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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할머니가 꿈이야

by 명랑소녀






절구만큼은 아니지만, 허리 부분이 살짝 들어간 하얀 머그잔 안에 언젠가 엄마가 정성스레 달여준 한약과 같은 색의 커피가 담겨 있다.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며 향긋하고 고소한 내음이 코점막을 적신다. 아랫입술을 머그잔에 데우며 호로록 한 모금 마신다. 차가운 제주의 가을바람이 훑고 지나가 식어버린 내 호흡기를 검은 액체가 따듯하게 어루만져주며 지난다. 어렸을 땐 나에게 쓰디쓴 액체이기만 했을 아메리카노. 나는 이 커피를 몇 살까지 즐기며 마실 수 있을까. 묵직한 컵을 양손에 쥐고 무게중심을 오른손, 왼손으로 옮겨가며 머그잔에서 뿜어내는 온기를 가져와 생각에 잠긴다.


4군데 어금니에 고통이 찾아들어 차례차례 치료를 받고 있다. 마취하고 신경치료를 하며 위잉위잉 소리 속에서도 이런저런 생각에 잠긴다. 취업을 했던 이십대 초반에 치료해둔 치아들이었다. 20년 가까이 되었으니, 이번에 치료해두면 환갑 넘어까진 별일 없길 바라는 마음이다. 치료를 막 마친 오른쪽도 지금 치료 중인 왼쪽도 질긴 것을 씹기엔 불편하다. 친정엄마가 담가서 택배로 보내준, 침샘이 바빠지게 만드는 총각김치의 줄기를 씹다가도 잠시 멈춘다. 더 꼭꼭 씹어도 별문제 없을까. 몇 살까지 씹어서 삼키고, 소화 시킬 수 있을까? 나도 할머니라 불리는 날이 올까? 나는 어떤 할머니의 모습을 하고 살게 될까? 오래전 기억 속 외할머니의 손등은 거북이 피부와도 같이 건조함이 가득했는데, 언젠가 내 손도 그렇게 되겠지? 아직 어린 우리 아이들에게 그때의 나는 어떤 엄마의 모습을 하고 있을까?


때때로 이런 질문들이 자꾸 나를 찾아 든다. 언젠가 스마트폰 교육을 하러 경로당에 방문했던 적이 있다. 교육을 마치고 담소를 나누는 중에 찾아와 “OOO가 어제 죽었대.”라고 말씀하시는 노인회장님의 말에 모두들 특별한 대꾸가 없었다. 누구도 “왜?”라며 이유를 묻지 않았다. 놀람도 슬픔도 없이 그저 덤덤하게 잠시 고요했다. 고요함의 원인을 살짝 잊을 때쯤 다른 대화가 시작되었다. 일상의 대화가... 경로당 어르신들 말고, 내가 기억하는 노년의 모습이 하나 있다. 몸이 아파 긴 기간 투병을 이어간 외할머니의 모습. 한창 시절 우리에게 거침없이 욕설을 내뱉으며 당신의 피로와 화를 푸셨을 외할머니는 움직일 기운이 한 자락도 남지 않은 것처럼 이모네 집 작은 방구석에 조용히 누워만 계셨다. 어린 마음에 외할머니에게 다가가 다정한 인사도, 손을 어루만지는 일도 하지 못했다. 그러다 어느날 하늘나라로 가셨다는 부고를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영화인 <모아나>. 모아나의 할머니가 해변에 서서 부족의 전통춤을 아무 어려움 없이 자연스럽게 추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은 내 마음속에 깊게 새겨져서 불쑥불쑥 떠오른다. 나는 저런 할머니가 되고 싶다. 눈 감기 전날에도 저렇게 바닷가에서 춤을 추고 싶다. 그게 내가 만들어낼 수 있는 내 노년의 모습이다. 얼마 전에 본 책 표지 속에 할머니는 여행가방을 끌고 멋지게 여행을 다니더구만! 나도 그렇게 살아야지! 모아나의 할머니처럼 늙기 위해 꾸준히 훌라를 출테닷!


세월이 흐를수록 점점 움직임이 굼떠지고 여러 관절들도 아파오겠지. <마녀체력>의 주인공처럼 나이 50에 철인3종 경기를 할 정도는 못 되더라도 달리기, 수영, 자전거가 ‘가능’할 수 있게 노력해야지. 나는 절대 죽음을 기다리는 시간을 갖지 않으리라! 하루하루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생을 채워가리라 결심한다. 내게 남은 게 죽음뿐인 것처럼 사는 날은 하루도 만들지 않을 테다. 아이들에게도 나의 의사를 알 수 있도록 미리미리 알려놔야겠다. 너희의 증조외할머니와는 다르게, 엄마는 모아나의 할머니처럼 작별인사하는 전날에도 춤을 추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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