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ing과 Well빙, 끝없는 비교, 그리고 평화, 돈.
의식주와 잠, 기본 욕구가 해결되어야 잘 사는 단계를 넘볼 수 있다.
네 곤하게 자는 숨소리. 고기라면 철봉 두께라도 씹어 먹을 것처럼 폭발하는 식욕.
이 모든 것이 우리가 바라 마지않던 것들 아닌가.
그때 불안과 걱정에 나와 남편이 자고 있는 안방으로 뛰어 들어와 밤이 새도록 주절주절 나쁜 일이 일어나면 어떡하냐며, 병적으로 모든 생각을 우리에게 쏟아내던 네 모습도.
다시 오지 않을 악몽과 같다.
자연이라도 보고 좀 걸으면 좋을까 싶어 네 아빠가 우리 넷을 동원해서 함께 간 커다란 꽃밭, 화원.
그 가운데 꽃처럼 밝은 옷을 입고 웃던 네 얼굴.
하지만, 몸속 모든 기운이 다 빠져버린 듯 보이는, 공허한 네 눈빛.
그 모든 걸 담은 사진들도,
내 가슴을 서늘하게 하던 것들도 여전히 가슴속 한아름 묻혀있다만.
늙어서 잦아진 건망증 때문인지,
아니면 자연스러운 망각인지.
원체 나빴던 기억도 잘 잊어먹는 편이기도 하고,
이사 오면서 바뀐 환경에서 잘 버티고 이겨내 주는 네게 나는 늘 고맙지만,
이 고마움도 잘 잊는다.
작년 성적표와 올 1학기 성적표를 비교하는 딸, 우리 해피.
이번에 기술 가정 과목 성적 B가 나와 아쉽다며,
작년 2학기보다 향상된 영어와 수학이 눈에 들어오지 않나 보네.
우린 그렇듯 늘 부족한 부분이 더 강렬하게 인상에 남는다.
참 기특하게도 올 1학기를 잘 지냈다.
한 장으로 요약된 네 한 학기 결과를 가지고 왔다.
대견하고 또 자랑스럽다.
작년 이맘 때는, 시험이 없는 자율학기제임이 참 다행스럽게도, 병결이 절반이상이었으므로 지금 가져온 결과보다 더 나은 성적을 내고 싶어 하는 네 그 욕심까지도 기적 같다.
옆집 누구는 영어와 수학을 만점을 받았네, 누구는 수학을 못 친 게 B라네,
나는 아무리 해도 그만큼은 안될 것 아닌가. 등등등.
고백하자면, 숨만 쉬어주어도 고마운 마음에 너에 대한 내 기대치가 낮아진 게 사실이긴 하지.
Sick Role을 이제야 벗어나나 싶은 네게,
아니, 이런 말마저도 조심스러운 내가,
언감생심 네가 더 좋은 성적표를 가져오길 바라기도 했던 것도 같다.
매우 조심스럽다. 이 내 진심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게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길 바래서다.
혹여라도 널 향한 내 말속에서 낮아진 기대를 읽기라도 해서
네 내적 동기를 꺾지는 않길 바란다.
별 게 다 걱정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네 모자람 때문에 네게 거는 기대가 낮아진 것이 아니다.
너는 너 있는 그대로 아름다우니까,
나는 우리는 네 성적으로 너라는 사람을 판단하지 않기 때문임을
꼭 알아주길 바란다.
몇 주 전, 소장님과 마지막 상담을 마무리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부산 모 예고 사건과 비슷한 일이 동네 가까운 곳에서 일어났다고.
심정지까지 간 어린 여중생을 극적으로 살려 낸 일을 듣게 되었다.
우리네 사는 곳과 진정 멀지 않은 곳에서 일어난 사건이었다.
목숨을 잃으면 뉴스에라도 나서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효과라도 주지만,
그마저도 운 좋게 그 작고 여린 생명을 구하면 매체의 관심을 얻기도 쉽지 않구나.
미디어에 등장하지 않아서, 전혀 몰랐던 일들.
얼마나 더 많을까?
관련한 일선 교사들만이 현 사태의 심각성을 체감하겠다며 나는 그저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우리가 거주하는 구에서만 올해 150여 명의 청소년이 자퇴를 했다. 얼마 전 학교밖청소년센터에서 전해 듣게 되었다.
그래도 자퇴한 친구들은 펄펄 끓는 냄비 속 개구리처럼 지내다가 결국 삶을 내던진 아이들보다는
더 적극적으로 자기 길을 개척하려고 한 발 더 나간 용기 있는 아이들이지 않나?
한편으로는 학교를 그만둔다고 해서 문제가 다 해결되지 않을 것인데, 하는 끝없는 염려.
그 아이들이 어디선가 다시 관계를 맺으며
좋은 친구와 스승 혹은 멘토를 만나서
자기 마음속 아픔들을
다시 마주 하고 잘 살아가기를 바랄 뿐이다.
돈으로 평화를 구할 수 없다고 고미숙 고전평론가는 말했다.
난 그 말에,
평화는 마음에서 나오고,
그 평화는 나를 사랑하는 마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라고 덧 대본다.
내 가장 친한 나,
그리고 사소한 이유로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내 마음을
먼저 단속하기로,
늘 그것만을 우선순위로 삼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