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신고를 몰래 하긴 더 쉽답니다.

<장애인> 뇌경색에 걸린 아빠와 딸의 이야기

by 정겨움

<주의> 집중해서 읽지 않으면 어떤 엄마 이야긴 지 당최 헷갈리는 챕터입니다.


이 글을 쓸까 말까 고민이 앞선다. 이 책에는 나의 치부가 많이 들쳐져 있는데. 이렇게까지 더 드러낼 필요가 있나 싶기 때문이다. 이 챕터가 함께 출간될지 말지는 좀 더 고민해 봐야지. “사람들한테 아픈 손가락을 보이지 마. 그 손가락을 문다.” 친엄마가 해 줬던 말이 스쳐 지나간다. 엄마 말은 늘 맞았는데..


아빠가 쓰러지신 후, 아빠와 이혼한 두 명의 전처는 고생하는 자식들을 위해서 물심양면으로 돕기 시작했다. 나를 키워준 어머니(a)는 음식거리를 해서 언니 오빠들 편에 보내왔고, 내 친엄마(b)는 아빠를 주말마다 천안에 모시고 가는 운전기사 역할을 해 줬다.


(이해를 돕기 위해 키워주신 어머니는 a, 친엄마는 b로 병기하겠다)


- 네 친엄마(b)가 왜 자꾸 아빠 병실에 들락거리시는지 모르겠어. 불편해.


언니가 전화로 용기를 내서 말해줬을 때 귀 기울여야 했을지도 모른다고 훗날 생각했다. 쓰러진 아빠가 유난히 친엄마(b)를 찾는 것이 그들에게는 큰 두려움으로 작용했을 텐데, 세상 이치에 밝지 못한 나는 짐작도 못했다.


아빠와 서울 병원 생활을 하던 어느 날, 친엄마(b)가 전화했다.


-겨움아, 오늘 광주 형님네 다녀왔는데 (아빠의 오래된 모임이다) 거기서 이상한 소리를 들었거든? 아빠 주민등록등본 좀 떼봐. a가 와이프 행세를 하고 다닌데.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답했지만 엄마(b)가 너무 심각하게 말해서 점심시간을 이용해 아빠의 주민등록등본을 떼러 동사무소에 갔다. 그리고 내 삶에 다시 한 번 영화 같은 일이 벌어졌다.


아빠와 나를 키워 준 엄마(a)와 혼인신고가 되어 있는 것이었다.


하하하하하하하~

감당이 되지 않을 땐 웃는 게 장땡이다. 삼류 드라마 같은 이런 순간은 정말 기분이 엿 같다. 속인 건 잘못된 거지만 이걸 기회로 아빠 곁에 누구라도 있어준다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나) 아빠. 그냥 어머니(a)랑 같이 사세요.


아빠는 몇 날 며칠을 울었다. 소송을 하겠다고 했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그러나, 아프다고 해서 개인의 삶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다. 나는 아빠의 삶을 지키고 싶었고, 아프다는 이유로 당사자 몰래 삶을 휘젓는 가족들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했기에 아빠 편에 섰다.


용기를 내서 키워 주신 어머니(a)께 전화했다. 잘못될 경우를 대비해서 녹음기까지 켰다. 어떻게 아빠랑 나 몰래 혼인신고를 하실 수 있냐고 묻자, 어머니(a)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어머니 a) 네 아빠가 하자고 해서 한 거다.

(나) 거짓말하지 마세요.

(어머니 a) 내가 왜 너한테 거짓말을 하니? 네 아빠한테 물어봐.

(나) 아빠는 그러신 적 없대요. 그렇다 쳐도, 어떻게 저한테 말씀도 안 하실 수 있어요?

(어머니 a) 아니.. 왜 너한테 말해야 하니? 어른들의 일에 네가 왜 다 끼어들려고 해? 네 엄마(b)랑 혼인신고하려다가 안 거지?

(나) 혼인신고를 왜 해요. 그럴 일 없어요.

(어머니 a) 넌 왜 네 엄마만 된다고 생각하니?


그녀(a)는 나보다 세상 풍파를 더 많이 겪은 어른이었다. 능숙하게 대처했다.


친엄마(b)와 아빠를 재결합시킬 의도는 없었다고.. 앞으로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다고, 모든 게 오해니까 이혼해 달라고 말했지만 소용없었다. 아빠가 원해서 한 혼인이라는 게 그들의 주장이었다. 아빠의 형제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 넌 딸이잖아. 결혼하면 네 아빠는 누가 모시니? 그냥 잠자코 가만히 있어.

작은 아버지들이 말했다. 혼인무효소송을 하겠다고 하자 ‘돈 욕심을 버리라고’ 내게 충고했다. ‘네 엄마(b)가 나서면서 이 모든 사단이 난 거라는’ 원망 섞인 말도 함께.


