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어깨 나의 무릎

2화

by 안스

보통 때라면 비행기가 랜딩 할 때까지 잠이 든 듯 상념에 빠지기 바빴던 서호의 두 눈은 오늘은 유독 말똥말똥했다. 3일 동안 이어진 철야의 피로함은 어느샌가 뒷전이 되어버렸다. 맑은국 속 풀어져있는 계란 같은 구름을 일일이 쳐다보며 서호는 오늘처럼 비행기가 빨리 착륙하기를 바란 적이 없었다. 드디어 우리 비행기는 곧 김포공항에 착륙하겠사오니 자리에 앉아 안전벨트를 차라는 캐빈 크루의 안내가 들려오고, 몇 분 후 그를 태운 KI1850 비행기는 김포 공항에 바퀴를 디뎠다. 서서히 속력을 늦추던 비행기가 멈추며 안전벨트 표시등이 꺼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서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카메라 가방을 챙겼다.


브리지와 연결되는 앞 문을 뚫어져라 노려보던 서호는 잠시 후 문이 열리자마자 조급함을 숨기지 않고 서둘렀다. 그의 두 발은 모터가 달린 듯 앞으로,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가 짐 찾는 곳을 향해 달려 나가는 그 몇 초간 KI1850기와 게이트를 연결하는 브리지는 권서호의 심장박동 소리를 대변하듯 그의 발소리로 쿵 쿵 울렸다. 이진이 탔던 비행기 편명은 OE2530. 두리번거리며 전광판에서 그녀가 탔던 편명을 찾던 그의 시선이 일순 어느 곳에서 멈추었다. 제주에서 실어 보낸 자신의 수화물은 이미 안중에 없었다. ‘제주 OE2530 도착’이라는 짧은 문구아래 수 십 명의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고, 그 앞에 놓인 레일에서는 비슷비슷한 캐리어들이 질서 정연하게 돌아가며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두 눈에 힘을 부릅주며 시선을 옮기던 서호의 안색에서 더욱 조바심이 느껴졌다. 없다. 집중해서 찾아봐도 제주공항에서 보았던 이진의 모습이 포착되지 않았다. 벌써 빠져나간 건가. 뭐가 그리 급하다고. 서호는 어깨에 대충 둘러멘 카메라 가방 끈을 다시 올려 매며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자동문을 나섰다. ‘이 문을 나서면 다시 들어오지 못합니다.’라는 문구를 사뿐히 지르밟으며.


바쁘게 지나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서호는 고개를 왼쪽, 오른쪽으로 홱홱 돌리며 이진의 흔적을 좇았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이진의 코빼기는커녕 그림자조차 찾을 수 없었다. 벌써 지하철을 타러 내려갔나? 버스를 타고 갔나? 에스컬레이터로 향하던 그의 발걸음이 갈 곳을 잃고 버벅거렸다.


“… 하.”


낮게 한숨을 토해내던 그의 낯빛에서 절망감이 느껴졌다. 어금니에 힘을 주자 그의 턱에도 바짝 긴장이 들어갔다. 십 사 년 전, 이진이 거짓말같이 사라졌던 그날 느꼈던 기시감이 다시금 날이 설게 다가오자 서호의 손끝이 덜덜 떨렸다. 그는 시선을 올려 멍하니 눈앞의 인파를 바라보았다. 망할 년. 보이지나 말지. 눈에 띄지나 말지. 제주공항에서 승무원이 건넨 탑승권을 반듯이 접던 이진의 얼굴이 그의 눈앞에 그려지는 듯했다. 2011년에는 경계심을 잔뜩 나타내는 길고양이 같던 그녀의 표정에는 이제 관록이 묻어있었다. 도도함에 편안함이 얹어진 이진의 얼굴을 다시금 떠올리던 서호는 자신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으며 속으로 되뇌었다. 이쁘기는 여전히 이쁘네. 나쁜 년.




“오셨어요.”


밤 열 시가 되어서야 스튜디오 문을 열고 들어온 서호를 발견한 서준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의 눈치를 살폈다. 이 문을 나서면 다시 입장할 수 없다는 그 문구를 무시한 대가는 생각보다 귀찮았고 번거로웠다. 신분증과 탑승권을 제시하고 보안요원의 확인을 거치고, 자신이 타고 왔던 항공사의 승무원에게 재차 컨펌을 받고 나서야 안에서 덩그러니 홀로 놓여있었던 그의 캐리어는 밖으로 질질 끌려 나왔다. 서호는 서준의 인사에 손을 들어 대답을 대신하고는 피곤한 기색을 역력히 드러내 보이며 가죽소파에 몸을 묻으며 눈을 감았다.


콘티 북을 내려다보고 있던 조연출 미라는 서준에게 입술을 동그랗게 말아 보이며 ‘왜?’라고 묻고 있었다. 길게 말 못 한다는 뜻을 표하듯 서준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낮게 들어 엑스자를 그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짙은 암갈색의 가죽소파에 두 눈을 감고 누워있던 서호는 느릿하게 눈을 뜨며 입술 끝을 움직였다.


