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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종 Feb 17. 2021

선생님을 닮은 스승이고 싶었습니다.

시대의 스승 '불쌈꾼 백기완'을 보내며

[배경 사진 설명]

2017년, 여든다섯 살. 박근혜 정권의 국정파탄 규탄과 퇴진을 촉구하는 범국민촛불집회.
비가 와도 눈이 내려도 백기완은 광장과 거리에 서길 주저하지 않았다. ⓒ채원희


선생님을 닮은 스승이고 싶었습니다.


찬 바람 부는 아스팔트 바닥에 앉으셔서

화장실 한 번 가지 않으시고

끝까지 현장에 남아 민중과 함께 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선합니다.


3년 전 86세 노구의 몸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다고

말씀하시는 당신의 모습을 보며


화장실에 가지 않으시려고

집회 전에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고 오셨다는

당신의 인터뷰를 보며


노동자 민중의 치열한 싸움터로 가는 길에서도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포기하지 못했던

제 손을 부끄러워했습니다.

2019년 김용균의 장례식 추모사를 위해 무대에 오르고 있다.

2019년, 여든일곱 살. 태안화력발전소 야간작업 중 컨베이어 벨트에 몸이 잘려 운명한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의 장례식.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기력이 쇠한 상태였지만 누워 있을 수만은 없었다. 비정규직 청년노동자 김용균의 영정 앞에서 백기완은 울었다. 달라지지 않는 노동자들의 현실에 피눈물을 흘렸다. ⓒ정택용


추운 겨울 비정규 청년노동자의 죽음을 애도하러
광장으로 나서는 너의 두 손에 들린
따뜻한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한 잔.     

잔혹의 거리를 흐르는 눈물 닦으면서도
차마 커피 한 잔을 내던지지 못하는
너의 이름은 노동자다.     

2년 전 구의역 그 자리를 그냥 지나지 못해
한참을 멈춰 서 있던 그 시절을 아직 기억한다.     

- 김하종, <반성문: 어느 비정규직  청년 노동자의 죽음에 부쳐> 中 -

출처 : 김하종의 브런치(https://brunch.co.kr/@hajongkim20/7)


집회 중간 화장실을 들락날락거리던

제 모습이 부끄러워 차마 고개를 들기 어려웠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스스로 반성문을 쓰지 않고는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당신은 제게 민중과 함께 한다는 것이

진정 무엇인가를 알려주신 스승이셨습니다.




2009년, 일흔일곱 살. 용산참사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촉구 집회에 참석하고 있다. ⓒ정택용

2009년, 남일당 망루가 타오르던 날,

2014년, 세월호 아이들이 바닷물에 수장되던 날,

2015년, 친일과 독재의 역사를 왜곡하려

온갖 소동을 일으켰던

역사 쿠데타 세력에 맞섰던 날,

백남기 열사가 국가가 저지른 폭력에

무참하게 쓰러지던 날.


당신과 함께 역사의 현장 속을 누비었습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만민공동회에 참석하고 있다.

2014년, 여든두 살. 304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만민공동회 참석 후 청와대로 향했으나 진압 경찰에 가로막히다. 좌우에 민중미술가 신학철과 장경호 ⓒ노순택


당신은 언제나 이 땅에 소외되고

투쟁하는 사람들 곁에 계셨습니다.


아마도 당신이 없었던 곳은

찾기 어려울 것입니다.


2016-2017년,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시절.

심장은 뜨겁게 타올랐습니다.

2017년, 여든다섯 살.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 규탄과 퇴진을 촉구하는 범국민 촛불집회에 참석하고 있다. ⓒ채원희



87년 이루지 못했던 민중의 염원이

다시 폭발하는 광경을

두 눈으로 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북받치는 감정을 억누를 재간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두 달, 세 달이 지나고

사상 최다 인원을 경신하면서도

아무런 미동이 없던 청와대를 보며

우리의 행동에 의심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매주 반복되는 평화로운 집회'가 대체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


그 의심은 단지

매주 토요일마다 서울을 올라가는 게 힘들어서

핑계를 찾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역사의 진보와

민중의 힘에 대한 믿음이

부족했던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진 속 모습처럼 묵묵히 자리를 지켰던

당신의 모습은 저로 하여금 정신이

번쩍 들게 하였습니다.


군사독재에 맞서 숱한 고초를 겪고

온갖 반동세력의 공격에도 버텨내셨던

백발의 투사가 아직까지도 추운 아스팔트 바닥에

비를 맞으며 앉아 있는 모습 앞에 부끄러웠습니다.


발걸음을 다시 광화문으로

돌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신은 제게 싸우는 법을 가르치셨고

염치란 무엇인지를 알려주셨습니다.

2017년, 마지막 범국민 촛불집회에 참석하고 있다.

2017년, 여든다섯 살. 대통령 박근혜가 권좌에서 쫓겨났다. 민중의 힘으로 권력을 바꾼 쾌거였다. 마지막 범국민촛불집회에서 백기완은 축포를

함께 들었다. ⓒ채원희


결국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되었고

역사의 주인은 민중임을 확인하였습니다.


촛불 혁명의 기억은

제게 운동을 지속할 수 있게 해 주는

신념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87년의 선배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87년 6월 항쟁이

미완의 혁명으로 그친 것처럼

촛불 혁명도 수많은 사회적 과제를 남겼습니다.

