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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학나경 Oct 06. 2022

모순을 좁혀가는 권재영

학나경 인터뷰 #16

모든 사람은 모순적이다. 표면적으로 모순적이지 않은 것만 같아 보이는 사람도, 사소한 모순을 안고 살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자신이 모순적이라고 인지하지 못하는 것은 모순적이다. 권재영은 자신 내부의 모순을 모른 척 하지 않는다. 오히려 모순을 상쇄하려 하는 사람에 가깝다.

권재영 내가 보여지는 건 다 스무 살 때 만들어 진 것이다. 그때는 하루라도 안 놀면 안 될 것처럼, 노력해서 놀았다. 하루라도 안 놀고 혼자 있으면 너무 우울했다. 내가 스무 살 끝나고 사라졌으니까, 그때의 나로 기억하는 게 당연하다.

김지연 누가 그런 말을 했다. 소셜 미디어 속의 자신은 늙지 않는다고. 보통 소셜 미디어에는 보통 자신의 좋은 모습만 남긴다. 그래서 그걸로 사람들이 평생 기억을 한다는 게 되게 재밌는 것 같다. 지금의 너는 20살 때의 너와 완전히 다를 것이다.

권재영 나는 노력형 관계주의자다. 명절 때나 누구 생일 때마다 연락을 돌리는 것도, 불안해서 그런다. 나는 항상 관계를 회복하고 유지하는 힘이 약하다. 그래서 불편하지만 연락을 챙기려고 노력하는 거다. 누가 나한테 연락할 때 그 앞에 고민이나 의심같은 게 없었으면 좋겠다.

김지연 그런 경우에, 많은 사람들은 포장을 한다. “나는 그냥 사람이 좋아서 연락을 해”라던가. 그런데 나는 너처럼 포장을 안 하려는 것 자체가 일단 자신의 내면을 돌아볼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 같아서 좋아한다.

권재영의 핸드폰 메모

김지연 자신이 바라는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 하루하루 사소하게 실천하는 게 있다면.

권재영 그냥 덜 불행해지고 싶어서, 책에서 읽은 걸 따라하는 게 있다. 불행한 사람은 나쁜 일을 개인성, 영속성, 보편성에 기초해서 생각한다고 했다. 내가 잘못해서 이렇게 된 거다, 이 불행은 영원히 간다, 이런 일은 자주 있다, 라며. 행복한 사람들은 좋은 일은 내가 잘해서 일어나고, 나는 항상 너희들보다 잘났고, 나에게는 항상 좋은 일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이 말을 실천하려고 하고 있다.)

김지연 딱 맞는 짤이 생각났다. “자아비판이 없는 집. 남탓을 많이 하자.“ 이걸로 프로필 사진을 했으면 좋겠다. 회사에서도 오래 살아남는 방법이, 내가 잘못을 했을 때는 저 사람이 저렇게 말했으니까 어쩔수 없는거 아니야? 하고 생각해야 한다. 아니면 나한테 이 정도 돈밖에 안 주는데 내가 완벽하게 하기를 바라는 게 도둑놈 심보다,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김지연 직업이 자신의 삶에서 차지하는 의미는.

권재영 직업을 갖게 되고 나서, 그간 무직이었을 때의 우울함이 상당 부분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무직 상태에서는 자기 효능감을 느끼기가 힘들더라. 어쩔 수가 없다. 그런 면에서는 직업을 사랑한다. 물론 일하다 보면 열 받는 일도 있지만 (상쇄가 가능하다).


김지연 표면적으로 동등해 보이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고 하자. 그렇다면 선택을 하는 기준은.

권재영 멋없긴 한데, 나는 그냥 아무거나 선택한다. 왜냐면, 나는 어떤 것을 선택해도 후회한다. 후회하지 않은 적이 없다. 객관적인 조건이 더 뛰어났기 때문에 이것을 선택했더라도, 나는 후회할 것이다. 나는 짬뽕 먹을까, 짜장면 먹을까 고민하다가 짬짜면 시켜도 후회할 사람이다.

김지연 나와도 비슷하다. 내가 진짜 엄청나게 많이 고민해서 선택한 것이 후회를 낳지 않으리란 법은 없으니까, 나는 그냥 그때의 감정에 따른 선택을 한다.

김지연 회사 면접에서는 말하지 못하는 자신의 장단점이 있다면.

권재영 장점은 없다. 단점은 겁이 너무 많다는 것.

