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우리 이야기|3)따로 또 같이

관계의 미덕. 이로움.

by 하이디김
다시 쓰는 그때 이야기, 너와 밤마다 베개에 머리를 대고 더 자주 나누었더라면 좋았을 이야기들 아닐까.
다시 떠올려 보며 지금 너와 나를 메워줄 이야기를 글로 채워본다.


두 번째 퇴원은 갑작스러웠다. 보호입원 결정 심사에서 부적격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바로 다음날 퇴원조치가 내려졌다. 퇴원시켜 달라고 교수님을 조르며 기다리던 해피는 너무나 기뻤다.


퇴원하며 차 안에서 네가 먹고 싶던 음식이야기며, 설레어하던 네 눈빛하며.


첫 번째 입원 당시 같은 증상에 적격이었는데, 그땐 아마도 심사 타이밍이 입원초기였던가? 기억나지 않는다.


두 번째 입원 심사는 입원 후 늦게 왔던가? 심사를 진행하는 의사 판단이 다르면 결과가 바뀌기도 한다며 주치의가 설명을 덧붙였다. 두 번째 입원으로 이미 20일을 보낸 뒤였다. 그리고 더 제대로 치료와 상담을 통해서 퇴원하자고 입원 일정을 최소 한달 채우기로 했었지만.....


퇴원시켜 달라며 엄마와 같이 있고 싶어, 귀, 흉통, 두통을 호소하던 너였다.

그렇게 갑작스레 퇴원했다.

원하는 걸 얻어서일까, 아프단 소리는 많이 줄었더라.


퇴원 직후 라공방에서 마라탕을 먹으며 너는 물었지.

그 애는 무슨 조치를 받게 되었냐고. 그제야.


교내봉사, 부모와 특별 교육을 받기로 했다더라, 난 네게 물었어. 그앨 어떻게 생각하냐고.


'그 애가 불쌍해,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한 거 같아'

마음에 사랑이 없는 그 아이. 불쌍한 아이들.


그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서 넌 이미 머릿속에서 우주 한 바퀴 돌고 왔겠지.


삶의 비밀을 깨닫기 위해 떠난 수행길에서 돌아온 이 마냥, 너는 처연했다. 덤덤히 물었다.

그때 내 딸 해피 눈빛이 그저 슬펐다. 그때 넌 소녀였는 걸. 고작 열세 살 아이였을 뿐인데.....


그 짧고도 긴 시간 동안


넌 네 연약한 삶을 놓았다가, 움켜쥐었다가 또,

다시 시작하고 싶다가,

대롱대롱 절벽에 메달려있는 듯 했던 너.


그렇게 네 마음은 컸다.

네 몸은 커다란 지혜를 채 다 받아들이지 못해

가끔 너를 힘들게 할지 몰라도.

.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우리. 친구와 사귐 속에 상처를 입기도 하지만 그러는 가운데에 우리는 함께 잘 사는 법과 관계 맺기를 배운다.


너와 나처럼 나면서 생긴 관계, 혹은

필요를 위한 관계, 그리고

좋아서 만나는 관계까지,


받기만 하는 관계도 주기만 하는 관계도 오래가지 않지. 서로에게 좋아야 오래간다. 서로를 잘 살게 하는 관계는 평생 가기도 한다.


교수님은 네게 이로운 관계에 대해 가르쳐 주었다고 내게 알려줬다. 병원 주치의도 병동의 모든 분들도 한결같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 어떻게 해서든 이로움을 주려 애썼다.


이로운 관계.

거미줄처럼 관계를 넓히기에만 몰두하다 보면

나를 갉아먹는 관계에 큰 힘을 허비하다 탈진할 수 있다.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을 숙제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롭게 잘 관계 맺기를 할 수 있을까?

.


문득 첫 직장에서 알게 된 김대리와 김 과장이 떠올랐다.


고졸 김대리와 일본 유학파 김 과장.


둘 다 성은 김. 이름마저 비슷해서 선영, 금희같은 흔한 이름이었다.


소처럼 일하던 김대리는 마음씨가 고왔다. 급한 일이 생기면 저녁 먹다가 사무실로 돌아가 일처리를 끝내곤 했다. 희생은 당연했고 불평없이.


