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어깨 나의 무릎

6화

by 안스

서호의 뒤를 따라 웬 여학생이 쭈뼛대며 교실로 들어서자, 반 아이들의 시선이 금방 집중되었다. 오늘 전학 온 친구라는 서호의 짧은 인사와 덧붙여 그는 이진에게 혜민의 옆자리를 안내해 주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서호에게는 도도하고 냉랭하던 태도와 달리 동성의 여자친구들에게 둘러싸인 이진은 다소 어색하고 눈치를 보는 듯했다. 이제 신경 쓰지 말자, 생각하며 서호는 곧장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직도 입 안 가득 비를 우물거리고 있는 구름들이 하늘 가득 모여있었다.


4교시까지 끝난 후 점심시간이 시작되자, 혜민과 그 무리들은 이진을 데리고 급식실로 종종거리며 달려갔다. 혜민에게 팔이 잡힌 채 교실 뒷문을 빠르게 빠져나가는 이진의 뒷모습을 은근슬쩍 좇던 서호의 시선이 배영에게 들킨 듯했다.


“… 권서호. 반했냐?”

“뭐래.”

“아까부터 계속 시선이 말이야. 엉?”


배영은 검지와 중지를 들어 브이자를 보이더니 자신의 눈앞에 가져다 대었다가 서호의 눈동자 앞으로 손가락을 옮겼다. 서호의 옆자리에 앉은 배영은 3교시부터 4교시가 끝나는 내내 옆 분단 이진의 자리로 흘깃흘깃 새어나가는 서호의 눈길을 벌써 알아차린 듯했다.


“아니야. 그런 거.”

“흠. 아닌 게 아닌 거 같은데.”

“아니라고. 그냥 전학생이니까 신경 쓰여서 그렇지. 좀 못 어울리는 거 같아서.”

“10년 동안 아직 내 생일도 못 외우는 네가, 오늘 전학 온 여자애가 갑자기 신경 쓰인다고? 지나가는 개가 웃지 인마.”

“됐어. 밥이나 먹으러 가자. 배고프다.”


배영의 어깨에 손을 턱 올리며 말을 돌리는 서호의 어색한 행동을 지켜보며 배영은 가자미 눈을 뜨며 그를 흘겨보았다. 지켜보겠어,라고 덧붙이는 배영의 뒷말이 끝나자마자 서호의 주먹이 가볍게 날아와 배영의 아랫배를 쳤다. 윽, 하며 배영은 오버액션을 보였고 서호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민망한 웃음을 지으며 배영의 머리를 헤드락 걸었다. 수업 내내 자신도 모르게 시선이 자꾸 이진에게로 향하는 이유를 서호 본인도 아직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런 느낌은 처음이었고, 그런 궁금증도 초면이었다.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야 서호는 그런 마음을 일컬어 첫사랑이라고 부른다는 걸 깨달았다.




급식을 먹고 매점에서 가볍게 탄산음료를 한 캔 씩 마시고 교실 뒷문으로 들어오는 서호의 걸음이 주춤거렸다. 어수선해진 분위기의 중심에는 잔뜩 당황함을 베어문 이진과 그 앞에서 먹음직스러운 먹잇감을 내려다보는 포식자의 눈빛으로 이죽거리는 철진이 있었다. 이진의 옆자리인 혜민은 이진보다 더 당황한 눈빛으로 마침 들어오던 서호와 배영의 시선과 마주쳤고, 미간을 찌푸리며 그들에게 급하게 SOS를 보냈다. 경계심보다 무슨 일인지 호기심이 얼굴에 서린 배영과 달리 어깨를 잔뜩 움츠려 앉아있는 이진의 앞에 그녀의 책상에 두 손을 얹고 상체를 기대 선채로 기분 나쁜 미소를 올리고 있는 철진을 발견한 서호의 얼굴에는 어느새 서늘한 표정이 올랐다. 아직 서호를 발견하지 못한 듯 철진은 덧니를 삐죽 내보이며 이진에게 재차 물었다.


“… 맞는데, 우리 큰아빠가 세 놓은 집에 들어온 무당 딸내미. 너 맞잖아.”

“….”

“내가 분명히 봤는데. 어제 너 이사 올 때 내가 큰아빠 집 앞에 지나가면서 너 분명히 봤어. 너네 엄마랑 같이 박스 옮기는 거.”

“….”

“너네 엄마 무당 맞지? 안 그래도 우리 큰 엄마가 그런 것도 안 알아보고 괜히 세 줬다고 큰 아빠한테 엄청 잔소리했단 말이야. 재수 없다고.”


눈치가 없는 건지, 일부러 그러는 것인지 들으라는 듯 크게 내뱉는 철진의 말 한마디 한 마디는 교실 안에 퍼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글거리는 그의 눈빛이 점점 이진에게 다가갔고, 이진은 치부를 보였다는 당혹감에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작은 몸통을 더욱 책상 아래로 숨기려는 듯했다.