김지연 그게 장점이 될 수도 있다. 뭐든지 특징은 양면적인 것 같다. 고민하고 나서 실행을 하는 것. 겁이 많은 게 도움이 될 때도 있다. 보수적으로 뭔가를 해야 되는 때가 있다. 리스크를 최대한 파악해야 할 때 라던가.


김지연 글을 쓰는 자아의 필명을 ‘칠청월’로 한 이유는.

권재영 중학교 때 즈음, 아마 짝사랑을 하고 힘들었을 시기에 어떤 꿈을 꿨다. 꿈에서 별똥별 축제를 갔다. 넓은 동산에서 사람들이 모여서 하늘을 보고 있었다. 하늘에는 표현하기 어려운 밝은 빛이 가운데에 하나 있고, 그 주위를 각각 다른 색깔의 7개의 별이 둘러싸고 있었다. 그런데 내 옆에서 어떤 노인이, “저 광휘를 도는 7개의 별 중에 가장 빛나는 푸른 별이 바로 너란다.”라고 했다. (그래서 그 꿈에서 착안해서 필명을 만들었다.)

김지연 글쓰기 계정에 내건 문구, ‘나의 감정을 마주보는 시를 씁니다’는 무슨 의미인가.

권재영 나는 나의 ‘자기확신없음’을 알아차리고 싶었다. 뭐든 말이나 글로 나오면 존재하는 게 된다. 우울이라는 단어 안에도 사실은 그 안에 뭐가 굉장히 많은 게 있다. 그것을 (글로써) 섬세하게 골라내고 싶었다.

김지연 내가 딱 이 문구를 봤을 때 든 느낌은, ‘마주본다’라는 말이 거울로 본다는 뜻 같았다. 우리가 거울로 자신의 모습을 볼 때는 실재를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다. 반사된 나 자신을 보게 된다. 그래서 나는 네가 거울로 너 자신을 마주 보는 것처럼, 네가 너의 우울함을 글로써 다듬어서 내놓겠다, 라는 뜻이라고 읽었다.


김지연 앞서 말한 ‘자기확신없음’은 무슨 의미인가.

권재영 나는 사실, 살면서 뭔가를 진심으로 원해 본 적이 없다. 심지어는 내가 원하는 것을 모르니까, 나의 감정도 잘 모르겠다. 항상 나의 감정을 확신할 수 없다. 예를 들어서, 내가 정말 화를 내야만 정상적인 상황인데, 이상하게 나는 화가 안 날 때가 있다. 정말 편한 관계에서조차 그렇다.행복한 것도 잘 못 느끼고 있다. 뭔가가 엄청 막 신나지도 않는다. 페스티벌에서 막 뛰면서 소리 지르는 사람을 보면 신기하다.

김지연 감정을 의심을 하니까, 표현도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확신이 없으니까.

권재영 내 감정을 알려주는 손목시계를 차고 다니고 싶다. 그래서 나는 내 감정을 마주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게 나의 꿈이다. 표현을 잘하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고, 알 수만 있었으면 좋겠다.

김지연 그게 표현의 첫걸음이다.

권재영 내가 화가 안 나는데, 누가 봐도 화를 내야 되는 상황에는 억지로 화를 낼 때도 있다. 그런데 그 뒤에는, 내가 느끼는 감정이 ‘화’가 아니라 ‘실망’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분명히 내가 가지고 있는 감정이 나쁜 감정인데, 이게 (정확히) 뭔지 모르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몰랐던 거다.

김지연 나는 그게 언어를 찾아가는 과정이 아닌가 생각을 한다. ‘실망’이라는 감정을 스스로가 섬세하게 인지하려다 보면, 그 안에서 네가 갈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너의 감정을 알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김지연 학나경 외의 요소로 자신을 설명한다면. 수식어도 좋고, 키워드도 좋다.

권재영 나는 ‘마주보는 권재영’이라고 말하고 싶다. 사실 나에게 마주 보는 일이란, 노력이 굉장히 많이 필요한 일이다. 사람이랑 이렇게 눈을 맞추고 말하는 것도 힘들다. 노력하는 중이다. 나는 소심하지 않았던 적이 없다.

0으로 수렴한다고 해서 정말 0이랑 완전히 같아질 수는 없다. 그럼에도, 발산하지 않고 수렴한다는 건 한없이 가까워진다는 말이다. 권재영은 자신이 미완성인 상태라고 했다. 그럼에도 그는 미완성에서 완성으로 수렴해나가고자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평생 ‘완성’에 완전히 다다를 수는 없겠지만, 그는 그 간극을 좁혀나가고 있다.

작성자 김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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