생각해보니 나의 순진함이 화를 자초했다. 난 언니 오빠를 믿었다. 언니 오빠는 나를 믿지 못했는데. 우린 서로 믿는다고 착각했다. 아빠가 한창 분당 병원에서 나와 재활을 하고 있을 때, 오빠들이 아빠 사업 처리를 위해 ‘인감 증명서’를 떼어 달라고 했었다. 아빠가 유일하게 내 말을 들었기 때문에 아빠를 달래서 동사무소에 가서 인감 증명서와 인감도장을 넘겼다. 혼인신고서에 제출될 용도인 줄은 꿈에도 모른 채.


혼인 신고는 당연히 아빠 없이 진행되었다. 혼인신고가 되었던 날 아빠는 분당 러스크 병원에서 나와 함께 재활치료 중이었다. 혼인신고 문서를 확인해 보니 큰 오빠와 언니가 증인으로 섰다.


본인 없이도 인감 증명 도장, 신분증만 있으면 되고 대리인 2명만 증인으로 서면 혼인신고가 될 줄이야!


그 날부터 지옥 같은 2년이 흘렀다. 변호사를 선임하고, 탄원서를 처음 써 봤고, 1심이 승소하자 항소를 해서 고등법원에 갔다. 가장 중요한 건 아빠의 증언이었다. 혼인신고를 했을 때 어디 있었냐는 질문에 아빠는 중국이라고 답했다. 띠용~ 판사는 이해하지 못했다. 나도 이해하지 못했으니. 뭐.. 아빠의 대답이 온전치 않아서 한 번만 물으면 안 되고 여러 번을 되물어야 한다는 걸 판사는 알고 있는 듯했다.


(판사) 혼인신고는 본인 의사로 하셨습니까?

(아빠) 네… 아.. 아뇨.

(판사) 하나만 대답하셔야죠. 본인 의사로 하셨나요?

(아빠) …. 아니요.

(판사) 지금. 부인이 있으세요?

(아빠) 네.


모두 긴장….


(판사) 부인 이름이 뭐죠?

(아빠) 김. 미. 영입니다. (판사님 어리둥절!)


‘두 번째 이혼한 와이프 이름을 대는 것인가? 세상에. 엄마(b)를 부인이라고 답하다니. 정말 우리 아빠지만 예상할 수 없는 사람이야.’


돌아보면 우리 모두 진심으로 아빠를 사랑했다. 그때는 죽도록 미워했지만, 알고 있다. 언니 오빠들이 마냥 못 돼서 그런 일을 저지를 사람들이 아니다. 사실 그들은 착하고 순한 편에 속한다. 흑과 백을 나눠 미워하는 게 더 편하겠지만 세상만사 이분법적 논리로 나누는 것만큼 어리석은 건 없다.


그들은 나와 다른 방식으로 아빠를 사랑했다. 언니 오빠는 아빠에게 최우선인 것보다는 자신들의 입장에서 최우선인 것을 선택했다. 그래서 아빠의 돈을 지키기 위해 자신들의 어머니(a)를 설득해서 남은 삶을 아빠 곁에서 호적상 만이라도 있어주길 간청했다.


그들은 내 엄마(b)가 아빠를 꼬드겨서 재산을 빼낼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돈. 돈. 돈 노래하는 우리 아빠 돈은 아무도 못 가져가는데 말이다.


나는 아빠의 입장에서 생각했다. 분명 아빠는 친엄마(b)와 재결합하길 원했다. 그러나 엄마의 삶도 아빠만큼 중요했기 때문에 엄마와 재결합하기를 희망하는 아빠에게 “그런 일은 없을 거다”라고 단언했다. “엄마가 미안해도 그 마음 때문에 재결합하는 건 안된다고” 엄마에게 말했다. 그 마음은 지금까지 유효하다.


언니 오빠는 여전히 믿고 있다. 자신들이 그나마 혼인 신고를 해서, 내 엄마(b)와 아빠가 결혼하지 않았다고. 그렇게 믿어야만 그 엄청난 짓을 한 게 위로가 되겠지. 근데 내 목숨을 걸고 말하지만 아니다. 그것은 오버였다. 개. 오. 바.


당사자가 없어도 혼인신고를 너무 쉽게 할 수 있는 대한민국 법 때문에,

혼인무효소송을 2년 넘게 했다.


아빠는 승소했다. 나는 가족을 잃었다.



용서란
타인에게 베푸는 자비심이라기보다,

흐트려지려는 나를
나 자신이 거두어들이는 일이 아닐까 싶다.

-무소유, 법정스님-



#용서하기 싫은 밤에.

keyword
이전 09화왜 가족을 견디어야 하는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