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요마 Feb 04. 2017

4. 그 놈의 붕어빵(4)

Ssm 매일 한 장 - 초조함, 숫자

* 어플 '씀'의 제시어로 소설을 이어 써보려합니다.

* 2월 3일 제시어는 '초조함'과 '숫자'

*

  나는 전화를 끊고 소파에 집어던졌다. 이 피더슨 재우는 지금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덕에 나조차 헷갈리기 시작했다. 치미는 화를 누르며 상황 정리를 다시 해보았다.

  이 피더슨 재우가 어젯밤에 집에 찾아왔다. 나는 문을 열어주었고 그는 빙글빙글 웃으면서 대뜸 나에게 붕어빵 봉투를 건넸다. 그리고 며칠 후에 찾아가겠다는 말을 하고 바로 떠났다. 나는 그 붕어빵을 냉동실에 던져놨고 오늘 전화를 했고 지금은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그는 또 붕어빵 봉지를 들고 집 앞에 있다.


"세쟌 부. 내가 잘못했어."


  똑똑똑 소리와 함께 그의 목소리가 문밖에서 들린다. 나는 아무 일도 없는 듯이 소파에 앉는다. 푸스스 한숨을 쉬는 듯한 소리를 내며 내가 들어간 공간만큼 푹 꺼진다. 똑똑똑 소리는 그의 초조함과 비례하는지 점차 빠르고 경박스럽게 울린다. 조금 무섭기까지 하다.

  그러나 나는 문을 열어주지 않을 생각이다. 울며불며 찌질하게 무릎이라도 꿇을지라도. 내가 아는 그는 내게 해코지를 할 인물도 아니지만 제 자존심을 꺾을 사람도 아니니까.


"세쟌 부. 나 춥다." "당신이 좋아하는 붕어빵 사 왔어. 나와봐." "얼굴 한 번만 보자. 제발. 얘기 좀 하자."


  그는 질기게도 문 앞에서 말을 쏟아냈다. 정말로 내가 문을 열기 전까지 안 갈 생각인 것처럼. 나는 알고 있다. 문을 열지 않는 편이 더 안전하다는 것을.

  그가 나를 해한 적은 없었다. 외려 지켜주겠다는 말은 왕왕했다. 이 피더슨 재우를 믿지 못해 문을 열지 않는 것이 아니다. 얼굴을 보고 싶지 않을 정도로 노여운 것도 아니다. 다만. 다만 열어선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이렇게 말하면 그가 서운하려나.

  문을 두드리는 소리도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도 점차 잦아들었다. 그도 지쳤는지 아니면 아주 가버린 건지 조용하다. 핸드폰을 집어 들고 괜히 인터넷 뉴스를 이것저것 누른다. 미국 대통령이 무슨 짓을 하든 여배우 A가 공연을 하다가 실신을 했든 내일 날씨가 영하 육도든 관심이 있어서 누르는 건 아니다. 아주 가버린 걸까. 무슨 생각을 할까. 설마 무릎이라도 꿇고 있는 걸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어 손만 바삐 움직일 뿐이다.

  문득 내가 뭐라고 그를 저렇게 비참하게 만드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화, 좋다. 이해, 좋다. 얼굴 보면서 잘 이야기해서 풀면 좋겠지만 과연 대화가 될까?라는 질문에는 물음표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으로 간다.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는다. 아직 있으려나, 하며 문에 달린 작은 구멍에 한 눈을 질끈 감고 가까이 간다. 동그랗게 확대된 문 앞 풍경에 그가 있긴 했다. 다만 그는 문 앞에 쪼그려 앉아서 붕어빵을 해결하고 있었다.

  냉동실에 있는 슈크림 붕어빵을 꺼냈다. 그리고 걸쇠를 걸고 문을 열었다. 좁은 틈으로 붕어빵을 입에 문 그가 놀란 눈으로 쳐다본다. 나는 "배고플 텐데 많이 해결하세요."라고 말하고 깡깡 언 붕어빵이 든 봉투를 밖에다 던져버렸다. 문을 닫으려는데 턱 하고 그의 손이 들어온다.

 

**

"잠깐만 얘기 좀 하자."

"뭐 하는 거야?"

"얼굴 보고 싶어서."


