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요마 Jan 20. 2024

18. 우울 종결 선언 with 루틴

좋아하는 일이 이젠 있어서요

unsplash.com

18. 우울 종결 선언 with 루틴


2024년 새해만 밝으면 내 인생이 달라질 거라고 생각했다. 올해는 다를 거야! 새롭게 시작할 거야! 연말에 되뇌던 다짐은 점차 희미해졌다. 그나마 타오르던 열정은 지난주에 1년을 끌어온 원고 마감과 출판사 투고를 하면서(17화 참조) 사그라들었다. 그 뒤로는 어떻게 되었느냐고? 다시 침대로 기어들어갔다. 끊이지 않는 두통을 핑계로 하루 종일 게임을 하고, 유튜브나 보고 하면서 시간을 죽이는 생활로 돌아갔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죄책감'은 자연히 꺼진줄 알았던 우울감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괴로울 줄 알면서도 왜 다시 침대로 돌아간 걸까? 생각을 해보았다. 발단은 투고 원고의 피드백을 기다리는 시간 때문이었다. 원고를 보낸 후 9일 정도 지나서 회신이 왔다. 꼼꼼히 검토를 하다보니 두 달 정도 소요된다는 내용이었다. 내 마음 같아서는 빨리 빨리 피드백을 받고 수정해서 계약 여부를 판단하길 바랐다. 그래야 원고가 계약으로 가지 못한 결점을 보완하고, 다시 재투고를 하든, 다른 출판사에 도전을 하든 다음 스텝이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건 순전히 나의 바람일 뿐이다. 바삐 돌아가는 회사의 일 중에 투고는 우선순위가 떨어지는 업무일 테고, 그들의 시스템 안에서 가장 빠른 속도가 두 달이었으니까. 담당자님의 메일을 찬찬히 읽어보면서 나는 초조함을 내려놓기로 결심했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일에서 벗어난 일에 공연히 조급해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나는 왜 이 원고의 피드백에 매달렸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글쎄... 근 1년간 쏟아부은 매몰비용 때문이 아니었을까. 돈은 들지 않았지만 구상하고 쓰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고, 원고를 쓰고 엎고 계약이 틀어지며 받았던 스트레스를 빨리 보상받고 싶었던 마음은 아니었을까. 근데 그런 보상심리가 메일이 빨리온다고 해결되는 문젠가 하면 전혀 아니었다. 그 원고는 보내놓고, 결과와 상관없이 다음 원고를 준비하는 게 옳은 선택이었다.

정답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나는 선택하지 않았다. 그 마음은 아마도 '쉽고 빠르게 가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을 테다. '이것만 잘 되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안일한 마음으로 다음 단계는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 손을 내밀어 주겠지 하는 그런 희망사항을 꿈꿨다. 애석하게도 세상은 내가 타인에게 적절한 필요를 제공할 때 기회의 손을 내민다. 가만히 누워서 유튜브만 본다고 인생이 바뀌는 건 아닐 게다. 그걸 알면서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건 지금의 불편한 편안함에 내가 너무나 익숙해졌기 때문일 거다.


마음은 심란하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도 행동할 수는 있다. 지금의 상황을 바꾸고 다른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할 수 있다. 과거의 나는 '바꿔야겠다는' 의식은 없었지만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는 마음으로 살았다. 지금은? '아 몰라. 되겠지. 새해가 되면 나아지겠지. 입춘이 지나서 만세력이 바뀌면 달라지겠지. 구정이 지나면 나아지겠지. 명왕성이 역행을 멈추고 입궁하면 달라지겠지.' 같은 이 상태를 유지하고, 결정을 미래로 미루며 이 불편한 상태를 유예하려고 했다. 

왜? 이 불편함이 죽을 만큼 힘들다거나 밥 굶을 정도의 비참함을 주지 않으니까. 물론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면 자기계발서의 논리가 되어 '동기부여-노력-성공'으로 가는 논리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스스로에게 '너는 지금 죽을 만큼 힘드니? 그래서 움직일 힘이 전혀 없니?'라고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


어쩌면 나는 '우울증 방패에 숨어있고 싶던 건 아니었을까. 이 불편한 편안함을 유지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unsplash.com

이런 생각을 하면서 오늘 카페에서 책을 읽다가 한 구절을 발견했다. <결국 해내는 사람들의 원칙>의 저자 앨런 피즈는 회계사가 잘못을 숨긴 걸 뒤늦게 발견해 20년간 준비하던 프로젝트가 엎어지고, 200만 달러가 넘는 빚을 지는 상황에 처했고, 그로인해 2년여간 우울증을 앓았다. 자기비판과 부정적인 생각은 독감과 무기력증, 수면장애를 동반해 그를 바닥으로 내리꽂았다. 그런 그가 우울의 늪에서 빠져나온 계기가 있었다. 


