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연애만 그린 모태솔로 화가의 애수

키테라섬의 순례, 장 앙투안 와토

by 알스카토
루브르 박물관 아폴로 갤러리

베르사유 궁전에 가거나, 혹은 루브르 박물관의 아폴로 갤러리에 있는 부르봉 왕실 보물을 보고 있으면, 그들은 아마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화려함과 사치의 끝이 어디일지 알아보려 했던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터무니없이 화려하거든요. 태양왕이라 불리던 루이 14세는 화려한 공간에서 매일 파티를 열었고, 파티에 참석했던 귀족들은, 당시의 쾌락을 잊지 못해, 집으로 돌아와서 비슷한 연회를 흉내 내기 시작했습니다. 루이 14세가 죽고 나자, 파리의 귀족들은 자신들도 작은 왕이 된 것처럼, 또 다른 축제를 열기 시작했고, 루이 15세의 프랑스는 그야말로 세기말적 놀자판으로 변해버렸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인지 우린 이미 알고 있죠)

당시 프랑스에서 유행하던 그림도 사회 분위기를 고스란히 닮아갔습니다. 프랑스 미술의 아버지 푸생이 추구했던 엄숙하고 진지한 풍조는 사라졌습니다. 대신 가볍고 장식적인, 귀족들의 연회 분위기에 어울릴 만한 쾌락적인 그림들이 나왔는데, 그 그림들을 후대 미술사가들은 ‘로코코’라고 불렀습니다. (아래 그림의 분위기가 제가 생각하는 로코코의 전형입니다)


오늘 소개할 화가는 로코코의 아버지이지만, 또 다른 로코코 화가들과는 구분되는, 뛰어난 예술가 장-앙투안 와토입니다.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그의 대표작은 <키테라섬의 순례>인데요.

키테라섬은 당시 프랑스의 희곡에 소개된, 비너스가 태어난 섬이라 알려진 곳입니다. 사랑의 신 출생지답게, 모든 사랑이 이뤄진다고 알려진 곳인데, 당시 쾌락만 추구하던 귀족들 사이에서, ‘키테라섬’ 놀이가 나름 유행이었습니다. 남녀가 섬에 들어가, 지금으로 치면 사랑의 짝짓기, 요즘 버전의 ‘나는 솔로’를 연출했던 거죠. 와토는 아마 당시 키테라섬 놀이를 하던 귀족들을 그린 것 같은데, 잘 보면 사실적인 그림은 아닙니다. 짝을 찾는 남녀들 머리 위로 사랑의 신 큐피드가 날아다니고요.

섬 구석엔 이 섬의 주인으로 알려진 비너스 여신의 조각상이 있습니다. 그 밑엔 큐피드가 날려야 할 화살이 놓여있죠. 그림 속 인물들이 지금 각자 짝 찾기를 완료하고 섬을 떠나는 장면인 건지, 아니면, 이제 본격적으로 키테라섬 놀이를 시작하려는 건지 단정할 수 없지만, 임무를 끝낸 남녀가 만족스럽게 섬을 떠나는 해석이 좀 더 유력해 보입니다.


사실 와토를 로코코의 아버지로 부르기도 하지만, 와토 입장에선 그 딱지가 불만족스러울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실 로코코란 태그엔 부정적인 함의도 있거든요. 로코코는 쾌락을 추구하던 귀족들의 취향이 고스란히 반영된 사조인데요. 곡선으로 장식된 가구랄지, 파스텔색 혹은 분홍색 같은 밝은 색이 과도하게 쓰인, 지금으로 치면 유행을 좇은 트렌디 드라마라고 볼 수 있습니다. 유행을 따르다 보니, 일부 작가를 빼면 화가의 예술가적 독창성이 덜 느껴진다고 볼 수도 있겠죠. 하지만 와토는 좀 달랐습니다. 그는 북부 프랑스에서 루벤스 그림에 감동하여 플랑드르 그림을 열심히 공부하던 재능 있는 미학도였습니다. 더 많은 고객을 찾아 파리로 넘어왔는데요. 하지만 와토는 곧 실망합니다. 당시 고객들의 주문이 천편일률적이었기 때문이었죠. 집 꾸미는 장식적인 그림들이 대부분이었거든요. 그는 고향으로 일단 돌아갑니다. 하지만 숨은 실력자는 언젠가 드러나게 되는 법. 그의 그림을 좋게 본 프랑스 왕립 미술 회원이 그에게 살롱전 출품을 권합니다. 물론 살롱전 출품작은 푸생의 기준에 따라 신화, 종교, 역사 중심의 무거운 그림이어야 했는데요. 하지만 와토의 뛰어난 실력을 인정한 심사위원들이 새로운 항목을 신설하여 와토의 그림을 출품작으로 뽑습니다. 그때 생겨난 항목이 ‘페트 갈랑트’ 즉, 우아한 연회 부분이고, 출품된 작품이 바로 지금 보는 <키테라섬의 순례>입니다.


<키테라섬의 순례>를 자세히 뜯어보면 이 그림은 로코코의 탈을 쓴 우울하고 슬픈 그림이란 걸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전원적인 풍경, 밀담을 나누느라 정신없는 연인들, 그들을 바라보는 큐피드만 보면 이보다 더 완벽한 로코코 작품은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그림의 분위기를 한순간에 바꾸는 것이 그림 중앙, 여성의 표정입니다. 짝을 찾아서 섬을 떠나는 시각으로 그림을 본다면, 마냥 행복해야 마땅할 텐데, 여성의 표정은 우수에 젖어있습니다.

