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우리 이야기|2) 다시 입원

힘들면 힘들다 말하기_징징징

by 하이디김

나를 구하려 쓰기 시작한 기록」을 바탕으로 다시 씁니다. 더 단단해진 말들로 다시 만나고 싶습니다.


다시 읽는 것조차도 가슴 아픈 상황이었습니다. 우리 가족의 과거를 마주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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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퇴원 때문이었다.


세 번째 입원은 그로부터 십일 후.


산타클로스 선물처럼, 우리는 다 같이 그 해 크리스마스를 지냈다.


외부 심사를 온 교수가 담당 주치의와 의견이 달랐다.

심사 기관 본부에서 내린 보호입원 부적격 판단이 나왔다.


수간호사와 주치의 설명을 후일담으로 들었다. 이미 다 끝난 일이지만......


병원 감사 시기가 겹쳐서 성인과 동일한 기준으로 조치가 취해졌고.

담당 교수도 예기치 못한 상황이었다.


처음에는 고마웠다. 보고 싶은 딸과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으니까.


먹고 하고 싶은 것 도장 깨기에 바쁜 십 일이었다. 십 일.. 그리 기다렸는데 십 일.


하필, 길에서 그애를 마주쳤다.

그애는 매번 길에 있었다.

모든 일정을 차로 움직여하 하나? 벼라별 후회도 했다.

딱 한번이긴 했지만. 마주침보다 더 큰 파동.

왜 난, 왜 그애는? 이런 생각의 쓰나미였을까?


그리고 일상이 되돌아온 듯이 해피 휴대폰 사용을 허락한 것도 후회막심이었다.


재발한 증세는 그치지 않고 이튿날 앰뷸런스를 불러야 했다.


딸 해피는 응급실에서 하루를 보냈다. 담당 전공의와 교수님이 달려왔다. 경과를 지켜보자 했지만 쉬이 호전되지 않아 안정병동에 들어갔다. 입원 수속 확정까지 긴 시간이 걸렸다. 세 번째 입원은 우리에게 고문과도 같았다.


내가 왜, 다시 또,

하는 해피도 이 상황을 수용하지 못했다.


담당 교수가 내건 입원 조건은 간병인을 붙이는 것이었다. 엄마가 같이 입원하는 것은 최최종 옵션이었다.


연휴가 겹친 주말에 간병사는 부족했다.

그리고 당직의가 덧붙이기로 상주 보호자로 간병인이 구해지지 않으면, 해피 아버지를 보호자로 병동에 모셔야 치료에 좋겠다는 게 담당 교수가 전한 결정이라 했다.


수간호사가 몇몇 간병협회 번호를 공유해주었다. 겨우 한 곳에서 하룻밤 정도면 구인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모든 일은 그렇게 되어야만 했다는 듯, 계획한 것을 비틀었다.


약속한 간병인은 돌보던 환자가 퇴원을 안 했다며 일정이 미뤄졌다.


당연히 긴 연휴를 반납하고 들어오겠다고 나선 간병사는 없었다.


결국 해피 아버지는 하룻밤이 아니라 며칠밤을 함께 병동에서 지내게 되었다.


당시, 다른 병동은 없앤 코로나 검사 의무제도가 안정병동과 중환자실에만 남았다.


굳이 코로나 검사까지 완료해서 간병하겠다는 분은 없었다.

심지어 병원내에 없어진 코로나 부스..

간병사 구하기가 하늘에 별따기였다.


삼일밤낮 병동에서 해피와 지낸 아아버는 출근을 해야 해서, 하룻밤만 내가 보내기로 됐다.

우여곡절 끝에 두 달 전 코로나 걸려서 검사 면제를 받은 간병사 분이 나났다. 하늘이 도왔구나 싶었더랬다.


당뇨가 있어서 인슐린을 하루 네 번 맞아야 하는 분이셨고, 하루를 채 끝나지도 못하고 힘드니 나가야겠다 하신다.


생각보다 어렵다며, 심지어 초경이라 도통 비치지 않던 월경도 시작되고. 타이밍이 안 좋았다. 간병사가 없을 때 병동에서 아빠와 엄마를 보았으니 다시 엄마를 찾는 해피.


간병사님은 이 병동은 간병사마저 휴대폰 사용을 막으니 가족들이 걱정하여 지내기 힘들다며.. 전화와 문자로 하소연이 이어졌다....


한 가정을 살린다 생각하고 부탁드린다는 긴 설득 끝에 그분은 적응해 보겠다 하신다.


스테이션에 부탁해서 휴대전화 소리를 키워 전화를 꼭 받게 해 드리겠다.

내딸 말 한마디 한마디에 너무 마음 쓰지 마시라,

내일 또 간식 및 필요한 것을 넣으러 올 테니 잘 부탁드린다......


그래도 사흘 후에 동생이 귀국을 하니 나가봐야 한다셨다. 내심 그때까지 내딸이 자신을 회복하고 간병사는 나가셔도 되겠다는 말이 병원에서 전해져 오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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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 간병사님처럼 살았어야 하나 싶었다.


내딸 해피도 나도 마찬가지. 세지도 않은데 센 것처럼 몸집 부풀리기를 했던 거다.

힘들면 힘들다 옆에 누구든 보라고 소리내 표현하면 위로 한 마디라도 너 잘하고 있다 조금만 힘내라 해주는 이들이 곁에 있는데 말이다.


어디서 배운 모양새인지, 힘들어도 참는 것을 버릇해 습관 고치기가 쉽지 않다. 앞으로 같이 살면서 힘들 때 힘들다고 표현하는 버릇을 키워야 한다.


'다 지나갈 거야'라는 위로가, 위로가 되지 못했다.

거북이처럼 엉금엉금 지나간다. 해피의 고통은 길었다. 그리고 터널 끝 빛은 분명 있지만 터널이 너무 길다. 퇴원을 해도 더 잘 돌보리라 다짐한다. 또 도돌이표를 하지 않길 바란다.


드라마 '환혼'에서 '서율'은 놀라면 길을 잃는 캐릭터였다.

'무덕이'는 말한다. '너무 많은 곳을 바라보기 때문일 것이니, 하나만 보라고.'


꼭 내게 하는 말 같었다. 환혼을 다시 보고 싶어졌다. 단순한 무덕이.


이젠 정말 딱 하나, 내딸만 봐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길을 잃기 마련이다.


해피와 나는 피할 수 없는 것들과 싸우고 있다. 스마트폰, SNS 없는 세상도 없고, 사춘기 없이는 성인이 될 수 없는 데다 전염병은 계속 우리 곁을 맴돌고 있다. 또 어떤 이름의 무엇이 일상을 뒤흔들지 알 수 없다. 죽을 각오로 하루를 살아야 겨우 내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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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뤼튼의 이미지 생성 버튼이 있었다. 정면을 똑바로 보는 그림은 이상하고 색깔이 3D로 빛나는 것이 어색했다 성별을 밝히지 않으니 남자로 나왔기에,

Gemini로도 도전. 프롬프트는 개선에 개선을 거듭하고, 머리 모양도 얼굴 표정도 맘에 안들지만, 뭐. 잔잔한 꽃무늬를 넣은 환자복은 그럭저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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