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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isan Dec 15. 2016

야자나무 숲의 삼계탕  

천연의 야자 술 뽀요(poyo)를 찾아서......

커다란 이민가방 짐을 끌고, 서른 시간이 넘게 비행기를 타고 드디어 엄마, 아빠가 시에라리온에 도착했다. 우리도 아침 일찌감치 마케니를 출발해서 프리타운 공항으로 마중을 나갔다. 학교의 베테랑 기사 히브라임 아저씨는 우리가 시에라리온에 도착했던 날 경험했던 '사파리 여행' 도로를 탔는데, 그동안 공사가 많이 진척되어 비포장 도로가 많이 닦여 있었다. 


긴 여정과 현지의 더운 날씨 탓인지, 엄마, 아빠의 모습은 기진맥진! 1-2달러짜리 지폐를 가능하면 주머니에 챙겨 오시라는 팁을 미리 드린 덕분에 입국 수속은 신속하게 그리고 매끄럽게 진행되었단다. 우리는 프리타운에서 또 서너 시간 비포장도로를 달려 마케니에 도착했고, 엄마, 아빠는 "우리는 먼저 좀 누워야겠다."하며 파김치가 되어 침대에 곯아떨어지셨다. 여행 전부터 복용했다는 말라리아 예방약의 부작용도 한몫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민가방 네 개에는 그야말로 온갖 구호물자가 들어있다. 캠핑용 코펠, 머리에 착용하는 야간 램프, 라면, 건조 김치, 커피믹스, 된장, 고추장, 다용도 강판, 손자를 위한 색종이...... 짐을 풀어 정리하는 동안, 안토니오는 신이 나서 팔짝팔짝 뛰었다. 


다음날, 이른 취침 덕분에 기운을 차린 부모님과 마케니를 구경하자고 길을 나섰다. 새로 나타난 '외국인'의 모습에 동네 아이들은 "아포또"하며 한 마디씩 소리치며 달려온다. 이런 모습에 어리둥절한 엄마, 아빠는 "아포 또? 아포또가 무슨 소리냐?"하고 물으신다. "아포 또는 이곳 사람들이 외국인을 부르는 애칭이에요. 반갑다고 인사하는 말이죠." 무리를 지어 달려온 동네 아이들의 모습에 놀랐다가,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미소를 보고 마음이 놓인 듯 아빠는 "하이~"하며 손을 흔들어 아이들에게 답했다. 아이들만큼 가까이 다가오지는 않지만 동네 사람들도 처음 보는 이방인에게 "하우디 바디?( 잘 잤어요?)"하며 인사를 건네며 웃음으로 환영한다. 교문도 담도 없는 마케니 대학을 둘러보던 아빠는 도서관을 찬찬히 둘러보다가 책장에서 책 한 권을 꺼내 들고 열람석에 앉았다. "시에라리온 내전에 대한 얘기를 다룬 책이 있네! 나는 여기서 책을 좀 읽을 테니 다들 계속 구경하시게."  


우리는 각자 오카다(오토바이 택시)에 나누어 타고, 마케니의 중심인 시장으로 향했다. 오토바이에서 내린 엄마가 "저기 좀 봐!"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빨간 티셔츠를 입은 청년이 서 있었는데, 티셔츠에는 한글로 선명하게 "오랑캐"라고 쓰여 있다.  엄마는 어린 시절 시골 장터가 기억난다며 사람으로 북적이는 시장 골목을 요리조리 살피며 구경했다."여기도 뭐 그런대로 살만하구나. 이렇게 시장에서 사람들 구경도 하고 흥정도 하고 재밌다!"

시장에서 현지인들이 즐겨먹는 청양고추 한 컵과 계란 한 판, 망고와 코코넛을 잔뜩 사들고 엄마는 신이 났다.  


