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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내려놓을 시기가 온다.

언제부터 사랑하게 된 걸까.

by 문하현

본격적인 '연애'를 시작하게 되는 시기는 대학을 다니기 시작할 때일 것이다. 교복을 가뿐히 벗어던지고 막 성인이 된 남녀들이 낯선 얼굴들을 쉽게 익힐 수 있는 집결지가 대학이기 때문이다. 굳이 이곳저곳을 기웃거릴 필요가 없다. 캠퍼스의 어디를 가든 이성들이 즐비하니 대학은 말 그대로 '연애의 온상'인 셈이다.


그렇지만 나는, 연애와는 담으로는 모자라 아예 만리장성 같은 거대한 벽을 세웠었다. 무슨 고결한 성직자라도 되는 듯이 절대로 연애하지 않겠다고 스스로에게 되지도 않는 맹세를 한 것도 아니다. 상대방에게 내 몸에 대한 부담감을 지우고 싶지 않은 것도 이유이긴 했지만, 애초에 연애가 나와는 하등 상관없는 일처럼 느껴졌었다. 풋풋한 CC들이 순식간에 반짝 생겨나 활활 불타오르다가, 갑자기 그들 사이에 번개라도 내리 꽂혔는지 후다닥 도망치듯 헤어지는 상황을 불구경하듯 덤덤히 지켜봤을 뿐이었다. 그 당시의 나에게 연애란 흥미 없는 가십거리에 불과했으니까.


단편적인 에세이를 읽다가, 저자가 어떤 문장에 깔아놓은 턱에 덜컥 걸리고 말았다. 그 문장은 '사랑을 선택한 사람은 먼저 스스로를 내려놓은 사람'이라고 쓰여 있었다. 대학생이던 시절엔, 나 스스로를 내려놓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샘솟게 하는 사람이 주위에 없었다. 그렇다고 짙고 희뿌연 안개처럼 온몸을 휘어잡는 외로움에 시달리지도 않았다. 오히려 안갯속을 조용히 거니는 일을 즐겼다. 안개 밖의 행인들은 안갯속 희미한 형체를 온전히 확인하지 않고 그저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안갯속에서는 바깥에 어떤 사람들이 지나갔는지 제대로 확인할 수 없었고, 사실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이렇게 서로를 알 수 없는 상태로 훅훅 지나쳐버리니, 자연스레 스스로를 내려놓는다는 일에 조금이나마 생각해 볼 기회가 박탈되고 만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나를 내려놓아도 충분히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내려놓는다는 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방식을 넘어 내가 다치는 방식으로 타인을 이해하는 것이다. 타인이 원하는 방식에 맞추려면 '나'라는 기반은 필연적으로 무너져야만 한다. 무너져야 한다니, 무슨 결연한 희생이라도 해야 하는 것이냐고 두려움에 주춤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직관적으로 생각해 보자.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를 기꺼이 내려놓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들지 않던가? 잘만 올라가던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추락하듯 마음이 쿵 내려앉는 동시에 그 사람의 세계에 '발을 들이고 싶을 것'이다. 아무런 근거가 없는 의무감을 발휘해 내려놓아야 한다고 생각하기는커녕, '스스로 내려놓고 싶어질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도 나를 위해 '내려놓고 싶어 한다'면, 엄청난 축복을 받은 셈이다. 한쪽만 내려놓는 관계는 결국 쓰라린 상처를 부여잡고 유유히 떠나갈 것이니까.


누구에게든, '나를 내려놓고 싶어 지는' 시기가 한 번쯤은 찾아오리라. 나도 나를 내려놓고 싶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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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