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가족을 견디어야 하는걸까?

<장애인> 뇌경색에 걸린 아빠와 딸의 이야기

by 정겨움

-네 아빠가 얼마나 모진 사람인 줄 아니? 내가 힘들다고 그렇게 애원했을 때 딱 잘라서 돈 없다고 했던 사람이야. 남들은 그렇게 잘 도와주고 후원하고 그러면서. 내가 그 생각만 하면 정말.. 죽을 때까지 못 잊지. 근데도 내가 온 건 형이라서 온 거야. 형이니까 어쩔 수 없어서. 근데 네 아빠 진짜 못되고 독한 사람이야.”


아빠가 아프고 나서 아빠의 형제 분들이 자주 오셨다. 보신탕을 사 들고 와서 아빠를 먹이고, 차를 태워서 고기를 사주시고, 그렇게 마음을 써 주는 작은 아버지들에게 그땐 감사했다.


누구나 마음에 생채기가 있다.

가까운 내 가족이 낸 생채기는 깊고도 진득하다.


힘들다고 했을 때 돈을 빌려주지 않았던 것에 대한 섭섭함은 충분히 이해되지만, 이제 와서 그런 말을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두 발로 제대로 서서 걷지도 못하고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아빠를 두고

이제 와서,

아빠 앞에선 한 번도 대놓고 말하지 못했을 원망을,


- 난 네 엄마 너무 싫어. 왜 이제 와서 네 아빠 곁에 얼쩡대는 건데? (제가 아빠 집에 모셔다 달라고 부탁한 거예요.) 그니까 그걸 왜 지가 하냐고~ 네 엄마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넌 모르지? 너한테는 엄마이겠지만 나한테는 남이야. 네 아빠 병신 되었다고 이제 와서 불쌍하대? 뭐 가져갈 거 거 있나 와 보는 거겠지. 진짜 다 사지를 찢어 죽여야 해.”


다른 작은 아버지가 격하게 엄마 흉을 볼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의 눈에는 우리 엄마는 나쁜 사람으로 보일 수밖에 없고, 설득시킬 수 없는 영역이니까.


그러나 배려가 없어도 한참 없었다. 그게 얼마나 깊게 벨 수 있는 말인지 생각하지 않고 자기감정에 취해서 이혼한 엄마 아빠를 둔 자식에게, 꼭 그렇게 해야 했던 것일까?


누군가에게 가족은 ‘견디는 관계’다.



사이가 어긋나면 어긋난 대로, 상처를 받으면 받은 채로 우리는 가족이기 때문에 무조건 용서해야 한다고 믿고, 그 말도 안 되는 폭력적인 관계를 견딘다.


그런데 왜? 가족은 왜 견디어야 하는 걸까?


난 아빠를 사랑하는 척하며 컸다. 아빠를 미워한다는 걸 들키면 천벌을 받을 것만 같았다. 사실은 내 감정이 미움에 가까웠음을 인정했을 때, 마음속 지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무조건 아빠를 사랑해야 하고, 견뎌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없어졌을 때야 아빠를 선택할 수 있었고, 그건 내게 치유를 의미했다. ‘어린 나’로부터 이별까지.


아빠가 쓰러지신 후 가족들과 소송을 했다. 2년에 걸쳐 대법원까지 간 길고 긴 시간들이었다. 아빠가 쓰러지셨을 때보다 더 많이 울었고, 황폐해져 갔다. 돈 앞에서 무섭게 변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무서웠다. 아빠를 지키겠답시고 친척들은 나 몰래 금치산자를 신청하고 아빠를 정신병원에 몰래 입원시켰다. 정신병원 복도에 앉아 대성통곡을 했던 그 날, 나는 다짐했다.


이런 게 가족이라면, 끊어버리겠다고.


아빠 돈을 지키려는 거라고 주장했지만 결국 자신들에게 돌아올 돈 계산에 그들은 눈이 멀었고. 아빠를 마구 휘몰아쳤다. “겨움이가 시킨 거죠? 겨움이가 하라고 했죠?” 아빠는 “응? 으..응” 반사적으로 답했고 이는 녹취가 되어 증거로 다음 재판에 제출되었다.


진실이 승리하는 세상이기 때문에 아빠는 승소했다. 물론 얻은 건 없다. 변호사비도 결국 받지 못했다. 가족 싸움은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진흙탕 싸움이다.


아빠가 원해서 시작했던 소송이었지만. 나는 그 소송으로 가족을 잃었다. 눈치 없고 자기밖에 모르는 아빠는 요새도 가끔 내게 “작은 아버지에게 전화해 봐 응?”한다. “싫어”라고 답한다.


(아빠) 아이참~ 왜 그래~ 잘 지내~


왜 그러긴. 아빠 때문에 이리되었습니다. 아저씨.


아빠 병원과 집을 왔다 갔다 하다 보면 원치 않게 가족들과 마주치는 경우가 있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서 한참 자신의 할 말만 늘어놓는다.


- 네가 어려서 뭘 몰라서 그래. 나중에 가족 생기고 그럼 너도 알 거다. 네가 우리 집안 망신을 시킨 거야. 어디서 소송을.. 그래도 지난 일이니 다 잊어야겠지. 너도 그땐 그게 옳다고 생각했을 테니까. 그래도 인마. 넌 강씨야. 내 조카고”

.

가족이니까 참고, 가족이니까 용서해야 하고, 가족이니까 어떻게든 다시 봐야 한다고?


나는 가족주의 문화를 경멸한다.


- 네 딸년이 어미를 쏙 빼닮았어. 너 닮아서 지옥 불에서 타 죽을 거야.

그들은 엄마에게 이렇게 문자를 보냈다.


- 너 회사 생활 제대로 하고 싶어? 제대로 못하게 내가 만들어 줄까? 사람 미친 꼴 보기 싫으면 까불지 마” 그들은 내게 문자를 보냈다.


소름 돋는 건 아직도 그들은 나를 가족이라고 여기고, 진심으로 아껴주는 듯 행동하는 거다.


엿이나 먹으세요. 다들.

저는 제 아빠 하나만 보고 살렵니다.


아.. 오랜만에 격하게 글 썼더니 달달한 게 땡긴다.


모든 견디는 관계여, 안녕.
가족이라 해도, 안녕



아이스바닐라라떼에게 노벨평화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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