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어깨 나의 무릎

5화

by 안스

이상하게 그날따라 서호의 시선은 창 밖으로 흘렀다. 오후부터 비가 세차게 내릴 거라는 일기예보대로 구름은 저마다 입 안 가득 비를 머금고 있었다. 우중충한 날씨 때문인지 꿉꿉하고 지루한 기분이 이어지자 서호는 또 다시 살짝 열린 창문 밖으로 눈길을 돌렸다.


5월 말이 가까워지던 어느 날의 2교시 국어 시간.

첫 번째 분단 창가 쪽 맨 뒷 줄에 앉은 서호는 인조 잔디가 깔린 운동장을 멍하니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때 교문 정문을 지나 서호의 교실이 위치한 본관 건물을 향해 걸어오는 한 여학생의 실루엣이 그의 눈에 포착되었다. 검은 백팩을 메고, 비슷한 흑색 생머리칼이 그녀의 걸음걸이마다 스산히 움직였다. 3층 교실에서 가만히 그 아이를 내려다보던 서호의 눈빛에 이유 모를 호기심이 번졌다. 왜 지금에서야 등교를 하는 거지? 근데 첨 보는 애 같은데. 하고 생각하던 서호는 오른손으로는 턱을 괴고, 본능적으로 왼손의 검지와 엄지를 모아 오케이 사인을 그려 자신의 왼쪽 눈에 가져다 대었다. 오른쪽 눈을 질끈 감은채 초점을 왼쪽 눈동자에 모은 후 모아진 동그라미 사이로 여전히 활기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그녀의 모습을 서호는 그안에 가두어보았다. 그녀가 건물을 향해 점점 다가오는 동안 그의 손가락도 그녀를 따라 점점 아래로 내려갔다. 평소 무언가를 프레임에 담아 관찰하기를 좋아하는 서호 특유의 습관이었다.


순간 그녀의 걸음이 우뚝 멈추었다. 그 바람에 서호의 동그라미 손가락도 잠깐 그대로 공중에 떠있었다. 이내 한 손을 위로 든 그녀는 마치 자신을 가둔 서호의 손길을 알아차리고 치우려는 듯 허공에 대고 손을 내저었다. 우연인 듯 기가 막힌 타이밍에 서호의 한쪽 입가가 피식하고 올라갔다. 그러고 나서 다시 앞으로 걸어가던 그녀는 또 몇 걸음 가지 않고 그 자리에 정지했다. 서호의 손가락 프레임 안에서 움직이던 그녀의 행동이 또다시 멈추자 서호는 자신도 모르게 창문 쪽으로 고개를 더욱 붙였다. 잠깐 멈추었던 그녀는 갑자기 오른쪽으로 몸을 홱 돌리더니 방향을 바꾸어 대각선으로 걷기 시작했다. 설마, 저 거리에선 내가 절대로 보이지 않을 텐데. 황당하고 의아한 궁금증이 그의 머릿속에 튀어 올랐다.


서호는 동그라미를 만들고 있던 손가락을 책상 위로 올렸다. 힘없이 축축 처지는 걸음을 그래도 자꾸만 앞으로 내딛으며 걷는 그녀의 행동을 집중해서 따라가는 그의 눈빛이 점점 형형해졌다. 방금 전까지 착 가라앉아있던 기분은 어느새 점점 환기되고 있었다. 예상했던 반응대로 움직이지 않는 피사체를 발견한 서호는 터덜터덜 걸어오던 여학생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그녀를 계속 좇았다.


프레임을 자꾸 벗어나네.

작게 중얼거리던 서호의 입가는 비를 머금은 구름처럼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권서호. 한 눈 팔지 말고 수업에 집중하자.”

“넵.”


너무 대놓고 창 밖을 향해있는 서호의 고개를 발견한 선생이 지적하자, 그는 몸을 정면으로 돌리며 짧게 대답했다.

