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학나경 Oct 06. 2022

바닥에 앉아 관찰하는, 이다연

학나경 인터뷰 #18

이다연은 본인을 공부하는 중이다. 단순히 본인을 잘 아는 수준을 넘어서, 스스로를 연구하고 스스로에 대한 문제를 풀 정도로 진득하게 본인을 궁금해하기로 했다. 동시에 그는 본인의 이야기를 풀어내길 어려워했다. 횡설수설한 인터뷰가 될까봐 우려하던 이다연의 단어들은, 오히려 날것의 생각들을 그대로 담은 풍성한 이야기가 되었다.

로운. 요새 무슨 생각을 하고 지내고 있는지.

다연. 더운 계절을 정리하고, 추운 계절을 새로 맞이할 생각. 어떤 가을 겨울을 보내야 할지 상상중이다. 추운 계절에 맞는 음악이나 영화, 책 같은 것들을 정리해두려고 드릉드릉 거리고 있다.

로운. 매번 계절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건지? 오면 오는대로 받아들이고 만끽하는 게 아니라 그 계절을 위해 무언가를 준비하는 이유가 있다면?

다연. 원래 ****그러지 않아서 이번에 해보고 싶었다. 올해는 변화가 많이 있었던 해라서, 더운 계절에는 마냥 즐겁지는 않았던 것 같았다. 그 계절이 끝나기도 했고, 애초에 추운 계절을 좋아하는 편이라 내가 좋아하는 계절인만큼 뭔가 작은 설렘 같은 걸 짜놓고 싶었다. 그냥 되는 대로 받아들이는 편이었는데 이번만큼은 계절에 할 수 있는 거는 다 해보면서 계절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로운. 추운 계절을 어떻게 맞이하려고 하는가.

다연. 여름에는 밝은 분위기의 노래들을 리스트업을 해뒀다면 겨울에는 재즈나 블루스 음악을 준비하는 식이다. 겨울에 내가 듣지 못했던 아티스트를 추천을 받는다든지, 새로운 장르를 추천 받든지. 이번 여름에는 라틴 계열의 음악을 처음 들어봤는데, 너무 좋았다. 처음 들었는데도 계절에 딱 맞아서 좋아하게 된 것처럼, 겨울에도 겨울을 기억할 수 있는 새로운 무언갈 찾아다니고 있다.  라틴 음악을 들으면 2022년 여름이 생각나는 것처럼.

로운. 본인을 심도있게 공부하기 위해 냉철하게 스스로를 관찰한다고 했다. 그 과정에서 본인은 줏대를 갖는 걸 조심스러워하는 사람이었다는 걸 깨달았다던데. 시간이 흐를수록 본인의 색깔이 짙어지고 뚜렷해질텐데, 그 뚜렷한 색에 맞는 것들과 맞지 않는 것들을 가리게되는 게 두려운 건가.

다연.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기준이 편향되고 오만해질까봐 조심스럽다. 더 많은 것들을 고려하지 못한 채로 판단하지 않으려고 해서 중도를 찾으려고 하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내가 가진 기준이 옅어지게 되더라.

로운. 기준을 가지는 걸 경계하는 것인지?

다연. 한순간에 기준이 생기는 걸 경계한다. 서서히 기준이 뚜렷해지는 건 나도 환영하지만, 어느 한순간에 갑자기 생겨버리는 기준은 위험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맥락을 바탕으로 형성이 된 다음에 나만의 기준이 있으면 괜찮은 것 같다..

로운. 가치 판단을 안 하려고 하는 것 같다.

다연. 한 문장으로 정리해버리는 습관을 피하려고 한다. 그렇게 쉽게 정의를 내려버리는 건 당사자에게도 안 좋은 일이 될 수도 있겠지만, 나한테도 해로운 마음이다. 그렇게 정의를 정해놓으면, 내가 보지못한 그 사람의 다른 면은 못 보게 되지않나. 받아들이는 정도가 덜 풍부해진다고 해야 하나. 내가 모르는 또 다른 이야기나 좋은 면들이 있을 건데, 너무 단정짓듯이 한 사람을 규정지으면 세상이 단조롭게 느껴질 것 같다.


로운. 요새 새로 생긴 습관이 있다면.

다연. 호텔에 많은 객실들이 있는 것처럼, 나에겐 여러 가지 문이 있다는 상상을 한다. 요즘은 복도를 거닐며 방문들을 하나씩 두드리는 중이다. 어디가 가장 잘 열리는지, 또 열지 말아야 하는 문은 없는지. 계속 열고 싶은 문은 어디인지. 나를 낯선 상황에 빠뜨리는 일을 벌이고 있다. 내가 매일 하고 있고, 관심을 가지는 일이 나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런데 좋아하는 것만 보고, 그래서 다른 것보다 능숙한 영역에만 눈길을 돌리면 관성이 생겨버려서, 점점 ‘다채로워지기'가 쉽지 않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최대한 나를 낯선 것들과 엮어버리는 작업을 한다. 맨날 시집 아니면 에세이만 읽던 나였는데, 의식적으로 물리학 책도 읽고, 최근엔 나무에 관한 책도 읽었다. 집에 가려면 마을버스를 타야 하는데, 요즘은 카카오자전거를 타고 귀가하거나 아예 걸어오기도 한다. 되게 하찮은 것처럼 보이겠지만, 내 입장에선 생각보다 낯선 일과다.

