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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준 Sep 08. 2017

얇은 손목


얇은 손목





 교실 책상에 앉아서 방금 체육시간에 못 넣은 슛 하나를 쏘고 있다. 슛, 슛, 나는 공을 튀기면서 재치는 기술도 좋고, 달려가서 골대에 점프하면서 쏘는 레이업도 잘 하는데, 멀리서 쏘는 슛이 도대체 잘 안 될까. 농구에 젬병인 놈들까지도 슛은 그럭저럭 된다. 다시 제대로 보여주려면 다음 주 체육시간까지 기다려야…. 일주일에 한 번뿐인 체육시간 다음 이 수업엔 진동하는 땀 냄새뿐만 아니라, 모의고사를 치른 뒤와 같은 엄숙함이 있다. 수업을 들으면서도 누구는 잘 뛴 걸 뿌듯해하는 반면 누구는 아쉬워하는. 나도 그랬다가 아쉬움이 점점 마른다. ‘내 슛이 엉망이었어도 다른 기술들을 다 잘하니까 잘 해서 칭찬을 들을 정도니까 기억씩은 못 할걸.’     

 



 성인 되고 얼만 안 있어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우리 할아버지 하면 떠오르는 모습들이, 술 드시는 모습이 제일 그래도 먼저고, 그다음은 내 손목을 잡아주셨던 그 모습이다. 자세한 기억은 아니지만 계시던 아랫목을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무뚝뚝한 인사로 들어가서, 절을 올린 다음 앉았다. 나도 갑자기 키가 컸던 무렵이라 본인 무릎 위엔 못 앉히고, 내 손목을 꼭 움켜쥐시더니   


 “아이고 손이 왜 이래 얇노? 이래가 글씨나 쓰겠나?” 

 

 딱 두 마디 하셨지만 손목은 그것보다 더 오래 쥐고 계셨다. 나는 할아버지 방 안 냄새가 싫다고만 생각하고 있다가, ‘할아버지 저 글씨 잘 써요.’ 라던가 ‘저 공부도 열심히 해요.’ 라던가 그 말에 반박을 하고 싶어졌다. 물론 못 했지만.        




 아쉬움도 말랐고 그러면 틀린 문제를 다시 푸는 마음으로 슛을 쐈는데, 또 틀렸다. 또 풀면 또 틀렸다. 내 손목의 힘이 약해서, 그래서 농구공에 스냅이 잘 안 걸린다는 걸 성인이 되고 나서야 알았다. 부끄럽지만 이유를 알고 나선 농구를 한 적이 거의 없다. 나는 생각 날 때마다 한쪽 손으로 다른 쪽 손목을 쥐어본다. 엄지손가락에 새끼손가락이 닿을 정도로 손목이 얇긴 얇다. 할아버진 술이 오른 중에 손자의 그게 보이셨던 거다. 할아버지께 그때 반박을 전혀 못 했으니 지금이라도 속 시원히 얘기하고 싶다. 이 손목으로 연필로 글씨도 잘 쓰고, 요즘처럼 컴퓨터 타자를 종일 치고, 그리고 농구도 잘 한다고 말이다. ‘꼭 3점 슛을 잘 쏴야 농구를 잘 하는 건 아니잖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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