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상 준비 과정들의 기록
내가 지난번 작품과 다르게 가장 많이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 바로 의상이다. <브라이덜 샤워> 때 가장 아쉬웠던 부분 중 하나가 바로 의상이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예산을 아끼고자 배우들이 갖고 있는 의상 중에서 골랐었고, 결국은 캐릭터의 개성을 살리지 못했다. 이후, 나는 다음 작품에서 의상은 좀 더 신경 쓰기로 다짐했었다. 영화에서 의상이 중요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 의상은 대사보다 먼저 관객에게 인물의 성격, 직업, 가치관, 심리 상태를 전달한다. 예컨대, <라라랜드>에서 미아가 입은 드레스 색상은 장면의 감정 톤을 대변한다. 영화 초반의 노란색 의상은 희망을 후반에 나오는 파란색 의상은 슬픔을 상징한다.
둘째, 의상은 시대적 배경과 세계관의 사실성을 강화한다. 시대극에서는 소재, 실루엣, 재봉 방식이 실제 역사적 맥락을 반영해야 하며, SF나 판타지에서는 세계관의 규칙을 시각적으로 암시하는 중요한 도구가 된다. 영화 <작은 아씨들>의 의상만 봐도 우리는 19세기인 것을 유추할 수 있다.
셋째, 의상은 인물들 간의 심리적 거리감, 권력관계, 유대감을 나타낸다. 두 인물이 색감이나 소재를 공유하면 ‘정서적 연결’을 느낄 수 있고, 대조되는 옷을 입으면 ‘갈등’이나 ‘대립’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 <캐럴>에서 캐럴과 테레즈의 색감 대비(레드 vs 브라운)는 사회적 지위와 내면의 온도차를 상징한다.
넷째, 의상은 시각적 통일성과 미장센을 구성한다. 즉, 영화는 ‘움직이는 그림’이기 때문에, 의상은 색감, 조명, 세트 디자인과 함께 전체적인 미장센을 구성한다. 좋은 의상 디자인은 영화의 톤 앤 매너를 유지하고, 측정 장면의 감정을 극대화시킨다.
마지막으로 의상은 관객에게 서사적 힌트나 상징을 제공한다. 캐릭터의 성장, 비밀, 변화 등을 옷의 변화를 통해 암시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기생충>에서 가족들의 옷은 점점 ‘상류층의 것’을 흉내 내며, 계급 상승 욕망을 상징한다.
이처럼 의상은 단순히 ‘옷’이 아니라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말하는 언어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 캐릭터의 서사를 담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이 날은 캐릭터가 어떤 감정일까?
캐릭터는 평소에 어떤 옷을 입을까? 왜 이런 스타일의 옷을 좋아할까?
각 씬에서 캐릭터들은 어떤 관계성을 가질까?
배경과 어울리는 의상 색은 무엇일까?
등등 스스로에게 많은 질문을 던져가며 의상 레퍼런스 자료를 만들었다.
감사하게도, 패션을 전공한 짝꿍이 의상을 도와주게 되어 스타일링을 훨씬 수월하게 할 수 있었다. 의상 레퍼런스 자료를 바탕으로 나와 배우들 그리고 짝꿍은 함께 돌아다니면서 맞는 의상을 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짝꿍은 합정역 빈티지 샵에서 협찬을 받을 수 있게 도와주었는데, 옷가게 사장님도 적극적으로 영화 의상을 찾는 데 도와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나는 유명한 감독도 아니기 때문에 어쩌면 사장님 입장에서는 얻는 게 없는 장사였을텐데, 진심 어린 응원까지 덤으로 주셨다.
의상을 구하러 다녔던 이 날은 비가 무척이나 많이 왔었다. 합정역 빈티지 샵 외에도, 우리들은 합정역과 홍대 역 쪽을 돌아다니며 함께 의상을 찾아다녔다. 주로 빈티지 샵 근방을 많이 돌아다녔는데, 그곳에서 등장인물들에게 맞는 의상들을 다 구할 수 있었다. 옷 가게 사장님들은 영화 의상을 구한다니까 적극적으로 의상을 함께 찾아 주셨다. 그리고 사장님들이 내 영화가 궁금하시다며 나오면 꼭 보여달라고 했다. 이때, 짝꿍이 한 말이 잊히지 않는다. “벌써 관객이 두 명이나 생겼어~!”
사실, 촬영 날이 다가올수록 나는 예민해졌고 스스로에 대한 의심이 커져만 갔다. 그래서 어쩌면 나도 모르게 누군가의 응원이 절실하게 필요했던 것 같다. 낯선 사람들의 우호적인 태도에 나는 다시 희망을 얻었고, 함께 노력해 주는 든든한 지원군들 덕분에 잘 되고 있단 확신이 생겼다. 촬영 3일 전에 의상 피팅은 우여곡절 끝에 완성이 되었다. 그리고 이 노력의 진가는 촬영 때 빛을 발했다. 의상은 각 인물들의 개성을 확실히 보여줬고, 누구보다 사랑스러운 인물이 되어 살아 움직였다.
이번에 의상을 준비하면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우선, 한 분야의 전문가는 괜히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전문적으로 패션을 했던 사람이 도와주니, 스타일링의 퀄리티가 남달랐다. 나도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서 언젠간 누군가에게 필요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또한, 진정한 프로페셔널함은 태도에서 나온다는 것을 배웠다. 우리는 돌아다니면서 엄청나게 많은 옷을 피팅했는데, 배우분들은 힘든 내색 하나 없이 적극적으로 함께 해줬다. 그리고 각자 생각한 캐릭터의 해석까지 더해 의견을 주었고, 우리는 더 나은 옷을 찾아갔다. 옷 가게 사장님들 또한 마찬가지다. 손님이 어떻게 해야 최상의 만족을 얻을 수 있는 옷을 골라갈 수 있는지 함께 고민해 주셨다. 마지막으로, 영화는 내가 혼자 할 수 있는 작업이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이 점은 매 번 느끼는 것이기 때문에 아마 앞으로도 브런치 글에 반복해서 나올 것 같다. (미리 양해를 구합니다.)
이번 프리 프로덕션 단계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있을 것 같다. 아무래도 준비 과정에서 함께 해준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도와달라고 얘기하지 못하고, 거의 모든 것을 혼자서 준비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함께 준비하는 시간들이 상대적으로 좀 더 많았다. 그래서인지 추억도 많고, 기억하고 싶은 것들도 많다. 준비 과정에서 느꼈던 감사함을 다시금 곱씹어본다. 곱씹을수록 따뜻한 기억이라니, 행복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