점심때는 마케니에서 현지조사를 하고 있는 스위스 학생 미켈레가 뽀요(poyo) 한 통 들고 놀러 왔다. 한국에서 공수해 온 라면을 국물까지 깨끗이 비우고 제안했다. "오늘 오후에 친구들이 뽀요 채취하러 갈 건데 함께 가실래요? 야자 술을 채취하는 것도 구경하고, 같이 밥도 해 먹고 꽤 재밌답니다." 뽀요는 야자수액이 발효된 술로, 뽀얀 빛에 시큼하고 단 맛이 일품이다. 마케니에서는 특히 림바(rimba)족들이 전통적으로 뽀요를 채취하고 즐긴다고 했다. 우리는 흔쾌히 뽀요 채취에 동행하기로 하고, 저마다 오카다 뒤에 타고 야자나무 숲을 향해 출발했다. 10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높게 솟은 야자나무 숲에 도착하자, 일행 중에 림바족이라는 한 친구가 풀로 단단하게 엮은 띠를 야자나무 줄기와 자신의 허리에 두르고 맨발로 가볍게 나무를 타고 올랐다. 나무 꼭대기에 뚫어놓은 작은 구멍에 받쳐 둔 통에 고인 술을 가지고 내려오는 것으로 임무 완수! 5분도 채 걸리지 않는 술 채취 광경을 지켜보던 아빠는 자신도 해 보겠다며, 등산화를 단단히 묶고 풀로 엮은 띠를 허리에 고정시키고 나무 타기를 시도했다. 그러나, 나무 오르기는커녕 안정된 자세를 유지하며 버티는 것도 어려워서 바로 백기를 들고 내려왔다. 이를 지켜보던 현지 친구들은 배꼽을 잡고 웃으며 말했다. "저 림바맨은 예닐곱 살 때부터, 야자나무를 타기 시작해서 완전히 원숭이랍니다. 나무 타기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에요." 우리는 야자나무 그늘 아래 앉아 뽀요를 가득 채운 컵을 들고, 막 채취한 야자 술을 음미했다. 숲에는 두서너 가족이 살고 있는 농가가 있었는데, 그 농가의 여인들이 우리를 위한 닭고기 요리를 준비하느라고 한창이었다. 시뻘건 팜유와 땅콩으로 갈아 만든 소스가 듬뿍 들어간 조리 모습을 지켜보던 엄마는 나를 툭치며 "아무래도 나는 닭 한 마리를 따로 사서 삼계탕을 끓여야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그렇게 준비 좀 해 달라고 하면 안 될까?" 하고 말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전했고, 여인들은 흔쾌히 깃털을 벗긴 토종닭 한 마리를 건네주었다. 엄마는 마늘과 소금을 양념 삼아 닭국을 한 솥 끓이기 시작했다. 농가의 여인과 현지 사람들은 기름도, 소스도 없이 그저 물만 넣어 닭을 삶는 모습을 신가 하게 바라보았다. 인삼이 들어가지 않아 삼계탕이라기보다는 닭국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겠지만, 어쨌든 현지인들에게 한국에서 먹는 닭고가 스프라고 설명했다. 


시에라리온 사람들은 여럿이 식사를 할 때 특별히 개인적인 식기나 도구 같은 것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저 음식을 큰 접시에 놓고, 다들 손으로 자유롭게 집어 먹는다. 그래서 한국과 같은 국물이나 탕요리가 많지 않은데, 엄마가 멀건 삼계탕을 한 솥 내어 놓자 다들 눈만 껌뻑거린다. 농가 여인들에게 숟가락과 국그릇을 빌려서 토종 삼계탕 맛을 보니 쫄깃쫄깃한 고기와 뜨거운 국물에 땀이 뻘뻘 났다. 신선하고 시원한 뽀요를 한 잔 곁들여 헤롱헤롱 한 정신으로 집으로 돌아온 우리는 기분 좋게 꿈나라로 빠져들었다. 


아포토(apoto)!    


손자 안토니오와 집을 나서면

길에서 만나는 검은 아이들, 한 순간

아포토! 아포토! 소리치며

멀어질 때까지 손을 흔든다

더러는 쫓아와서 손을 잡기도 하는데

자기들 검은 일상에 나타난

세 살짜리 흰 얼굴의 어린 아포토와

그 할아버지가 신기하고 반가운 모양이다

아이들이 그렇게 떠들면

일하던 어른들도 손을 멈추고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웃음을 전해온다

손자와 나, 두 아포토는

좌우로 답례 하기에 바쁘다

하이, 굿모닝!  


‘아포토’는 반가운 친구라는 뜻이다

처음 이 땅에 왔던 백인이

포르투갈 사람(Portuguese)들이었고

그들이 좋은 친구로 대해주었기에

그때부터 ‘아포토’는

백인 친구를 부르는 애칭이 되었다고

흑인 죠신부님이 설명해준다  


이 마을에 와 있는 아포토들

-이탈리아에서 온 신부님

-독일에서 온 수녀님

-스코틀랜드에서 온 의사

-영국에서 온 간호사

-미국에서 온 회계학 교수

-스위스 유학생 마이클

-중국문화와 언어를 강의하러 온

  이탈리아 남편과 한국인 부인

-유치원에 유일한 아포토인 안토니오  


그 숲에서

이들 좋은 친구들 사이에 끼어

졸지에 아포토가 되어버린 아내와 나는

하이! 하이! 하고

멋쩍은 웃음을 보낸다   

(2012. 3.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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