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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준 Apr 07. 2022

삶의 의미는 떡볶이 같은 것!

삶의 의미는 거창한 철학이 아니라, 떡볶이처럼 사소한 일상의 경험이었다.


2019년의 먹구름이 잔뜩 꼈던 여름날,

베란다를 보며 처음으로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히는 '죽고 싶다.'라는 마음이 아니라,

'죽어도 되겠다.'의 마음이었던 것 같다.


그때의 나는 극도의 불안감과 우울감으로 지쳐있었다.


넘어가지도 않는 김밥 한 줄을 바닥에 두고는

아무렇게나 앉아 멍하니 베란다만 바라봤다.


외로웠고, 지겨웠고, 무서웠고, 두려웠다.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살아간다는 게 지치고 힘들었다.


앞으로도 이런 삶을 살게 될 거라는 게

지독하게 무서웠고, 두려웠다.


김밥을 마저 먹다 말고는,

갑자기 이런 말이 툭 튀어나왔다.


'그냥 지금 베란다에서 떨어져 죽어도 상관없겠다.'


방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너무 무서워서 외투를 걸치고는 밖으로 나갔다.

내가 나를 정말 죽이겠구나 싶어서.


동네를 한 바퀴 돌며 마음을 진정시키고는

집에 돌아와 학교심리상담센터에 연락을 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상담을 받고 있다.


상담은 내게 삶의 의미를 찾아주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내게 그 의미를 찾아갈 수 있는 힘을 줬다.



산다는 것은 경험하는 것이지
삶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고 앉아 있는 것이 아니다.

파울로 코엘료, 『알레프』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라는 책의 제목처럼,


삶의 의미는 거창한 철학이 아니라,

떡볶이처럼 사소한 일상의 경험이었다.


그 당시 내게는 떡볶이 같은 존재가 샌드위치였다.


그때 살던 집에서 자전거로 20분 정도를 가면

매일 아침 신선한 샌드위치를 파는 카페가 있었다.


상담은 내게 자전거를 굴릴 수 있는 힘을 줬다.


그 힘으로 아삭한 샌드위치와 향긋한 밀크티를 사와

아침식사를 하는 게 내 삶의 의미가 됐었다.


지금은 이사를 와버려서 더 이상 먹을 수 없게 됐지만,

아직도 생각날 정도로 내게는 소중한 기억의 맛이다.


요즘은 삶이 퍽퍽할 때면

집 근처의 기가 막힌 파스타 맛집으로 달려간다.


명란오일파스타를 돌돌 말아 한 입 쏙 입에 넣으면

'이게 삶의 의미지!'하는 생각이 들면서 힘이 난다.


소소하게 한 푼, 두 푼 모아서

이탈리아에 파스타를 먹으러 가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아직 나는 살아야 한다.


올여름에는 수영을 배워서

파도를 가로지르는 서핑을 하러 가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오늘 나는 살아야 한다.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죽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일단 받을 수 있는 모든 도움을 받았으면 좋겠다.


그 힘으로 엉덩이를 일으켜 밖으로 나가보자.

그리고 자신만의 떡볶이를 찾는 거다.


전국의 떡볶이를 먹어보기 위해 살아가는 것 또한,

충분히 우리가 오늘을 살아갈 이유가 된다.


꼭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 무언가가 되기 위해

죽은 듯이 오늘을 살아갈 필요는 없는 거였다.


어쨌든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이 아니던가.


떡볶이를 싫어한다면 돈까스도 좋다.

제주도에는 유명한 돈까스 맛집이 있다.


그 정도면 삶의 의미로 충분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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