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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요마 Feb 15. 2024

찌질해도 귀엽잖아, <달콤, 살벌한 연인>

<달콤, 살벌한 연인>, 손재곤,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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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runch.co.kr/@hakgome/581


1. 슴슴한 2000년대 영화의 매력

이번 주에 고른 영화는 <달콤, 살벌한 연인>이다. 스릴러+로맨스코미디 조합이 기대되어 '언젠간 봐야지 리스트'의 최상단에 있던 작품이다. 일단 후기부터 말하면, 요새 나오는 콘텐츠들이 워낙에 자극이 강해서 그런가 '스릴러'라고 붙이기엔 많이 슴슴한 맛이었다. 그렇지만 요 몇 주 2000년대 중반 영화를 보면서 느끼는 이런 슴슴한 맛이 참 좋다.

특히 말장난 가득한 대사들이나 캐릭터들이 보여주는 귀여운 매력, 그리고 따뜻한 시선이 참 좋은데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도파민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게 이런 소소한 재미와 행복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단연 주연 배우 둘이다. 주인공 미나(최강희)와 대우(박용우)의 너무나 사랑스러운, 그러나 스산한 연기가 정말인지 좋았다.



*여기서부터 스포일러가 나옵니다. 원치 않는 분은 뒤로가기!

대우는 대학에서 영문학 시간강사로 일을 한다. 30대가 되도록 여자 한 번 사귀어본 적 없었고, 발작 버튼에 가까울 정도로 싫어하는 건 교양 없이 별자리나 혈액형을 운운하는 것이다. 정신과 선생님을 앞에 두고도 요즘 여자들이 어쩌니 저쩌니 하며 방어적이고 재수없는 태도를 일관하다가 얼마 후 방문해서는 솔직한 심경을 말한다.


이제 정말 연애라는 걸 좀 해보고 싶은데 뭘 어떻게 해야될지 모르겠어요.
맘에 드는 사람이 있어도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되는 건지...
잘 모르겠고... 망신당할까 봐 입도 떨어지지 않고요...
제발 저 좀 도와주세요 선생님...

그러나 돌아오는 건 '우울증' 진단 뿐. 그는 여행사를 하는 친구 성식과 술 한 잔을 하다가 녀석에게 조언을 듣는다. 어떤 여자든 "저랑 영화보러 가지 않을래요?" 딱 하면 거절할 사람 없다고. 그리고 그날 저녁 오피스텔 엘리베이터에서 본의 아니게(?) "저랑 영화보러 가지 않을래요?"라는 말을 당해 버린다(영화를 보면 이해할 테다)


상대는 같은 오피스텔에 이사 온 미나였다. 대우가 이삿짐인 에어컨을 옮기던 기사님을 도와주다가 우연히 들어갔던 집에 이사온 여자였다. 그때는 혼자였는데, 영화보자는 말을 하고 나서 집에서 나오는 룸메이트 같은 여자가 있었다. 어색한 대치가 벌어지고, 룸메이트 장미(조은지)가 대전에 간다며 사라지자 미나는 대우의 데이트 신청을 받아준다.


우여곡절 끝에(?) 성사된 영화 약속. 두 사람은 영화를 보고 식당에서 저녁을 먹는데... 이런 자리가 처음인 대우는 뚝딱거리다 못해 자기가 생각했던 망상 속 대사 흐름을 억지로 이어가보려다가 첫 데이트를 완전히 망쳐버린다. 그렇지만 이런 자리 자체에 의의를 가졌는지 너무나 해맑게 "오늘 즐거웠어요."라고 말하고, 성식의 조언대로 반말을 하는데 웬걸 미나의 가뜩에다 큰 눈이 더 커져서 노려본다. 어따대고 반말이냐. 나는 하나도 안 즐거웠다고. 정색을 하고 집으로 들어가버린다.


그렇게 끝인가 싶었지만... 미나가 화장실에 간 사이에 가방에 넣어둔 목걸이와 편지, 이내 벨을 누르고 문 앞에서서 자신이 치려고 했다가 실패한 개그들에 대해서 따지듯 설명하는 대우의 모습을 보고 미나는 키스를 해준다. 꽃 한 송이면 충분하다며 웃는 그녀를 보고 대우는 다음날부터 '꽃만' 사다주며 매일 그를 보러간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처럼 꽃을 사들고 벨을 누르려는데... 어쩐지 그냥 문을 열고 싶던 대우는 문을 열고 미나의 집에 들어간다. 그리고 그가 목격한 것은... 홀딱 벗고 있는 한 남자. 상처받은 대우는 뒤따라 나오는 미나를 뒤로 하고 집으로 와버린다.


변명하고 싶지 않다며 대우의 집에 찾아온 미나는 전 남자친구고, 저렇게 찾아온 거다. 잘 정리하겠다며 돌직구로 얘기하나. 찌질하기 그지 없는 대우는 비아냥거리면서 매몰차게 그녀를 돌려보낸다. 그러나 수업을 할 때도, 볼링을 할 때도 미나가 생각난다. 택시를 타고 집에 가던 어느 날 거리에 있는 그녀를 본 그는 후다닥 내려 사과를 한다. 그리고 정리될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말한다. "내가 왜 좋아요?"라고 묻는 미나에게 대우는 이렇게 답한다.


왜냐면 미나씨는...
예쁘고 우아하고, 지적이고, 상냥하니까요.