“서준아. 사방팔방 찾아도 안 찾아지던 사람이 십 사 년 만에 비행기 타기 직전에 만날 확률이 얼마나 되는 것 같냐.”

“…아. 혹시 아까 전화로 말씀하시던 그 첫사랑 말씀하시는 거예요?”

“… 아주 작정을 하고 꽁꽁 숨어버린 애를 불과 몇 미터 사이에 두고도 나는 모르고 있었네.”

“감독님 같은 분도 첫사랑이 있었어요?”


눈치도 없이 미라가 둘의 대화 사이에 끼어들어오자, 서준은 미간을 좁히며 그녀를 노려보았다. 다시 한번 왜? 라며 입술을 동그랗게 오므린 미라는 다시 서호에게 시선을 옮겼다. 서호가 대답이 없자 미라는 콘티북을 옆으로 내려놓으며 다시금 물었다.


“아니, 얼마나 좋아했길래 십 사 년이 넘게 잊지를 못해요? 진짜 찐사랑이었네….”

“찐사랑 같은 소리 하네.”

“네?”

“아주 천하의 나쁜 년이었지.”

"심지어 감독님이 차였어요?"

"차라리 차이기라도 한 거면 매달리기라도 했겠지. 이건 뭐, 눈 떠보니 사라져 있어."

"게다가 잠수이별…. 대박이네요. 감독님 입에서 매달린단 소리 나오는 거 첨 들어봐요. 안 어울려요."

"걔 앞에서 안 어울리는 짓거리 많이 했지. 나사 빠진 놈처럼."


자조하듯 읊조리며 서호는 천정의 등을 바라보았다. 그의 머릿속에 일정하지 않은 기억의 파편들이 정물의 형상을 하고 둥둥 떠올랐다. 비에 젖은 컨버스. 파란색 배턴. 네 잎클로버를 들고 있는 고양이 캐릭터 키링. 싸구려 얼음빙수. 주사위 같던 젤리. 빨간 유성매직. 오른쪽 이어폰. 검정치마의 노래. 그리고… 능소화. 능소화. 능소화.


혀 끝에서 씁쓸함이 느껴지는 건 결국 능소화를 떠올렸기 때문일까. 느리게 꿈벅이던 그의 시선에 일순 힘이 들어갔다.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인터넷 포털 어플을 클릭한 서호의 손가락이 잠시 멈칫했다. 복기해 보니, 이진의 차림새는 제주에 놀러 온 사람 같아 보이지 않았다. 연한 하늘색의 반팔 블라우스와 검은색 슬랙스, 언뜻 생각나는 같은 색의 단화. 그리고 노트북 가방. 짙은 남색의 기내용 캐리어. 휴가를 보내러 제주에 갔다 치기엔 꽤 포멀 한 복장이었다. 만약 놀러 간 것이 아니라 일하러 간 것이라면? 출장으로 제주에 갔었던 거라면? 서호는 검색창 옆의 돋보기 모양을 물끄러미 올려다보며 추리하기 시작했다. 출장으로 제주에 갔다가 토요일 오후에 올라오는 일정이라. 그러기엔 또 차림새가 금방이라도 미팅이 끝난 것 같았단 말이지. 토요일까지 비즈니스 회의를 진행하는 회사? 가능성 없다. 그럼…. 강연이라면? 주말에 열리는 강연에 참석하고 올라가는 길이었다면? 곧 그의 손가락이 바쁘게 움직였다. ‘제주 윤이진’을 입력하자마자 해당 단어를 일부 포함하는 뉴스와 포스팅이 일제히 검색되었고, 스크롤을 죽죽 내려가던 그의 입가가 아무도 모르게 파리하게 떨렸다.


‘제주시도서관 개관 기념 서예가 겸 캘리그라퍼 윤이진 초청 <붓으로 펼치는 내면의 세계> 강연’


찾았다.


도서관 홈페이지에 올라온 행사 관련 공지를 읽어 내려가던 서호의 눈빛이 형형해졌다.


“… 감독님?”


휴대폰에 시선을 처박고 있는 서호의 낌새가 이상한 듯 서준이 눈치를 살폈다. 이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서호는 휴대폰을 자신의 옆에 내려다 놓더니 손을 들어 마른세수를 했다. 그리고 서호는 가만히 서준과 미라를 번갈아보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이번 뮤비 타이틀 타이포는 아날로그 방식으로 가자.”

“…네?”

그의 말 뜻을 알아듣지 못한 서준과 미라가 동시에 물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미 결정을 내린 듯 서호는 다시금 소파에 몸을 뒤로 기대며 덧붙였다.


“어딨는지는 찾았고, 이제 도망 못 가게 해야지.”


keyword
목요일 연재
이전 01화너의 어깨 나의 무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