마치 클럽에서 밤새 술 마시며 놀다, 서서히 밝아오는 아침 하늘을 바라보며 집에 돌아올 때 짓게 되는 표정과 비슷합니다. 허망함이죠. 스토아학파가 경계했던 쾌락의 찰나적 속성 때문일 겁니다. 이렇게 짝 찾고 사랑을 나누며, 즐거움을 누려봤자, 섬을 떠나면 곧 사라질 쾌락이란 걸, 저 가운데 여성은 간파한 것처럼 보입니다. 아래의 여성 중 한 명도 비슷한 감정을 느낀 것 같죠?

동시에 저 인물의 표정이 바로 와토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이기도 하겠죠. 노는데 정신 팔린 귀족들에게 날리는, ‘그렇게 노는 것도 한순간이다.’ 같은 메시지 말이죠. 실제로 키테라섬 놀이를 하는 귀족들에게도 영원한 사랑에 관한 관심은 없었을 거 같고요.


루브르에 있는 와토의 또 다른 작품 <두 사촌>을 보면 와토의 염세적인 분위기를 더욱 분명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역시나 분위기 좋은 전원에서, 젊은 남녀가 연애질 하고 있습니다. 남자가 옷 위에 올려놓은 꽃을 여성에게 전달했고, 이를 여성이 받아들인 걸 보면, 둘의 사랑은 연결된 걸로 보입니다. 그런데 정말 생뚱맞게, 다른 사촌이 이 둘의 연애를 우두커니 서서 바라보고 있습니다.

와토는 그런 사촌의 뒷모습을 그림 중앙에 그려놨죠. 와토의 다른 그림처럼 분명한 메시지를 던지는 건 아니지만, 마치 와토의 시선을 대변하는 중앙의 여성이 두 연인의 사랑놀이를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느낌이 듭니다. 사랑을 나누는 연인들아, 지금은 행복하겠지만, 너희의 사랑이 얼마나 지속되겠느냐.라고 이야기하는 느낌이 든다면 지나친 억측일까요? 사실 와토가 모태 솔로였으며, 죽을 때까지 평생 연애를 안 해봤다는 걸 고려하면, 파티 즐기고 사랑 나누는 귀족들에게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는 게 좀 더 이해가 갑니다. 심지어 와토는 37살에 사망하게 될 정도로 평생을 병에 시달리며 허약하게 살았습니다. 폐병에 시달렸으니 제대로 된 연애조차 할 수 없었겠죠. 그러니 귀족들의 사랑놀이가 와토의 눈에 한편으론 아니꼽고 한편으론 한심하게 보이지 않았겠습니까?


<운 좋은 사건>이란 제목의 그림은 대놓고 우울한 분위기를 표현했습니다.

그림 속 남녀의 모습은 사랑을 나눈다기보단, 지금 기준에선 미투 사건이 벌어지는 현장을 연상시킵니다. 심지어 ’운 좋은 사건‘이란 제목은 남성 범죄자의 심리를 포착한 게 아닐지 싶기도 하고요. (물론 와토의 그림 제목은 누가 지었는지 의견이 분분합니다)

<님프와 사티로스>는 서양 그림에서 반복되는 주제, 즉 님프의 육체를 원하는 사티로스의 욕정을 그린건데, 보통 이런 그림들은 귀족들이 구애에 쓰는-난 당신을 원한다-전형적인 그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주제를 와토가 그렸다고 하니, <운 좋은 사건>도 그렇고, 육체적 쾌락의 허망함을 이야기하려는 것 같습니다.

또 다른 그림 <무관심>은 왜 제목이 무관심인지 이해가 안 가는 알쏭달쏭한 작품입니다. 화려한 복장을 한 어린 남성은 춤을 추고 있는데, 이 그림은 루브르에 있는 또 다른 와토의 걸작 <어릿광대>와 연속선상에 있어 보입니다.

정리해보면, 세상은 별 관심이 없는데도 웃으며 공연하는 댄서의 모습, 남을 웃기는 게 직업이지만 한없이 슬픈 표정의 어릿광대. 폐병으로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귀족들의 파티와 사랑을 그리는 화가. 와토는 이런 모순을 감내하는 인물들의 공통점을 짚어내, 자신이 처한 부조리를 로코코라는 낭만적인 그림 속에 숨겨놓았던 겁니다. 와토의 그림을 보며 관객들이 다른 로코코 그림에서 찾을 수 없는 강렬한 페이소스를 느끼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타인의 연애질만 그려야했던 모태솔로의 애수가 그에겐 참 부조리했던 거죠.


<키테라섬의 순례> 속 뒤돌아보는 여성의 표정을 다시 한번 응시해 봅니다.

시한부 인생을 살던 화가의 눈에 사랑을 나누는 귀족들의 쾌락만이 찰나적이고 허망해 보였을까요? 와토는 아마도 외로움 속에 병마와 싸우며, 한 번 지나가면 모든 게 돌아오지 않는다는 인생 전반의 허무를 느꼈을 겁니다. 이 때문에 전 와토의 그림이 더 슬프게 느껴집니다. 물론 인생의 즐거움이란 것이 지나고 보면 다 한순간에 불과하지만, 그 순간의 즐거움이 하나둘 모여 인생의 행복이 된다는 사실을, 연애 한 번 못 해보고, 평생 폐병을 앓으며 힘든 시간을 보낸 와토는 살면서 단 한 번도 제대로 느껴보지 못한 게 아닐까, 싶어서 말이죠. 그래서 더 딱한 와토의 인생, 더 애잔한 그의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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