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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요마 Feb 08. 2024

잃어버린 당신의 기억을 찾으세요, <다찌마와 리>

<다찌마와 리>, 류승완,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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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runch.co.kr/@hakgome/579

1. 일천구백사십이 년 일본의 앞잡이를 츠으단 하는 다찌마와 리가 있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드아.

눈물 없는 순도 백퍼센트의 카-미디 영화가 무엇이 있을까 생각하다가 찾은 영화는 <다찌마와 리>였다. 기억 속에 임원희 배우의 마스크와 뻔뻔한 대사만 각인되었던 그 영화. 막상 다시 보니 나름대로 역사의식도(?), 미친 대사 구성도(?), 007 오마주까지도 취향이 잔뜩 들어간 종합 코미디 선물세트였다.


영화는 일천구백사십이 년 독립군 요원 다찌마와 리(임원희)가 친일 행각을 하는 마담 장(오지혜)을 추적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액자 속 그림인양 위장한채 마담 장이 금고의 물건을 꺼낼 때까지 기다렸다가 현장을 덮친 다찌마와 리. 한때 독립군 활동을 같이 하던 동지였지만, 친일파 다마네기와의 사랑에 눈이 멀어 변절을 한 그에게 자폭 알약을 건네며 이렇게 말한다.


*여기서부터 스포일러가 나옵니다. 원치 않는 분은 뒤로가기!.



마담 장: 난 그저 뜨거운 사랑을 택했을 뿐이야.
활활타는 불장난 말고, 파도를 막아서는 방파제 말고

다찌마와 리: 네게도 조금은 순정이라는 게 남아 있었나 보구나
하지만 조국과의 사랑을 배신한 넌 간통죄야

마담 장: 간통은 무슨 간통 혼인 신고도 안 했는데

다찌마와 리: 사실혼을 부정할 순 없어!


이 영화의 묘는 바로 쉴새 없이 터지는 복고풍의 한 방이 있는 대사들이다. 친일파 앞에서 간통죄에 사실혼이라니 각본을 쓴 류승완 감독의 미친 드립력이 초장부터 끝까지 유지된다. 그 매력을 더 살리는 건 씽크가 묘하게 어긋나는 후시녹음과 옛날 영화에서 볼법한 톤과 과장된 액션이다. 이번에 보면서 새로 찾은 재미는 '자막을 켜고 보기'다. 한국영화에 왠 자막이냐 싶을지 모르지만, 배우들의 연기와 더불어 대사에 최대한 몰입하기에는 읽으며 보는 편이 더 나았다. 특히 <다찌마와 리>는 자막버전으로 재개봉하면 분명 재평가를 받을 영화다.


어쨌거나, 임무에 성공하고 돌아온 그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진다. 바로 그가 사랑하던 요원 금연자(공효진)가 첩보 임무중 적에게 발각되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녀의 생사는 알 수가 없다고. 슬픔을 간직한채 그는  임무를 떠난다.


상하이로 기차를 타고 이동하는 중 그는 국경살쾡이(류승범)를 만난다. 소매치기를 하는 그를 잡아세우고는 이런 대화를 한다.


국경살쾡이: 정도가 지나쳐. 새로 나온 인내심 테스트인가?

다찌마와 리: 누군지는 몰라도 우리 중 하나는 지금 인내심을 발휘하고 있군.

국경살쾡이: 어허, 이런... 그런데 이를 어쩐다?
나란 사람 기억 속엔 인내심이란 가출한 지 오래야.

다찌마와 리: 그건 네 사정.

국경살쾡이: 아니, 점점! 깜깜한 놈.
이거, 달리는 기차 안에서 인간 사표를 쓰게 생겼구먼!

다찌마와 리: 어린놈이 세상을 짧게 살아서 그런가? 부도 수표를 남발하는 군.

국경살쾡이: 너 이 새끼, 뭐 하는 새끼야? 이 새끼가!
나 국경살쾡이도 못 알아보고!

다찌마와 리: 우리 사이에 통성명은 필요 없을 것 같은데?

국경살쾡이: 다... 당신은...


