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 뇌경색에 걸린 아빠와 딸의 이야기
잠깐 만났던 남자가 있었다.
체대를 나와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었고, 인물이 시원시원하게 생겼다.
처음 만나서 이야기를 해 보니 평범하게 잘 맞았다.
두 번째 만났던 날은 비가 와서 전집에 가서 막걸리를 한 잔 했다.
술이 들어가니 호구조사가 들어온다.
능청스럽게 자신의 가족 이야기부터 늘어놓는다.
(남자) 저희 집은 한 번도 큰 소리가 난 적이 없어요. 아버지랑 어머니가 다투시면 항상 밖에 나가서 다투셨거든요. 어렸을 땐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대단하신 것 같아요.
(나) 정말 멋진 부모님이시네요.
쨍그랑 쨍그랑거렸던 우리 집과는 다른 풍경.
나도 그런 집을 늘 꿈꿨었는데.
호감도 +50.
(남자) 저는 사실 이혼하고 이런 집 이해 안돼요. 주변에도 간혹 있는데. 관계라는 게 한쪽이 참으면 더 나빠질 게 없는데 못 참고 이혼하는 거잖아요. 인내심이 부족하다고나 할까?
암튼 그래서 전 절대 이혼은 안 할 거예요.
(나) 아 네에…
갑자기 말문이 막힌다. 뭐지 이 불편함은?
(남자) 가정교육이 중요한 거잖아요.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 싸운 거 보고 큰 애들은 확실히 과격하더라고요. 주변에 이혼하는 애들도 보면 다 어렸을 때 가정이 평범하지 않아요. 웃기죠? 저는 그런 생각도 해요. 어떤 유전자 같은 게 있지 않나 하는... 불우한 가정에서 큰 애들은 그런 과격한 유전자를 갖고 있는 거죠. 그래서 커서 결혼을 해도 불우하게 살 가능성이 높은 거죠.
(남자) 나치가 유대인들 탄압했을 때, 그 민족성을 말살시킨 거잖아요?
(나.. 나치? 왜 여기서 나치 이야기까지 나오지?)
저는 그런 유전자가 있는 사람들은 결혼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아! 그 장애인들이 유전되는 거랑 같은 이치죠.
발가벗겨진 채로 난도질을 당할 때
이런 느낌일 걸까,
당혹감과 불쾌감이 한순간에 내 몸을 덮쳤다.
순간 술상머리를 뒤집어 엎어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아 이게 이 자식이 말하는 과격한 유전자인가?’ 하는 생각에 이성의 끈을 꽉. 부여잡았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내 맘에 들겠다고 어필을 하고 있는 걸텐데,
상황이 너무 우스웠다.
(나) 저 말씀 중에 죄송한데.. 저희 집 이혼했어요.
(남자) 네? 아 네에… 왜 이혼하신 건지 여쭤봐도 될까요?
(나) 엄마랑 아빠가 함께 있을 때 세상 제일 불행했거든요. 아까 말씀하신 그 유전자, 그런 게 있다면 제가 있겠네요. (웃음)
(남자) 아… 겨움씨는 그래 보이지 않아요.
속으론 이렇게 생각했다. ‘늦었어. 새꺄’
(남자) 이혼하신 지는 얼마나 되신 건데요?
(나) 8년 되었나.. 제가 이혼했으면 좋겠다고 그래서 한 거라 원망하지 않아요.
(남자) 아 네에…
술자리는 내가 계산했다.
그래야 마지막 자존심을 지킬 수 있을 것 같았다.
(남자) 아~ 이렇게 얻어먹었으니, 다음번에는 제가 커피 살게요. 잘 아는 커피숍이 있는데 정말 예쁘거든요.
그와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그는 뭘 잘못했는지 전혀 몰랐다. 만나자고 계속 연락이 왔고, 난 답하지 않았다.
다름에 대해서, 의사표시는
‘싫다' 정도면 충분하다.
한 치 앞에 있는 사람의 사정도 모른 채
떠드는 사람들 때문에 피곤시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