이내 선생이 칠판을 향해 뒤를 돌자, 그 찰나에 서호는 다시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지만 방금까지 운동장 한복판을 휘적거리며 걷던 여학생의 모습은 이미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린 상태였다.


‘내가 헛것을 봤나.’

마치 귀신에라도 홀린 듯 서호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발자국 소리도 나지 않을 것처럼 힘없이 걷던 그녀의 모습이 그의 머릿속에 잔상으로 남아 아른거리고 있었다.




“서호야. 담임 선생님이 너 교무실로 오래.”

2교시 끝난 쉬는 시간, 단발머리 여학생이 서호에게 다가오더니 수줍어하며 말했다.


무슨 심부름시킬 것이라도 생겼는지 2학년 3반 반장을 맡고 있던 서호는 아래층에 있던 교무실로 향했다. 교무실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간 그의 시야에 방금까지 희한하게 걷던 그 여학생이 새초롬한 표정으로 담임 옆에 서 있는 것이 들어오자 그의 두 눈은 버퍼링에 걸린 듯 꿈벅거렸다. 멀리서 서호를 발견한 담임이 손짓을 하며 그를 불렀다. 담임을 향해 다가서던 서호의 시선은 여전히 그 여학생에게 시선이 집중된 상태였다.


“… 서호 왔구나. 여기는 오늘 우리 반에 전학 온 윤이진. 이진아 여기는 우리 반 반장 권서호.”


은색 테의 안경을 쓴 40대 중년의 담임이 사무용 의자에 앉은 채로 둘을 인사시켰다. 이진은 무표정의 새초롬한 얼굴 그대로 시선만 조금 올리며 서호를 잠깐 보았다가 다시 시선을 내렸다. 서호는 이 이상한 우연의 정체를 의심스러워하며 다소 경직된 얼굴로 이진을 바라보았다.


“… 오늘 이진이가 조금 늦게 오는 바람에 이제야 등교하긴 했는데, 곧 다음 수업도 시작하니까 정식 소개는 오늘 종례시간에 하자. 서호는 이진이 데리고 교실 안내해 주고, 자리는 음, 혜민이 옆자리에 앉으면 되겠다.”

“네.”


단답 하며 짧게 목례한 서호는 그 자리에 망부석처럼 서있는 이진을 보며 바깥을 향해 고갯짓 했다. 교무실 밖으로 나서는 서호의 뒤를 따라 걷는 이진의 걸음걸이는 역시나 발소리도 들리지 않을 만큼 작았고 힘이 없었다. 아까 전 운동장을 질러오던 이진의 움직임이 문득 떠오르자, 그녀보다 살짝 앞서서 걷던 서호의 입꼬리가 또다시 돌멩이가 튄 듯 피식하고 위로 올랐다. 그 모습을 뒤에서 따라오던 이진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서호는 얼른 손을 들어 입가를 가렸다.


‘희한하네. 미쳤나?’

스스로도 갑자기 튀어 오른 웃음에 어이가 없었는지 서호는 속으로 자학하듯 되뇌었다. 3층의 2-3반 교실로 올라가는 계단을 딛기 전 서호는 뒤를 돌아 이진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왼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이름이 윤이진이라고 했지? 앞으로 잘 지내보자.”


멀뚱히 서호가 내민 손을 내려다보던 이진은 고개를 올려 그를 한 번 올려다보더니 그가 내민 손을 악수하지 않고 몸을 돌려 먼저 계단을 올랐다. 때문에 그의 왼손은 다시 한번 예상치 못한 그녀의 행동에 허공에 붕 떠버렸다. 천천히 계단을 오르는 이진의 뒷모습을 따라가며 서호는 오갈 데 없이 떠있던 왼손을 내려 교복 바지에 쓱 문질렀다.


“역시 희한하네.”


작게 중얼거리던 서호는 말없이 그녀의 뒤를 따라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아직은 우연이 욱하기 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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