그렇다. 다찌마와 리는 얼굴만 보아도 모든 사람들이 알아보는 구국의 영웅, 정의의 사도였던 것이였던 것이였던 것이였다. 국경살쾡이는 납죽 업드려 그에게 사과를 하고, 문제를 해결한 그는 상하이역 앞에 도착하는데... 웬 일본 불량배들이 한 조선 여인을 괴롭히는 모습을 목격하고 정의감으로 그들 앞에 선다.


평소 익혀두었던 택견으로 엑스트라들(리쌍의 개리와 길도 나온다)을 처단하고, 조선 여인을 구해내는데... 알고보니 그들은 다찌마와 리의 실력을 테스트한 임시정부 요원들이었다. 여인의 이름은 마리(박시연). 그는 다찌마와 리와 함께 임무에 투입될 요원이었다. 두 사람은 상하이의 요원 진상 6호(안길강)에게 투입될 임무에 대해 브리핑을 받는다. 그것은 바로 '황금 불상 탈환'. 


황금 불상의 머리를 돌려 열면 그 안에 독립군의 명부가 적혀있기에 그것을 회수하는 것이 그들의 목표였다. 두 사람은 일단 비행기를 타고 제한 속도를 준수하며 미국의 프린스턴 대학의 남박사를 만나 신무기를 제공받는다. 그리고 다시 만주로 돌아가 황금 불상의 행방을 찾는다.


얘기만 들어도 이론상 한국, 중국, 미국을 오가는 엄청난 로케이션에 외국인들도 엄청 나와야 하는 각본처럼 보이지만 감독은 슬기롭게(?) 예산을 줄이며 B급의 매력을 한껏 폭발시킨다.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는 씬은 지도 위를 비행기가 날아가는 연출로, 미국은 한 대학교의 실내 연구소만, 만주는 중국풍의 시장과 벌판으로 대체한다. 언어는 또 어떠한가. 이 영화의 특징은 한국어, 일본어, 중국어, 영어까지 한국 사람이면 알아들을 수 있는 로컬라이징을 제공한다. 한 예로, 친일파 다마네기가 일본의 후까시, 야시와 나누는 대사를 보자.


다마네기: 곰방와. 아노... 오느레 카야시노 다이닛폰 제국노 젠느르에 야시로를 까고있는 조센진 독고다이놈의까라 비미르에 쯔끼다시들의 명단이노 적혀있는 황그므 부루상에 관해소 가야시노 하는 자리무니데스. 코노 불상그노 적혀있는 쯔끼다시들이노 세까이노 가끄지에서 하루밤을 아메면서 싸가지노 아리마셍까라 오까네르를 슈킹구 하고시마이 데스.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대일본 제국에 반항하는 조선인 독립군들의 비밀 명단이 적혀있는 황금 불상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자리입니다. 그 불상에 적혀 있는 사람들이 세계 각지에서 떠돌아다니면서 싸가지없게 자금을 모으고 있습니다.)


물론 자막은 뻔뻔하게도 괄호 안에 있는 것으로 나간다. 그렇지만 이유는 모르겠지만 굳이 자막을 보지 않아도 들리고, 파악되는 묘한 한본어를 구사한다. 그 자리에 함께 있던 왕서방의 중국어도 마찬가지다.


다마네기: 따거. 우리 불상 어찌 손에 놓나 하이거

왕서방: 우레 사람, 즈슈 정보쩨나 현찰 달라해. 그라먼 빠리빨리 차이지 이거


굳이 자막을 안들어도 알겠는 고급 언어유머를 영화 내내 국적을 가리지 않고 쏟아내는 통에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그리고 한 가지 잊었던 것을 떠올렸다.


2. 내가 잊고 있던 마이크로한 취향들


이 일본어-중국어 씬을 몇 번이나 돌려보면서 낄낄대다가 문득 잊고 있던 것을 떠올리게 되었다. 

아... 나 이런 코드를 좋아했었지

좀 더 구체적으로는 일본에 사는 서양권 출신 사람이 어색하게 일본어를 하는 것, 혹은 일본 사람이 어색하게 한국말을 하는 것 같은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다른 언어를 자기 방식으로 구사하는 것.을 나는 좋아했었다.


과거형으로 표현한 것은, 한 때는 이런게 좋다고 당당히 드러냈지만, 지금은 여러 이유로 굳이 말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왜 그런고 하면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테다. 그중에서 가장 큰 심리는 아무래도 튀고 싶지 않아서였지 않았을까.