로운. 이다연은 짙어지기보다 다채로워지고 싶은 사람인가.

다연. 나 스스로 올록볼록한 사람이 되고 싶다. 이런 면도 있고 저런 면도 있고 되게 예상치 못한 면이 많은 사람. 이럴 줄만 알았는데 저런 면도 있는 사람이었구나 라고 말할 수 있는 다양한 질감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은 게 나의 지향점이다.

로운. 관성을 거스르고 낯선 상황에 놓이면서 다채로워지는 과정이 불편한지 아니면 재미있는지.

다연. 정말 힘들고 거기에 능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근데 낯선 환경에 놓일 때마다 나만의 방식이나 해결책은 있기 마련이니까, 그걸 느낄 때마다 살아있는 느낌이 드는 것 같고 되게 뻔한 것도 뭔가 다르게 느껴지고 하면서 오히려 좋은 것 같다.

넘어지고 깨지는 순간이 좋지는 않지만, 상처가 났다가 아무는 그런 순간들이 있지 않나. 아물 때쯤 돌아보면 정말 별 거 아니었는데, 다칠 때는 그게 왜 그렇게 힘들었을까 싶은 순간들. 다행히 그런 순간들이 ‘다쳤다가 아무는 걸 즐기는 시기’에만 찾아오니까 오히려 반기게 된다. 남들은 어떻게 하면 덜 까이고 어떻게 하면 더 상처받을까를 생각할 때 나는 어떻게 하면 더 까이고 더 다칠 수 있을까 고민한다.

익숙함은 달콤하다. 새로움에 적응하는 것은 항상 수고스럽다. 내가 알던 내 모습이 익숙해질 때나, 어느 한 사람을 규정짓다보면 나도 모르는 새에 확증 편향이 자리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기꺼이 수고스럽더라도 익숙함에서 멀어지는 습관을 택한 이다연은 타인과 본인의 삶을 그 누구보다 진지하게 대하고 있다.

로운. 이다연의 삶을 관통하는 가치관, 신념이 있다면 어떤 것인지

다연. 잘 안다고 착각하지 말자. 잘 한다고 착각하지 말자. 그런데 잘 살고 있다고 착각은 해보자.

로운. 잘 사는 건 어떤 것인가.

다연. 대운의 시기를 믿는다. 운이 퍼지는 시기가 있고 안 따라주는 시기가 있는 것처럼. 요새는 대운의 시기가 오고 있다고 실감이 든다. 만나는 사람들도 바뀌고, 가만히 있어도 가만히 있는 느낌이 아니라 진보한다는 느낌이 든다. 이제까지 내가 나 스스로를 내버려두는 느낌을 받아왔는데, 요새는 조금이라도 더 나를 케어하려고 움직이고 있다, 그게 내가 잘 살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인 것 같다. 잘 살고 있지 않다고 느껴졌을 때는 고여있었다. 하던 것만 하게 되고, 하던 생각만 하게되고, 변화가 없는 것에 괴로워하고. 그런 삶이 잘 사는 것의 반대라고 생각을 했다.

나에게 찾아온 변화의 순간들은 눈치채고, 그 변화를 즐기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해야 잘 산다고 생각한다. 사소하더라도 일어난 변화를 발견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괜찮다는 순간이 낯설고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고, 그런 순간은 사소한데 그걸 대수롭지 않게 넘기지 않아야 한다. 잘 살고 있는 시기는 그런 사소한 걸 발견할 때 시작된다.


로운. 이다연을 가장 잘 나타낸 키워드는 틈이라고 했는데 이 틈에 대해서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이 듣고싶다.

다연. 여지 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뭔가를 받아들일 때, 내가 알던 것이 바뀔 수 있는 여지를 두고 간격을 벌린 다음에 받아들이려고 한다. 그걸 틈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래서 작은 것이라도 내가 더 발견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일부러 틈을 만들어두는 게 나한테 정말 중요하다.

그래서 남들이 나를 봤을 때도 뭔가 빈틈이 없는 사람으로 느껴지기보다는, 저 사람한테는 틈이 있어서 더 새롭게 스며들 수 있겠다 싶은 인상을 주고 싶다. 다양한 형태의 인간적인 틈이 발견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로운. 틈이라는 소재에 관심을 갖게된 계기가 있는지

다연. 단어가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트이다, 트임 같은 변주가 되는 단어라는 게 좋았다. 또 하찮아 보이고 특별해 보이지 않아서 좋아했다. 어디에나 있을 것 같다. 어디에나 있을 수밖에 없다.

로운. 이다연이 생각하기에 틈을 가진 사람들은 열려 있는 사람들인가 .

다연. 열려 있다기보다는 열 줄 아는 사람이다. 틈이 있는 사람과 틈을 만들어 낼 줄 아는 사람들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왠지 모르겠는데 다르다고 느낀다. 내가 졸업작품 서문 작가의 말도 틈을 열어서 사랑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썼다.

