된장, 고추장, 라면, 장난감을 바리바리 짊어지고
인터넷이 성공적으로 연결되어, 이메일 한 통을 열어 확인하고 답하는 것만 해도 고마운 현지에서는, 스카이프 같은 인터넷 통화를 잠깐이나마 할 수 있다면 행운이다. 이름도 못 들어 본 아프리카의 어떤 나라에 딸네 가족을 보내고 엄마, 아빠는 걱정이 되신 모양이다. 현지에 잘 도착했는지, 아픈 데는 없는지, 생활을 어떤지, 필요한 물건은 없는지 이메일 가득 염려가 담겨있다. 얼마간 현지에서 생활을 하며 적응기간이 지나자, 한국음식도 먹고 싶고, 이런저런 생필품들이 아쉬워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공공 전기나 공공 교통 등 제반시설이 갖추어지지 않는 현지에서는 우체국이 있기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우편 서비스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작년 10월 대만을 떠나며 필요한 책과 의류를 배로 부쳤는데, 며칠 전 구겨지고 찌그러진 상자를 넉 달만에 받았다. 총 4개의 상자를 보냈는데, 신발과 의복을 넣었던 상자는 분실되고 책이 든 상자들만 대학의 운전사 히브라임 아저씨가 프리타운에 우체국에서 가서 받아다 주었다.
된장, 고추장, 라면, 김...... 등 몇 가지 그리운 먹거리 목록을 최소한으로 적어서 한국 부모님께 이메일로 보냈다. 그리고 며칠 지나서 답장을 받았다. 짐을 보내려고 우체국을 찾았는데, 담당 직원도 생전 처음 맡은 국가라며 우편비용이 200만 원쯤 나온다고...... 가격이 비싸도 너무 비싸다 싶어서, 머릿속에서 아른거리는 음식들을 지우며 보내지 말라고 답을 보냈다. 그리고 또 며칠이 지났을까, 며칠 고민 고민하시다가 차라리 짐을 들고 오시는 쪽으로 결정을 하셨단다. 한 명의 수화물이 40kg까지 허용되니까, 아빠 엄마가 함께 오시니 80kg를 들고 오면 우리가 필요한 물건을 넉넉하게 가져올 수 있다. 짐도 짐이지만, 현지에서 도대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눈으로 직접 보고 싶은 것 같았다.
엄마, 아빠가 아예 짐을 마케니로 배달해 주신다고 하니, 남편의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란다. 안토니오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날 생각에 신나서 만세를 부른다. 인천에서 방콕을 거쳐, 나이로비에서 다시 프리타운까지 오는 일정표에는 비행시간이 서른몇 시간으로 표시되어 있다. 프리타운에서 마케니까지 오면 또 서너 시간은 걸리겠지. 긴 여정이 걱정되면서도, 조만간 마케니에서 엄마, 아빠를 만난다고 생각하니 설렘과 기대로 마음이 부풀어 올랐다. 부모님의 시에라리온 비자 신청과 말라리아약을 복용방법, 예방주사 접종 등 여행 준비사항을 이메일로 보내며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그 기다림은 아빠의 시상(詩想)을 일깨워 두 편의 시가 탄생했다.
-딸네 / 아프리카 1
아내의 정신은 온통 아프리카로 가있다
시에라리온,
나라 이름도 지역도 낯선 거기서
살고 있는 딸네가 영 안쓰럽다
먹을거리가 그리 넉넉지 않다는데
세 살 손자 놈은 밥때만 되면 좋아서
밥상에 올라가 춤을 춘다니
그 소리도 제 할미에겐 눈물이다
전기는 공식적으로 하루 두 시간
물은 제대로 공급되니 안심하라 했으나
지난번 메일엔 물이 이틀간
전기가 삼일씩이나 단절되었다니
그런 암흑천지가 상상이 안된다
아니, 냉장고도 없이 어떻게 살아?
이번 주엔 스카이프며 스마트폰을
종일 두들겨도 수신 불능이라
결국은 무소식이 희소식이란
옛말을 베개 삼아 한 숨 붙인다
지들이 거기서 얼마나 견딜까,
그러면서도 또 기도를 드린다
아내는 오늘도 아프리카 마을에 가있다
긴 이민빽 자루를 열어놓고
손자가 좋아한다며 김이며 라면을
집어넣었다 빼냈다 하는데
우체국 직원도 고갤 흔드는 곳으로
저걸 어떻게 보내려는지
어느 때 보내려는지 모르겠다
(2012.2.3.)
-구호품/ 아프리카 2
시커먼 이민 가방에
이종 문명의 부스러기를 담는다
위탁 수화물 규정은
한 사람에 40킬로씩
둘이니 80킬로까지 가능하다
책 한 가방
먹을거리 한 가방
옷가지 한 가방
남은 가방엔 손자 놈 장난감과 문구류
담다 보니 가방마다 중량 초과다
4개의 가방을 저울질하며
속에 채울 문명을 재분배한다
-된장과 라면을 좀 빼!
-무거운 책을 줄여요.
-벌거벗고 사는 곳인데 옷은 확 빼도 되잖아?
시에라리온 딸네 집으로 가는
구호품 보따리를 꾸리며
아내와 나의 대립된 문명 사관은
밤새도록 내전으로 시끄럽다
아프리카여....
(2012. 2.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