그말에 내심 기분이 좋아진 미나. 두 사람은 키스를 하면서 재결합(?)을 한다. 그런데 대우가 한 가지 모르는 것이 있었다. 미나는 대우가 생각하는 것 만큼 우아하고, 지적이고, 상냥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 그녀의 집에는 대우가 알몸을 보았던 그 남자가 있었다. 그것도 가슴에 칼이 꼽혀 죽은 상태로 말이다.


대전에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두 사람은 연고도 없는 서울에 이사를 왔을까. 의심이 쌓이는 와중에, 장미는 대학 강사와 사귀는 미나가 왠지 못마땅하다. 남자를 보낸 건 아마도 룸메이트인 장미였다. 나중에 나오지만, '그냥 미나가 잘 되는 꼴이 보기 싫어서.'였다고. 짐을 들고 이사한 장미의 옷장엔 여전히 시신이 있었기에 얼른 치우라는 성화를 들은 미나는 김치냉장고에 그것을 넣는다. 그러나 손이 자꾸 삐져나와 친절하게 토막을 내어서 집어넣어준다.


그러던 와중에 장미의 남자친구라는 양아치 계동(정경호)이 미나가 유산을 상속받는다는 소식을 듣고 서울로 올라온다. 뭐 좀 뜯어먹을 게 없나해서 온 것. 처음엔 괜찮았다. 같이 김치냉장고 속 시신도 야산에 묻어주고, 돈만 챙기면 떠날 것처럼 건들거리며(?) 그 집에 잘 있었다. 그러나 미나와 이런저런 이유로 대판 싸운 대우가 그 집에 오면서, 본인 피셜 싸가지 없는 장미가 김치 냉장고에 뭐가있을까~ 하면서 의심할만한 소리를 하면서 분위기는 급격히 바뀌게 된다.


눈치라곤 전혀 없는 대우가 자신의 집에 김치를 가지고 오는 사이에 계동은 입막음을 위해 죽여야겠다며 칼을 들었고, 미나가 말리다가 목이 베인 그는 눈이 돌아 미나를 찌르려 하나... 상대는 이미 유경험자. 또 한 분이 김치냉장고 속에 들어가게 된다.


미나는 대우가 바랐던 우아하고 지적이고 상냥과는 대척점인 속된 말로 상스러운 세계의 사람이었다. 대전에 내려가 서류처리를 하고, 계동을 묻고 돌아온 미나의 집 앞에는 대우가 있었다. 싸늘하게 식어버린 마음에 쳐다도 보지 않고 집에 들어가는 그를 붙잡지도 못한 대우는 문 앞에 앉아서 하소연 한다.

나 사실 출장갈 때 책 몇 권 들고 가요.
일 끝나고 숙소에서 책 읽을 때 가장 편했거든요?
근데 이번엔 도저히 집중이 안 되더라고, 왜냐!
여자친구 있으니까!
통화해서! 보고 싶다고, 키스하고 싶다고 말하고 싶고!
다음에 꼭 같이 가자고 말하고 싶은데 그럴 수 없으니까!

그러면서 화해, 아니 사과를 하며 몸과 마음이 힘들다고 말하며 문을 열어주는 미나를 안는다.

그렇게 다시 행복한 생활이 시작하나 싶었지만... 그녀의 집에서 하룻밤 묵고 아침 식사를 준비하던 그는 우연히 김치냉장고에서 그것을 발견한다. 바로... 사람의 손가락.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녀 지갑의 신분증을 본다. 적혀있는 이름은 이미자. 그녀는 도대체 뭐하는 사람인걸까... 대우의 마음에는 불신의 싹이 돋아난다. 두 사람은 결국 잘 이어질 수 있을까. 결말은 직접 보시기를...!



2. 딱 1명만 죽였으면 내가 이해해 보려고 그랬는데!

내가 정말 좋아요? 대우씨가 바라는 그런 사람 아닌데도?
나는 지금 이대로의 미나씨가 좋아요. 당신이 과거에 무슨 일을 했건 상관없어요.
정말요? 정말 내 과거는 상관없는 거죠?
그럼요. 그럼요. 그럼요. 사람만 안 죽였으면 돼.
네?


농담처럼 던진 밀어 속에 대우만 모르는 이야기가 있었다. 모든 것을 다 알고 나서도 우리의 찌질한 대우는 한결 같다. 미나가 이태리로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보러가서는 여전히 마음에도 없는 비아냥과 툴툴거림으로 일관한다. 굿바이 키스를 마치고 엘리베이터에서 그는 오열하고 만다. 너무 사랑하지만, 자신이 감당할 수 없음을 알기에 놓아버릴 수밖에 없는 아픔을 귀여운 찌질함(?)으로 소화한다.


미나의 표정도 압권이다. 천진해보이고, 순수해보이던 그 눈빛이 사람을 죽인 후로는 어딘가 스산하게 다가오다가 대우의 앞에 서면 다시 맑아진다. 자신을 위해 함께 이태리로 떠나자고 말할 배포가 없는 남자지만, 신고하지 않고 떠나보내는 그를 보며 말없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그또한 진심으로 대우를 대했구나. 함께 가자는 말도 진심이었구나 싶더라.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건 다 내어줄 수 있다는 것. 다 품어줄 수 있다는 것. 드라마나 영화가 그리는 낭만엔딩의 결과는 사뭇 다른, 찌질엔딩이었지만 그래서 더 대우와 미나에게 몰입할 수 있던 이야기였다. 배우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고, 2시간 동안 몰입해서 보았던 영화.





다음 영화 예고


일이 점점 커지네!



*개인 사정으로 다음 편은 2/29에 업로드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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