 울기 시작했다. 아빠가 느꼈을 절망감, 답답함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우리는 서로 부둥킨 채 그 곳에서 한참을 울었다.


(나) 아빠 추워요. 우리 들어가요!


두르고 있던 목도리를 빼서 얼음장처럼 얼어버린 아빠의 몸에 두른 후, 병원으로 돌아왔다. 더 이상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 날 하루를 보냈다.


사실, 이제는 아픈 아빠가 할 수 있으면 혼자서 뭘 할 수 있겠나 싶었다. 그런데 아빠가 병원을 탈출했다. 한쪽 발로 말이다.


한쪽 발을 굴러서 휠체어를 타고 병원을 탈출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고,내가 아빠를 징글징글하게 사랑하고 있음을. 이젠 평생 이길 수 없음을 자각한 사건이었다


그 날 이후로

정말 나는 단 한번도 아빠를 이길 수 없었다.




아빠처럼 의지가 강한 사람을
난 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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