  세쟌 부는 당황한 것 같았다. 마음 약한 그녀가 내 손을 보고도 문을 닫을까 싶어서 벌인 일이었다.


"손 빼. 다쳐."

"나랑 얘기할 때까진 안 뺄 거야. 절대."

"이게 무슨 짓이야."

"무슨 짓이긴. 얼굴을 안 보여주는데."

"보고 싶지 않아."


  그녀는 고개를 홱 돌린다. 이런 식으로 대화가 흘러가면 결과는 빤했다. 손이 짤리고 119 부르든가. 손은 멀쩡한데 112 부르든가. 남들이 보기에도 혼자 사는 여자 집 현관에 손을 집어넣고 있으면 충분히 오해를 살 수 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오른손은 아니, 정확히 말하면 손가락은 문틈에 넣어둔 채로 남은 손으로 열기가 식어 젖어버린 하얀 붕어빵 봉투를 문틈으로 집어넣었다.


"먹어보니까 아직 따듯하대."

"뭐하는 짓인데 도대체."

"화 풀라고. 니가 좋아하는 팥으로 사 왔으니까."


  그녀는 내 얘기를 듣기만 하다가 좁은 문틈으로 싹 째려보면서 말했다. 약간 눈물이 고여있는 것 같았다.


"내가 우습냐?"

"무슨 소리야. 너 우냐? 왜 그래 갑자기."

"갑자기?"

"아니 그게..."

"붕어빵을 왜 사 오는 건데? 어디 붕어빵 몇 개 던져주면 문 열어줄 것 같아서?"

"말을 그렇게 하냐. 나는 그냥 니가 좋아하길래."

"그럼 어제는 뭔데? 지금 니가 하는 건 또 무슨 짓이고. 다 받으니까 그렇게 흐퍼보이디?"

"뭔 소리하는 거야. 어제라니."


  그녀는 내 뒤에 덩그러니 구르고 있는 밀가루 생선 대가리를 가리킨다.


"저건 뭔데."

"뭐긴 니가 며칠 후에 찾아간다고 던져놓은 거지."

"무슨 소리야. 내가 저걸 왜 사."

"어제 다짜고짜 찾아와서 던져놓고 갔잖아."

"난 그런 적이 없어. 맹세코. 진짜야."

"시답잖은 장난 할 거면 꺼져. 경찰 부를 거야."

"아니. 정말이야. 어제 친구들이랑 술 한잔하고 들어가 잤어. 페이스북에다가 올려놨잖아. 사진까지."

"그럼 술 쳐 먹고 붕어빵 던져놓고 갔다고?"

"나참. 정말 얌전히 들어가 잤어. 엄마 걸고."

"엄마는 왜 팔아."

"믿어줘. 제발."

"어제는 그래. 니가 아니라 치자. 그렇게 치자고. 그럼 오늘은 왜 온 건데."

"내가 잘못한 게 있는 것 같아서."

"뭘 잘못했는데?"

"내가 알 거라며. 잘 모르겠어서 왔지."

"니가 한 일을 내가 설명해줘야 해?"

"뭐. 하기 싫음 안 해도 돼. 내가 잘못한 것 같으니까."

"뭘 잘못했는데."

"뭐라도 잘못했겠지."

"그게 문제야."

"그런가."


   세쟌 부는 끝까지 문을 열어주지는 않았다. 다만 좁은 틈으로 자신에게 있었던 '그놈의 붕어빵' 이야기를 해줬다. 나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 어떤 일이 벌어졌다. 어제의 일은 확실하게 기억한다. 같은 방향인 철용과 택시를 탔고 내가 먼저 내리면서 미터기의 숫자를 보았다. 10810원. 할증이 붙어 지저분하게 끝나는 다섯 숫자를 기억하는 건 우리 집이 810호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앞자리가 이만 원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나는 잘 가라며 창을 내리고 손을 흔드는 철용의 자리에 만 원짜리를 던져놓고 아파트로 들어왔다.

  그다음에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복도를 지나 집으로 들어가 옷만 대충 벗어놓고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알람을 듣고 깼고.


"몽유병이나 주사일지도 몰라."


  세잔 부는 미간을 짜푸리며 내게 말했다.


"근데 이것 좀 열어주면 안 돼?"

"응."




작가의 이전글 3. 그놈의 붕어빵(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