1년 간 추운 겨울 그렇게 고생한 결과가

대통령 하나 끌어내는 것에서 그치고 말았다는

좌절감에 괴로워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당신의 글과 말이 저를 움직였습니다.

거리에서 투쟁하는 비정규 노동자들의 쉼터 '꿀잠' 건립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출간한 '백기완-문정현-두 어른' 표지


2017년 촛불 혁명 이후 출간한

문정현, 백기완 두 어른의 대담집.


<두 어른>


시대의 두 어른의 삶과 말씀은

끊임없이 역사의 진보를 의심해왔던

한 청년에게 확신을 심어주셨고

젊은 운동가의 길을 걷게 하셨습니다.


당신의 말씀은 항상 따갑고 투박했지만

나이를 초월하여 시대의 동료들에게

건네는 위로와도 같았습니다.


젊은이 여러분,
몇 년은 못살았지만 살기가 좀 힘들죠?

그런데 진짜 힘든 게 뭔지 아세요?

여러분을, 이 세상을 올바르고
아름답게 꾸미는 주역을 만들 생각을 안 하고
썩어 문드러진 놈들이 만든 틀 거리를 일구는데

이만한 못 하나 돼라, 아니면
벽돌 한 장이 되라고 여러분한테 강요하는 거
바로 여러분들의 창조적인 주체성을 박탈해서
허공에 집어던지는 거
 
그게 바로
여러분의 생명에 위협을 받는 어려움일 겁니다.

그러니 젊은이 여러분
사람이 사람으로 살 수 없는 이 사회에
한 조각 못 아니면 벽돌 한 장이 되어서
그냥 낀 대로 살 생각하지 말고
사람이 사람으로 살 수 있는 세상으로 만드는
주역이 되고자 몸부림을 쳐 보세요.

그러면 똑같은 일 초를 살더라도
영원으로 살 수 있을 겁니다. 영원.

젊은이 여러분!
젊은이 여러분. 힘을 내세요.

-뉴스타파 목격자들, <불쌈꾼 백기완> 中 -

당신은

노동자 민중의

스승이자

아버지이자

친구셨습니다.


당신의 말과 글에는

강력한 힘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투쟁하는 삶을 가르치셨습니다.


모든 투쟁하는 이들에게

당신의 말과 글은 가장 강인한 무기였습니다.


당신은

시라고는 사랑 시 밖에 모르고

노래라고는 사랑노래 밖에 몰랐던,


한 젊은 시인에게

민중을 사랑해야만

진정한 시를 쓰고 노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시는 무기다
배고픈 이들에게
가장 배부른 무기다

시는 무기다
세상 추운 이들에게
가장 따뜻한 무기다

시는 무기다
투쟁하는 이들에게
가장 강인한 무기다

당신의
가슴속 깊은 곳에 따스히 자리하여
우리 삶을 보듬을
가장 포근한 무기다

시는 무기다
탐욕스럽고 불의한 이들에겐
가장 따가운 무기다

네 놈들
가슴속 깊은 곳을 쿡쿡 찌르며
평생을 짓누를 가장 잔혹한 무기다.

-김하종, <시는 무기다> -
출처 : 김하종의 브런치(https://brunch.co.kr/@hajongkim20/24)


당신은

제게 글쓰기 선생님이자

선배 문화예술가였습니다.


더불어 당신은

제게 사상적 스승이자

자주적인 삶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신

인생의 멘토셨습니다.


군에서 장교로 복무하면서도

가장 존경하는 인물을

당신이라 적어 내었습니다.

"세종 이도와 충무공 이순신, 그리고 불쌈꾼 백기완."


당신을 시대의 스승이자

진정한 지도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삶을

무척이나

존경하고 흠모하였습니다.


당신이라는 시대의 스승을 마주하고 나니

교육대학교를 졸업하고

그냥 그저 그런 스승이 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적어도 정규직 철밥통 교사 공무원이 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민족사도 준천교육대학교

자주 춘천교육대학교를

졸업하고서도

누군가의 스승이 되기에는 제 그릇이 너무도

초라하고 작아 보여

아직도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문화가 뭐예요?

https://www.youtube.com/watch?v=8ZUePBaGQzI


문화는, 문화는
눈을 뜨고 있어도 앞이 안 보일 때
가랑잎이라도 모아서 불을 지펴가지고
앞을 밝혀 주는 것을
문화라 그러는 겁니다.

맞습니다.
문화라고 하는 것은
추워 떠는 우리들의 몸을
따시게 해 줄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앞을 밝혀주는 것
요걸 가지고서 문화라 그러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쓰레기를 모아가지고
불을 댕겨서
보이지 않는 앞을 당기고 있어요?


하고 있냐고!


스스로 약해질 때마다

당신께서 치시는 불호령에

정신을 번뜩이고는 하였습니다.

벌써부터 당신의 빈자리가 그립습니다.


새날은 후배들에게 맡기시고

이제 편히 쉬십시오.


당신이 임종 직전까지도 차마 놓지 못하였던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김미숙, 김진숙 힘내라!"

"노나메기"


당신의 그 뜻을 잊지 않고 깊이 새기겠습니다.


너도 일하고, 나도 일하고

그리하여 모두가 올바로 잘 사는

"노나메기" 세상 열어내겠습니다.


산 자들이 따르겠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앞서서 가나니 산자여 따르라

- 임을 위한 행진곡(백기완 글)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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