무당 딸이라고? 진짜 쟤네 엄마 무당이야? 좀 무서운데. 어쩐지 음침하다 했어. 벌써부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수군거림에 이진의 눈빛이 더욱 좌절로 물들어갔다. 한없이 침몰하고 있는 그녀의 시선을 지켜보던 서호의 표정은 점점 굳어갔다.


“철진아. 다른 반 학생은 우리 반 출입 금지야.”


상황을 종료시키려는 듯 서호의 입에서 낮은 음성이 흘러나왔다. 고개를 돌려 서호를 힐긋 쳐다본 철진이 괜스레 그와 아는 척하며 손을 들어 인사하는 제스처를 보였다.


“뭐야, 왜 친한 척. 평소에는 인사도 안 하면서.”


옆에서 배영이 서호에게만 들릴 만한 크기로 속삭였다.


“… 야, 무슨 말이라도 좀 해봐. 너 이사 언제 갈 건데? 너 때문에 우리 큰 아빠 집 값 떨어지면 책임질 거냐? 아니, 무당 살던 집에 누가 이사오려고 하겠어. 야, 말 좀 해봐.”


서호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던 철진의 커다란 손바닥은 곧장 이진의 어깨로 가더니 그녀의 작은 한쪽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손가락 하나에도 이진의 어깨는 힘없이 앞뒤로 휘청거렸다.


“김철진. 그만하고 꺼지라고. 새끼야.”


마침내 서호의 입에서 잔뜩 날이 선 경고의 말이 흘렀다. 그제야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철진은 이진의 책상에 기대서있던 자세를 바르게 고쳐 섰다. 애써 뒷머리를 긁적이며 철진은 주변의 시선을 무시한 채 뒷문으로 다가섰다. 머리 한 개는 차이가 나는 서호를 올려다보는 그의 시선에는 아직도 반항심이 스며있었다. 말없이 지나가는 철진을 노려보던 서호의 시선은 놀라서 두 눈을 커다랗게 뜬 채로 길다란 게 흘러나온 머리칼 사이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이진과 마주쳤다.


새끼 고양이 같네.

서호는 생각했다. 어미를 잃고 잔뜩 배를 곯은 채 시동 꺼진 자동차 아래에서 냐옹, 냐옹 거리는 작고 불쌍한 고양이가 떠올랐다.


연민의 끝은 사랑이라는 것을 아직 알 리가 없는 서호의 눈빛은 어느샌가 따뜻한 온도를 띄고 이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입 안 가득 머금고 있던 비를 와장창 토해내기로 마음먹은 듯 오후가 되자 먹구름들이 비를 쏟아냈다. 가끔씩 천둥소리도 으르렁거리며 학교 주변을 떠돌았다. 굵은 장대비가 쏟아지는 창 밖을 내다보던 서호의 시선 또한 점점 가라앉았다.


그 뒤로 이진을 향한 2학년 3반 아이들의 태도는 조금 아니, 많이 바뀌었다. 전학생이라는 우호적인 신분은 철진으로 인해 빠르게 타락했고, 점심시간에 철진이 다녀간 뒤로 이진의 주변에는 아무도 기웃거리지 않았다. 이진은 빠른 속도로 혼자가 되어갔고, 그녀도 이런 상황이 한두 번이 아닌 듯 금방 익숙해지며 자신에게 벌어진 상황을 체념한 듯했다. 혜민은 그런 상황에도 개의치 않고 이진을 챙기려는 듯했으나, 혜민을 둘러싼 그녀의 친구들이 오히려 가까이하지 말라고 그녀를 말리며 이진의 마음에 작은 생채기를 더했다.


그런 일련의 상황들을 멀리서 지켜보던 서호의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본인은 먼저 알고 있었던 건가, 처음 혜민의 옆 자리로 안내하고 나서 철진이 등장하기 전까지 아이들의 우호적인 태도에 선뜻 다가서지 않고 경계심을 내비치던 이진의 행동이 살짝 이해가 갔다. 그래서 자신에게도 냉랭하게 대했던 건가. 시원하게 쏟아지는 빗소리 사이로 서호는 미간을 찌푸린 채 책상 위 교과서에만 박혀있는 이진의 뒷모습을 자꾸 좇았다. 이윽고 수업이 끝나고 이진이 가방을 얼른 들고서 교실을 빠져나가자 가만 생각에 잠겨있던 서호가 필통을 챙겨 넣던 배영에게 대뜸 물었다.


“고배영 너 우산 있지?”

“있지.”

“나 좀 빌려줘.”

“미쳤냐? 그럼 나는 어떻게 집에가라고.”

“너네 동네 가는 애들이랑 같이 쓰고 가. 택시 타고 가던지.”

“뭔 소리야. 진짜 미쳤어?”

“고맙다. 배영아.”


배영의 거절을 무시한 채 서호는 냅다 일어나더니 교실 뒤편 파란 통에 꽂혀있던 배영의 검은 장우산을 꺼내 쏜살같이 사라졌다.


“야! 권서호! 아 왜 저래 진짜.”


그의 뒤통수에다 대고 소리치는 배영의 얼굴에는 눈앞에서 우산을 도둑질당한 황당함만이 느껴졌다.




대책 없다.


전학 첫날부터 이렇게 장대비를 마주하다니.