"데드라인을 정해!"


그 꼴을 보다 못한 아내 바바라의 한 마디 때문이었다. 앨런은 그 한 마디에 '우울증에 데드라인을 정하는 게 된다고? 선택사항으로 골라도 된다고?' 하는 생각을 했다고. 그런데 생각해보니 못할 것도 없겠다는 판단이 들어 결심을 한다.


우울증에 내 스스로 날짜를 정해 데드라인을 찍고, 데드라인 이후에는 긍정적인 생각만 해야겠다고. 말이다.

나도 이 대목을 읽다가 충격 아닌 충격을 받았다. '아니. 이게 내 맘대로 컨트롤이 되는 거긴 한가? 근데 왜 이런 생각은 못해봤지?' 부정과 물음표가 동시에 머리를 가득 채웠다. 언제까지고 피드백 메일의 검토 결과만 기다릴 수는 없었기에, 이렇게 불편한 편안함에서 벗어나 충만함과 행복감을 찾고 싶었기에, 나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따라해보기로 했다.


2024년 1월 21일(일)까지만 우울해 하고,
22일부터는 긍정적인 생각으로만 내 일상을 채워가겠다.


노트에 우울 종결 선언(?)을 쓰고 나니 어쩐지 마음이 단단해지는 기분이었다. 자연히 행동 계획도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일단 집 밖으로 나가서 활동하자. 며칠 눈온다는 핑계로 미뤘던 밤산책도 재개하자. 분위기 환기를 위해 여행을 다녀오자. 다음 원고의 데드라인을 맞추기 위해 공모전에 투고하자(공모전에 투고하기 위한 글이 아니라, 내 원고 작성의 도구로 사용하기), 그냥 좋아하는 일을 매일 30분이상 하자.

움츠리는 동안 응축된 아이디어들이 쏟아져 나왔다. '나는 행동하고 싶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마음이 흩어지지 않도록 몇 가지 규칙을 세웠고, 결단을 내렸다. 

unsplash.com

규칙을 정한다는 건 '루틴'을 설정하는 과정이었다.


4시 반까지 달린 마감이후 내 생활패턴은 완전히 망가진 상태였다. 일단 시계를 다시 돌려 불면 증세를 돌이켜야했고, 걷기를 통해 최소한의 운동량을 확보해야 했다. 그리고 웃음이 많은 사람이자 유머러스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일단 이렇게 설정했다.


하나, 나는 9시에 기상해서 늦어도 11시에는 잠든다.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낮잠은 자지 않는다.
둘, 매일 7시반-8시에는 밤산책을 나선다. 시간을 정하진 않고 컨디션에 따라 30분-1시간30분.
셋, 낮 12시 전에는 카페에 나간다. 가서 책을 읽든 작업을 하든 하루에 한 번은 씻고 집밖으로 나간다.
넷, 일주일에 2편, 코미디 영화를 본다. 


나름 고심해서 적어보았지만 어쩐지 별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오히려 이 네 가지 루틴은 지킬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걷기와 카페가기는 비정기적이긴 하지만 계속 이어온 생활 패턴이긴 하다.) 내게 필요한 건 일상의 안정감과 다시 시작하기 위한 발판을 닦는 계기였다. 매일 이정도는 할 수 있지 뭐. 하는 정도로 시작해서 반복에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내가 되고 싶다. 드라마틱한 성장이나 성공 신화를 만들지는 못할 게다. 그래도 괜찮다. 마음이 조금씩 단단해지면서 우울증 방패 뒤에 쪼그라들었던 내가 한 발, 두 발 다시 사회로 걸어들어올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루틴을 오늘부터 바로 시작할 터지만 '변곡점'이 될만한 포인트를 주고 싶어 결단도 하나 내렸다. 바로 '2차 동해 글쓰기 캠프'다. 작년의 내가 그래도 글쓰기라는 업을 놓지는 말아야겠노라 다짐하게 된 계기였던(2~8화 참조) 그곳에서 리프레쉬를 하고, 글을 쓰다가 올 생각이다. 브랜-뉴 시작을 위해서 다시 출발해보자.

이 글이 우울한 상태로 쓰는 마지막 이야기가 되길 바란다.


(계속)



매거진의 이전글 17. '그냥 하고 싶어서'라는 깨달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