청소년기에는 이런 힙스터 느낌이 나는 마이크로한 내 취향을 사랑했었다. 동방신기가 한참 잘 나갈 때도 NEXT와 인디밴드들의 노래를 고집했고, 친구들 다 보던 <꽃보다 남자>도 안 봤다. 친구들이 유치하다고 등돌리던 포켓몬스터와 짱구를 계속해서 좋아했고, <다찌마와 리> 같은 B급을 지향하는 어설픔과 유치함을 사랑했다. 

그런데, 대학에 가고 사회생활을 하면서부터는 그런 개성이나 나의 취향을 드러내는게 피곤해졌던 것 같다. 비주류 픽이다보니 이게 왜 좋은지 말하려면 설명이 필요했고, 공감을 기반하는 대화에서 멀어져 가는 게 그렇게 좋은 기분은 아니었기에 그냥 남들 좋아하는 거, 남들 잘 보는 거로 대충 내 취향을 숨기기 시작했다. 근데 처음에는 가면을 쓴 듯 바깥에서는 그렇게 말하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건은 간직해야지 다짐했던 마음도, 어느 순간부터 점차 희미해져갔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하지 않으면서, 나는 좋아하는 것들로부터 점차 멀어졌다. 그리고 종국에는 좋아하는 게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남들의 시선이 귀찮아서, 혹은 이상한 사람으로 보일까봐 두려워서 하나 둘 자리를 내어준 건 결국 나였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렇게 작은 것 하나 둘씩 나를 구성하는 어떤 것이더라도 포기해서는 안되었다. 다 내어주고, 다 잃어버리고, 다 사라진 후에야 내 안이 텅 비어버렸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게 좀 애닲았고, 뭐부터 시작할지 몰랐는데 뜻밖의 장면에서 내가 무얼 놓고있었구나 알게된 순간이었다.


이젠 말할 수 있다. 나 저런 거 좋아한다고. 얼마든지 설명해 줄 수 있다고. 그리고 그걸 이야기할 때 너무나 즐겁다고 말이다.



3. 우여곡절 끝엔 해피엔딩


영화의 세계관 안에선 적수가 없을 것 같던 다찌마와 리도 위기에 처한다. 마리와의 임무 도중 오토바이가 폭발하며 기억을 잃은 것.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왕서방의 마적단과 손을 잡은 국경살쾡이가 찾아와 집단 린치를 가하며 괴롭힌다. 그러나 그들에게 맞을 때 어렴풋이 정신이 돌아온 그는, 수련을 하면서 다시 찾아올 전투를 준비한다. 그리고 당당히 이겨낸다. 두 사람을 추궁해 황금 불상의 행방을 알아차리려는 순간! 다마네기가 나타나 왕서방과 국경살쾡이의 등에 칼을 꼽는다.


다시 임시정부 요원 진상 6호를 만난 다찌마와 리는 정보를 하나 듣는다. 친일파가 황금 불상을 스위스 알프스 은행에서 돈과 교환한다는 첩보. 그러나 다찌마와 리는 내부의 첩자가 있음을 알고 있었기에 진상 6호에 경계를 늦추지 않은채로 함께 스위스로 떠난다. 그렇게 도착한 스키장. 아니, 알프스에서 다마네기와의 추격전을 벌인 다찌마와 리는 결국 불상을 탈환한다. 그렇지만, 충격적인 내부 첩자의 진실을 알게 되는데...


결말의 반전은 잠시 내려두고, 명대사로 내용 소개는 마무리한다.


???: 이제 와 후회해도 아무 소용 없겠죠?
다찌마와 리: 못난 소리. 이제야 내 마음이 재건축되어 마음속에 새로운 세입자를 받을 여유가 생겼건만...


코미디 영화를 보는 즐거움은 '해피엔딩'에 있는 것 같다. 중간에 기억을 잃든, 소중한 사람을 잃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피엔딩을 향해 나아가는 것. 행복한 미래를 향해 오늘을 걸어가는 것. 그런 작은 희망이 보는 사람에게도 긍정의 힘을 심어주는 것 같다.


기억을 잃었다가 되찾은 다찌마와 리 처럼, 잃어버린 내 취향과 영역이 있다면 회복해보자. 다찌마와 리의 그윽한 눈빛 속에서 당신만의 진실을 찾을 수 있기를.






다음 영화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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