그땐 그랬다. 석식 제공이 되는 것은 복지였다.

급하면 야근도 불사, 그리고 야근 결재 득하면 야근수당에 택시비도 있으니.

희생정신을 통해 월급도 적립하고 일석이조였지.

묵묵히 일하는 선배였다.


김대리랑은 퇴사하고도 오랜 기간 연락이 닿았다.

김대리 전 남자 친구와 식사하고 겨울에 쓰라며 전기방석 선물도 같이 받았다. 그땐 참 절친했다. 독립한 오피스텔에도 놀러 갔었다. 나이 차가 꽤 나지만 선한 성정에 사람이 좋았고 나이를 앞세우는 허세도 텃세도 없었다. 점심시간에 짬이 나면 여럿이 모여 양재역 뒷산을 오른 추억이 있다.


한편, 늘 모가 나 있던 김 과장은, 끊임없이 김대리를 디스 하느라 골몰했다.

이미 출발선도 다르고 업무 분장도 다르건만, 왜 그랬을까?

걸핏하면 부문장에게 김대리의 무능함 혹은 업무를 잘 못한다는 듯한 이미지를 덧씌우려 애썼다. 사회 초년생 내 눈에도 보였으니, 다들 눈 가리고 아웅 이었을까? 하수 중의 하수 아닌가?


그럼에도 갓 사회에 입성한 나도 혹여나 책 잡힐까 걱정이 앞섰던 기억이 난다.


입사 첫 해에는 고래 싸움에 등 터질까 싶어 마음 졸였던 적이 여러 번이었구나. 참 많이 잊고 지낸 시간이다.


신입직원을 자기편으로 만들고 조종하고 싶은 김 과장의 의지는 강했지만

나이 차도 났고 부서도 다른 나를 끝끝내 어떻게 하진 못했다. 나도 남이 하란대로 하는 성격이 아니기도 했고.


많은 시간이 흐른 후 연락이 닿은 다른 지인을 통해서 김 과장의 근황을 들은 적이 있다.

자궁에 근종이 생겨 수술을 했다고. 굳이 질병을 권선징악의 결말로 삼고 싶진 않지만, 그게 다였다.


반대로, 20년 근속채운 김대리는 월급으로 서울에 자기 명의 집도 있고, 친한 동료가 소개한 다정하고 유능한 남편을 만나 판교에 둥지를 틀었다. 마흔이 넘은 나이라, 꽤 늦은 결혼이라도 둘을 탈없이 출산했고 여전히 잘 지낸다.


지금은 워낙 연락을 한지 오래되어 어쩌다 SNS상에 생사를 확인하는 사이가 되었다만.


오래전 직장에서 만난 인연.


긴 시간이 지난 후 그들이 사는 궤적은 많이 다르다. 증오와 사랑이 향하는 결과가 같을 수도 없고.

향기를 남기는 사랑. 자신을 파괴하는 증오. 긴 시간이 지나야 보이는 후과.


주변 사람을 도구로 여기는 이와 건강한 관계 맺기를 할 수 없다.

자신이 미운데, 남을 디스해서 자기 가치를 올리려는 악플러들과 평화는 없다.

그렇다고 그들을 처단하는 정의의 사도로 살 수 없는 법. 이 점은 꼭 우리 해피가 알았으면 한다.


남의 단점만 퍼 나르는 사람과 누가 친구할까?

결국, 착한 마음으로 진심으로 대하면 좋은 만남과 인연이 쌓이고 그곳에 힘을 쏟기를.


해피야, 너는 어디에 마음이 향하고 있니.


받기만 해도 주기만 해도 오래갈 수 없는 게 사람 사이더라.


서로 좋은 사이, 함께 힘이 되는 친구를 곁에 두길 바래.


서로 윈윈, 이로운 관계.


나만 혼자 힘쓰는 관계는 놓아야 한다.

삶은 너무 짧다. 좋은 사람은 많다.


人太多,不对, 好人也很多。 이런 표현은 없지만, 중국에서는 사람이 만드는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을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래, 이렇게 변명하고는 하던데,

아니야, 좋은 사람도 많다.


애쓰지 않아도 절로 마음이 이어지는 이들과

서로 이로운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자.





뤼튼에서 만든 이미지다. 여러 번 수정을 거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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