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한 번 줌으로 모이는 독서모임에서 책이 아닌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며 한창 수다를 떨었다.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진 까닭인데, 그 원인은 얼마 전 우울감을 느꼈다는 한 멤버 분의 고백 때문이었다. 새로 이사를 해야 하는 상황과 집을 팔아야 하는 상황이 맞물리고 이래저래 해결해야 할 큰 일들이 닥치면서 번아웃이 오셨다고 한다. 가장으로서 가족들의 니즈를 만족시키기 위해 이리저리 열심히 하고는 있는데 성취감 같은 것도 없고, 뭘 먹고 싶은 것도,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다는 고백이 왠지 크게 다가왔다. 내가 보기엔 자기 일도 열심히 하시면서 재테크를 위해 투자 공부도 열심히 하시는 분인지라 예상치 못했던 고백에 적잖이 놀라고야 말았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해결되지 못한 큰 일들 때문에 자기 자신을 위한 소소한 마음 돌봄에 신경 쓰지 못한 것이 원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자전거 타기를 좋아하는 지라 비수기인 지난겨울에 자전거를 교체할까 했던 계획도 접어두셨다고 했는데 아마 그런 것들이 자기도 모르는 새 하나둘 쌓였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있다. 자기보다 가족을 위한다는 생각으로 자신의 욕구를 억누르는 사람들 말이다. 나를 포함해서 거기 모인 사람들이 일단 그랬다.
아마 결혼을 하고 부모가 되면 모두 비슷한 마음일 것이다. 나를 위한 것보다는 아이들을 위한 것을 먼저 생각하게 되고 배우자를 위한 것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예를 들면 주말에 배달음식을 시켜 먹을 때, 나는 피자를 먹고 싶은데 치킨을 먹고 싶은 아이들을 위해 치킨을 주문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물론 치킨도 좋아하기에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이런 사소한 것들이 알게 모르게 쌓이다 보면 한 번씩 자신도 모르게 깊은 우울감을 느끼는 지경에 다르게 된다. 나는 이를 인지하면서 언젠가부터 소소하게라도 나를 만족시키기 위해 애쓰고 있다. 출근길의 커피 한잔이라든지, 새벽 시간에 가지는 나만의 루틴이라든지, 혼자 있을 때 얼큰하게 끓여먹는 라면이라든지 말이다. 소확행의 진정한 의미는 아마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작은 행위들로 나를 항상 기분 좋은 상태로 유지하는 것 말이다.
뭐든 그렇지만 기분이 좋을 때는 쉬이 이해가 되고 전혀 문제 될 것 없는 일들이 기분이 좋지 않을 때에는 굉장히 크게 다가온다. 가족의 삶이 그렇다. 나 혼자 산다면 크게 문제 되지 않을 일이지도 모르지만 가족이란 적어도 두 명 이상의 사람이 한 공간을 공유하는 사이이기 때문에 각자의 기분이 어떤가는 구성원 전체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다른 구성원의 탓으로 돌린다. 부부 사이든 부모 자식 간이든 서로 내 맘을 이해해주고 보듬어 주지 않는 상대를 원망하며 속상해하는 것이다. 자책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남 탓만 하는 것도 큰 문제이다.
나 자신이 아닌 누군가가 내 입맛대로 행동하기를 바라는 것은 배우자든 내 배 아파 낳은 자식이든 불가하다. 그래서 요즘의 나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상대방에게 크게 기대하지 않기를 연습하는 중이다. 책에서 봤을 땐 나한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 거야라고 여겼던 그 문장이 이제는 체감이 된다.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건 나 자신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아 갈수록 나 스스로를 기분 좋은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절실히 깨닫는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지는 생각 하나는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들이 상대방에게도 꼭 그렇지 만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그건 얼마 전 구혜은 작가의 북토크에서 들었던 강렬한 문구 하나가 맴돌아서 일지도 모르겠다. "너의 경험을 너무 대단한 것이라고 여기지 말아라." (작가님이 전문 번역가 조진형 선생으로부터 들은 말씀이라 한다) 그 문장은 말 그대로 나의 머리를 강타했다. 그리고 나의 언행을 자꾸 돌아보게 한다. 특히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상대방의 의견을 무시하며 나의 경험을 공유하는 것을 넘어서 강요하려고 했던 모든 것들이 어쩌면 사랑을 가장한 '폭력'이었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강요와 공유는 겉으로는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뜻을 가지고 있다. 내가 좋았던 것을 공유하는 것과 그것을 꼭 해야 하는 일이라고 강요하는 것은 관계를 망치는 지름길이다. 세상에 절대적인 기준은 없다. 그건 내가 아동 문학, 청소년 문학을 읽으면서 알게 되는 가장 큰 깨달음이다. 그런 책들을 읽으면서 개개인의 삶의 방식이 누군가에 의해 평가받아서는 안된다는 것을 배운다. 그렇기에 나의 지난 언행들에 더욱 부끄러움이 몰려든다.
배우자에게도 아이들에게도 나의 삶의 방식을 강요할 권리는 없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속에 서로의 삶을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이미 충분할지 모를 일이다. 삶을 공유하는 가운데 서로 느끼는 바가 있을 것이고, 그 가운데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잘 표현하는 것만이 어쩌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일지 모른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는 자기 자신을 항상 기분 좋은 상태로 만드는 것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다행히 나는 이제 나를 기분 좋게 만드는 일들을 알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사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 특히 가족을 이룬 이상 나만 생각할 수 없기에 갈등은 필연이다. 그래서 나는 단순해지기로 했다.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기도 또 이해하기도 어렵기에 이기적이지만 나를 우선으로 생각하면서 내가 먼저 행복하기로 말이다. 때마침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동요곡들에 기분이 더욱 좋아진다. 누군가에겐 유치할지 모르지만 동요곡들을 들으면서 행복함을 느끼는 나를 알아차릴 수 있는 지금에 감사하다.
표지 사진 : Photo by Eric Nopanen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