내 인생 참 대책 없다.


어느새 다섯 번째 전학하는 동안 비도 맞아봤고, 눈도 맞아봤지만 이렇게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쏟아지는 장대비는 또 처음이었다. 참 이렇게 대책 없는 인생도 없구나, 하고 이진은 1층 입구 아래에서 쏟아지는 비를 가만히 쳐다보며 자조하고 있었다.


그러기엔 아침부터 비가 쏟아질 듯 먹구름이 계속 기웃거렸는데 정신없이 이사하는 통에 하늘까지 눈치 볼 정신은 못 챙긴 듯했다. 저마다 준비해 온 우산을 피고 학교를 빠져나가는 학생들의 뒷모습을 멍하니 쳐다보던 이진의 옆에 순간 인기척이 느껴졌다.


“너 우산 없어?”

“….”

“나 우산 두 갠데, 너 하나 빌려줄게.”


서호가 쥐고 있던 검은 장우산을 쓱 내밀었다.


“괜찮아.”

“나 우산 두 개라니까? 어차피 하나 남아.”

“됐어. 그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가면 돼.”

“일기예보에선 오늘 밤새 내릴 거랬는데?”

“…그럼 내일 가지 뭐.”

“…아. 이런 신박한 거절은 또 처음이네.”

“….”


뚱한 표정으로 시선만 올려 자신을 쳐다보던 이진이 다시 고개를 돌려 하늘로 향했다. 이진의 의사를 알겠다는 듯 서호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가방에서 파란 3단 우산을 꺼내 펼쳤다.


“… 그래라 그럼. 난 간다.”


크로스백을 뒤로 메고, 한 손에 검은 장우산을 쥔 채 빗 속으로 걸어가는 서호의 뒤를 잠깐 응시하던 이진은 다시 시선을 고쳐 하늘로 올렸다. 오늘 밤새 내린다고. 그럼. 진짜로 내일 가지 뭐. 대책 없는 인생 더 이상 대책 없을 수도 없으니. 상실과 체념으로 뒤범벅된 이진의 속마음은 점점 비에 젖기 시작하던 자신의 낡은 컨버스 운동화처럼 축축해지고 있었다.


삼십 여분 즘 지났을 까. 그칠 줄 모르던 비도 지친 듯 빗줄기가 조금 연해지기 시작했다. 더 이상 서 있었다가는 경비 아저씨에게 무슨 소리를 들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이진은 하늘을 한 번 흘깃 보더니 머리 위로 두 손을 포개 올리고서 교문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운동화 바닥이 운동장 바닥에 부딪히며 찰방 찰방하는 소리를 내었다. 백 여미터즘 달려 교문을 지나치려는 순간, 이진의 뒤에서 튀어나온 낯익은 목소리에 그녀의 몸이 우뚝 그 자리에 멈추었다. 뒤를 돌아 본 곳에는 교문 앞에서 파란 우산을 든 서호가 서 있었다. 30분 동안 쏟아지던 비를 작은 3단 우산 하나로 막으며 기다린 듯 그의 교복 바짓단과 운동화는 이미 옴팡 비에 젖은 상태였다.


“… 내 이럴 줄 알았지.”

“… 너, 여기서 뭐 해?”


빗물에 젖은 눈꺼풀을 꿈벅이며 교문 앞에 서 있던 서호를 향해 이진이 당황하며 물었다. 빗줄기가 약해졌다고 해도 어느새 비에 쫄딱 젖은 이진의 머리와 가방, 교복을 서호는 찬찬히 내려다보며 손에 쥐고 있던 검은 장우산을 펼쳐 그녀의 머리 위에 씌워주었다.


“전학 첫날부터 이렇게 비 맞고 들어가면 부모님이 얼마나 마음 아프시겠냐.”

“….”

“우산 두 개 있는 친구 뒀다 뭐 할래. 국 끓여 먹을래?”

“나 기다린 거야…?”


아직도 멀뚱히 서있는 이진을 보며 한숨을 푹 쉰 서호는 자신의 파란 우산을 한쪽 어깨와 목 사이에 고정시키고 이진의 젖은 한 손을 들어 장우산 손잡이를 쥐게 했다.


“겸사겸사. 그럼 진짜 간다.”


자신의 우산을 다시 고쳐 잡은 서호는 상체를 살짝 숙여 장우산에 가려진 이진의 얼굴을 찾은 후 짧은 인사를 건네고 다시 돌아서 걸어갔다. 커다란 장우산에 가려진 이진의 눈빛이 알게 모르게 흔들리고 있었다.


우산을 쥐고 있지 않은 손은 교복 바지 주머니에 살짝 끼운 채 집으로 향하던 서호의 머릿속에 갑자기 이진이 신고 있던 낡은 남색 컨버스 운동화가 떠올랐다. 입술을 앞으로 살짝 내밀며 신고 있던 뉴발란스 운동화를 내려다보던 그의 얼굴에 재밌는 생각이 스친 듯 미소가 점점 번졌다. 하루 종일 우중충한 날이었지만, 그의 마음에는 어느새 개운한 해가 뜨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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