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계절의 아이들은 말을 안 들어요. 달콤한 엄마가 있기 때문이죠."
3월이 되자, 노오랗고 탐스럽게 익어가는 망고가 눈에 띈다. 동네의 꼬마들이 망고나무에 둘러서서 높이 매달린 망고를 향해돌팔매질을 시작한다. 건장한 청년들은 아예 패를 나누어 망고 따기에 돌입한다. 몸이 날렵해 나무를 잘 타는 청년들은 나무를 타고 올라가 망고를 따고, 나무아래 청년들은 양 손에 자루를 끼워 커다란 장갑을 만들어서 망고를 받을 준비를 한다. "망고 받아랏!" 나무 위 청년들이 망고를 따서 아래로 던지며 소리지른다. "탁!툭! 쿵!"하고 나무아래 장갑들이 망고를 받아낸다.
멀고 먼 어느 열대나라에서 수입되어 온 비싼 망고는 나에게 생소한 과일이었다. 그저 맛만 볼 정도로 가끔 먹어보았던 이 열매는 내 입속에 새콤하고 향긋함을 남기고 사라져버렸다. 껍질에 붙은 황금색 과육을 알뜰하게 긁어 먹고나면, 개 혓바닥을 같이 생긴 커다란 망고 씨가 아쉬운 마음과 함께 덩그러니 남았었다.그래서 시에라리온에 오기 전에는 망고에도 여러가지 종류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그런데 그 고귀하고 신비한 망고님이 나무마다 주렁주렁 달려있다니!
시에라리온에 오기 전에는 망고에 여러가지 종류가 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감자처럼 길가에 쌓아놓고 파는 망고들을 찬찬히 살펴보니, 모양도 색깔도 크기도 다 제각각이다. 오렌지색에 가까운 짙은 노란색의 동그란 '라프라프'(Rope Rope)는 신맛이 없이 달다. 과실이 칭칭 감겨있는 실타래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라프라프를 먹으면 이빨 사이사이에 노란 망고의 실들이 낀다. '라이베리아 망고'(Liberia Mango)는 이웃나라인 라이베리아에서 자라는 망고로, 다 익어도 초록빛 혹은 옅은 노란색을 띄며 길쭉한 편이다. 라프라프와 달리 과육이 탄탄하고 칼로 자르기만 해도 새콤한 향이 퍼져나온다. 라프라프와 라이베리아 망고를 섞어 놓은 듯 새콤달콤한맛에 자그마한 체리망고, 갓난 아기만큼 커다란 붉은 색이 도는 기니망고 등등...... 이렇게 많은 망고 중에 시에라리온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망고 '넘버원'은 '달콤한 엄마'(sweet mother)다. 가을 은행잎의 노란빛을 닮은 이 망고는, 한 손에 '착' 움켜쥘수 있는 아담한 크기로, 과실이 라프라프처럼 질기지 않고 적당한 수분과 새콤달콤함을 겸비하고 있다. 게다가 '달콤한 엄마' 망고 나무가 시에라리온에 많이 자라서 흔하게 구할수 있다. 우리 집 앞 마당에 서 있는 두 그루의 망고나무도 바로 '달콤한 엄마'였는데, 그 탓에 동네 꼬마들이 뻔질나게 나무를 찾아와서 망고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갑자기 비라도 내리면, 비줄기를 가르고 나타난 아이들이 떨어진 망고를 잽싸게 주워갔다.
가지마다 주렁주렁 열린 망고를 따서, 혹은 저절로 떨어진 망고를 주워서 동네 아이들과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고 나도 하루에 망고 열 개는 우리 몫으로 남았다. 망고를 배부르게 먹고 나니, 귀하고 신비했던 망고님은 사라지고, 푹익은 망고들이 부엌에 쌓여갔다. 하루는 테레사가 그 망고들의 껍질을 벗기고 한꺼번에 큰 솥에 넣고 땅콩소스와 팜오일을 넣어 푹 끓였다. "테레사, 도대체 무슨 요리를 하는 거예요? 망고로도 스프를 끓일 수 있나요?"하고 묻자, 테레사는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럼요. 망고예배(ebeh)를 만들고 있어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스프에요."하고 대답한다.
'망고로 스프를......?'
도무지 상상이 안되는 맛을 머리속에 그려보며, 요리가 끝나길 기다렸다. 그런데, 망고의 껍질을 깨끗이 벗기고, 푹 삶아서 씨앗을 발라내고, 땅콩과 팜오일을 넣어 은근하게 끓이며 저어주어야 하는 긴 조리과정 때문에 점식식사 시간은 한없이 지체되고 있었다. 기다림을 이기지 못하고 안토니오는 일단 망고를 먹기시작했다. 조금 기다려서 망고스프를 먹자고 달래보아도, 달콤한 망고맛에 빠져서 들은 척도 안 한다. 잠시후, 테레사가 완성된 망고 스프냄비를 식탁에 올려놓았고 뚜껑을 열었다. '과연, 망고예배의 맛은?' 걸쭉한 망고스프를 후르륵 입에 넣는 순간, 향긋하고 고소한 향이 퍼져나간다. "세상에 과일로 이렇게 맛있는 스프를 만들다니.......망고로 국을 끓이는 사람들은 정말 시에라리온 사람들 밖에 없을꺼에요! 너무 맛있어요!"
테레사가 집에 있는 아들과 딸을 위해 망고예배를 국 그릇에 덜어 넣으며 말했다. "이 계절의 아이들은 말을 안 들어요. 어른들이 벌로 밥을 안 준다고 으름장을 놓아도 하나도 무서워하지 않아요. 달콤한 엄마를 찾아가면, 맛있는 망고를 배부르게 먹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녀의 이야기를 증명하듯, 한바탕 바깥에서 놀다 온 안토니오는 망고엄마를 손에 쥐고 마루바닥에 누워 먹다가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