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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학나경 Oct 06. 2022

스스로를 구원하고 싶은 정동현

학나경 인터뷰 #15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드라마 <안나>는 수지의 이 대사로 시작한다. “사람은 자신만 보는 일기장에도 거짓말을 써요.” 일기를 쓰면서도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했던 정동현에게 이 인터뷰가 좋은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동현과 대화하며, 꾸미지 않은 날것을 담고자 했다.

작성자 김지연

김지연 요즘 하는 생각은 무엇인가.

정동현 돈, 취업 등의 현실적인 고민들, 그리고 어떻게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가’. 내가 오랫동안 상담을 받고 있는데, 항상 상담의 결론은 이렇다. 나를 구원할 수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 자신이라는 것이다. 나는 항상 나를 구원해 줄 사람을 찾지만, 사실 그런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김지연 맞다. 나도 그걸 알면서도, 남에게 빨대를 콕 꽂고 쪽쪽 빨아 먹고 싶다. 남에게 의존하고 기생하고 싶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누가 나를 ‘추앙’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매사를 삐딱하게 살아서 그런지, 정작 상담 선생님은 럽욜셀프(love yourself)를 하고 계신지 궁금하다.

정동현 그래서 물어본 적이 있다. 선생님도 매일 럽욜셀프하면서 살 수는 없지만, 그래도 하루를 살아나갈 적당한 힘은 잃지 않는다고 하셨다.

김지연 만약 내일이 기대되지 않으면 어떡하나.

정동현 그게 내가 계속 음악을 듣는 이유이기도 하다. 왜냐면, 이 대자본주의 팝컬쳐 시대에는 매일매일 신곡이 나온다. 케이팝 가수들은 맨날 컴백하고, 맨날 컴백 티저를 낸다. 매일매일 소비할 게 있고, 누가 언제 컴백을 한다고 기사가 나면 또 다음 주까지 살아갈 수 있다. 내가 저거 듣고 죽어야 돼, 하면서.

김지연 원래 오타쿠는 자살 안 한다고 한다. 다음 주에 나오는 애니던 뭐던 봐야 하니까. 그렇게 생명 연장 수단을 찾는 게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나도 그래서 작년에 야구를 보기 시작했다. 인생이 심심해서 시작했는데, 야구는 매일매일 하고, 매년 하니까 죽을 수가 없다. 그리고 스포츠는 오늘의 경기가 져도 내일의 경기가 있고, 다음을 기대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런 기제가 삶을 살아가는 데에 큰 동력이 된다.


김지연 디제잉을 취미로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정동현 같이 3년 전에 ‘슬픔의 케이팝 파티’를 간 이후로, 공연을 계속 보러 다녔다. 그러다가, 어쩌다가 기회가 되어서 공연 SNS 보조를 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까, 디제이가 공연을 하고 좋은 반응을 얻는 게 부러웠다. 나도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조금씩 배우고, 무대에도 서게 되었다.


김지연 어떻게 보면 백스테이지에서부터 무대로 나간 거다.

정동현 맞다. 내가 소개 문구에도, 서당개 3년 만에 드디어 풍월을 읊게 되었다고 썼다.

김지연 나는 네가 관심을 받고 주목 받는 걸 싫어하는 성격인 줄 알았다. 그래서 공연을 한다고 했을 때 되게 의외였다.

정동현 아니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나를 반겼으면 좋겠다. 그런데 나는 나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서, 공연 제의를 받았을 때 고민을 많이 했다. 인정욕이 있어서 그렇다.

김지연 나는 그게 나르시시즘의 일종이라고 생각한다. 왜곡된 자기애의 대표적인 사례다.

정동현 맞다. 그런데 막상 공연을 하다 보니까, 내가 이걸 하고 있는 것 자체에 집중하게 된다. 다른 사람이 보고, 좋아해주고 하는 게 더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순간에 집중하게 된다. 내가 사실은 혼자서 잘 놀지 못하는 사람이다. 혼자서 보내는 시간이 굉장히 많은데, 그게 내가 혼자 보내고 싶어서 보내는 게 아니다. 나는 심심하면 나와 놀아줄 다른 사람을 찾는데, 사실 그건 한계가 있다. 물론 (혼자서) 게임도 하고 노래도 듣고 하지만, 그건 ‘취미’와는 또 다른 영역이다. (그런 의미에서) 디제잉을 찾은 게 좋다. 혼자서도 즐길 수 있는 취미를 찾은 느낌이다.


김지연 디제잉을 시작하면서 어려움은 없었나.

정동현 디제잉을 하면서도, 또래 사람들과 비교를 하게 된다. 굉장히 잘하는 사람들도 있고, 반응이 좋은 사람들도 많다. 나도 그런 반응을 얻고 싶어서 (괴로울 때도 있다). 그런게 내 스스로에게 집중을 하고 있지 못하다는 증거 중에 하나다. 스스로를 구원하지 못하는 것이다. 나 좋자고 나 재밌자고 하는 건데, 취미는 취미로 받아들여야 하는데.

김지연 소위 ‘업’처럼 변질이 되는 순간이 있는 것 같다. 너의 행복을 위해서 하는 건데.

정동현 맞다. 주객이 전도된다. 결국 똑같은 얘기인데, 내가 집중을 해서 내가 즐거워해야만 다른 사람들도 즐거울 수 있다.

김지연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해야 타인과의 관계도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 같다.

정동현 맞다. 남이 아니라, 내 자신에 집중할 수 있는 모습을 보이는 사람을 좋아한다. 의존적인 사람이 아니라. 물론, 20대 내내 그게 되지 않아서 고민했다.


김지연 학나경 프로젝트에 공감하는 이유는.

정동현 학나경으로부터 자유롭게 사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특히, 요즘 나의 나이도 굉장히 신경이 쓰인다. 이 나이인데, 아직까지 졸업을 못하고 학교를 다니고 있다. 학나경과 같은 정량적인 기준이 정말 싫지만 또 편리하다. 외모나 돈도 학력, 나이, 경력과 같은 범주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한 사람을 이해하는 데에 그런 조건이 도움이 많이 되긴 한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김지연 비평을 하면 잘할 것 같다. 일기 등의 글도 쓰는가.

정동현 안 쓴다. 예전 일기를 보면, 내가 정말 이렇게 느꼈던 게 맞나, 싶을 때가 있다.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야만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내 스스로에 집중을 못하니까, 다른 사람을 시기하는 것도 심하다.

김지연 누구나 그런 것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는 힘들다. 지금은 너 스스로를 구원하지 못할 수 있지만, 결국에는 너의 삶이 스스로를 구원하는 방향으로 이끌 거라고 믿는다. 그래서 여러가지 경험을 하고 있는 중인 것 같아 보인다. 자연스럽게 너의 모든 선택의 기준이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되지 않을까.

학나경 프로젝트를 진행하면 할수록, ‘아무말’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인터뷰이가 스치듯이 하는 ‘아무말’은, 반짝반짝 가공하고 윤기나게 닦아서 뱉은 말보다 더욱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을 때가 많다. 말을 골라서 예쁘게 적어놓은 일기보다, 이 인터뷰가 인터뷰이에 대한 많은 사실을 알려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정동현이 나중에 이 인터뷰를 읽었을 때, 그때의 나는 이런 생각을 했었구나, 하게 된다면 그걸로 만족한다.

작성자 김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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