원래 그런 사람들이 있고,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또 있다. 원래 사소한 변화를 잘 발견하거나 틈이 열려있는 사람들이 있고, 사소한 변화를 발견하려고 노력하거나 틈을 열 줄 아는 사람이 있다. 항상 그렇지는 않지만, 적어도 후자인 사람들에게는 의지를 품게 된 이유가 있다. 이다연이 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사소한 변화를 발견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모두 이유가 있는 행동들이다.

로운. 사람들이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은 과연 어떤 순간에서, 어떤 마음에서 출발하는지를 궁금해 한다고.

다연. 우리는 흔히 많은 미디어를 통해 어떤 영역에 대해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선망까지 하게 된다.나를 통과한 경험이 아닌, 다른 사람의 세계나 관점을 통해 어떤 것을 만나게 될 때, 이것은 어디까지 나만의 영역이 될 수 있을까 생각이 든다. 어떤 영역을 좋아한다고 믿었는데, 실은 나에게 맞지 않다거나. 좋아하지도 않는데, 괜히 좋아하는 척하는 것은 아닌지. 남들이 하는 것들을 무작정 따라하는 건 아닌지. 선망성이나 남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어떤 이미지 때문에, 무언가를 좋아하게 된다고 스스로 주문을 걸게 되는 일은 슬픈 일이 될 것 같다. 그래서 요즘은, 남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무언가를 좋아하고 살아가는지, 그것이 어떤 추진력을 주고 변화를 주는지 .. 그런 맥락들이 궁금하다. 저 질문에 대한 나만의 답을 내리자면, 어색하고 다소 쪽팔리더라도 계속 두드려야겠다는 마음이 들 때, 결국엔 반드시 저 낯선 문이 열릴 것이란 직감이 들 때. 저 영역으로 가는 문이 열리지 않더라도, 누구보다 저 문을 신나게 두드릴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이 생길 때, 무언가를 좋아한다고 인정하는 편이다.

로운. 내 대답은 ‘몰입하게 될 때’다. 어떤 행동을 하면서 다른 생각이 들지 않고 내 눈앞의 순간에 몰입하게 될 때 ‘아, 이거 또 하고싶다’ 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나는 집중력이 약해서 무언가를 진득하게 못하는 성격이고, 쉽게 쉽게 지루해한다. 매번 즉흥적이고 동시에 여러가지 생각을 하면서 사는데, 그러다보니 내가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몰입하는 것만큼 그 순간을 즐긴다는 걸 증명하는 것도 없지 않을까 싶다. 요새 몰입을 하는 순간이 점점 사라지고 있어서 몰입의 순간이 귀해지고 있는데, 몰입하게 되는 것들이 생기면 주저하지 않고 더 깊이 파들어가고 있다.


로운. 그렇다면 무언가를 더 이상 안 좋아하게 된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는지.

다연. 글쓰기가 약간 그런 영역에 속하는 것 같다. 내가 아무리 좋아하고 노력해봤자 나보다 잘하고 타고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있고, 정말 끝없이 좋아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게 많지 않나. 그런 사람들을 보면 내가 과연 글쓰기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싶다. 그런 맥락에서 초라해지는 느낌을 받을 때 열정이 식는 것 같다. 근데 내가 대단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글 쓰는 데에 감정이 흔들리지 않고 일정한 에너지를 계속 유지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내가 유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로운. 내가 좋아하는 건 잘하고 싶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남들이랑 비교를 하지는 않는 편이다. 내 기준에서 내가 주변 사람들을 즐겁게 해줄 수 있는 수준이면 만족한다. 진짜 능력자가 있으면 좀 창피하겠지만, 크게 영향을 주는 것 같진 않다.

다연. 나는 이왕 시작한 건 끝을 보아야 한다는 성격이고, 최고가 되고 싶다기보다는 알 건 다 알고 되게 얘기할 거리가 많은 사람이 되고 싶은데, 뛰어난 사람들 곁에 있으면 알고 있었던 척을 했었구나 라고 느껴진다. 뭔가 좋아하는 척을 해버리면, 나중에 내가 좋아하는 분야인데도 괜히 배신을 당하는 것과 다름이 없는 듯 하다.

로운. 요새 책장을 정리하는 데에 시간을 많이 쓴다던데.

다연. 책을 많이 사는 편이다. 침대 옆에 벽이 다 책이다. 보고 있으니까 책이 나를 잡아 먹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잡아 먹히기보다는 나에게 맞는 책들을 골라 정돈해야할 타이밍인 것 같았다. 늘어나는 책들을 보니, 괜히 답답한 마음이 들어서 요즘은 알라딘 중고서적에 판매자로 책을 등록해서, 주문이 발생할 때마다 편의점에 중고로 책을 판다. 남겨야할 책과 버릴 책, 보류할 책을 나눠서 구분하고 있다. 그렇게 하면서 내가 봤던 책들을 되돌아보고, 이 책을 읽었을 때의 생각을 떠올리는 기도 한다. 남들의 책장을 보는 것도 좋아한다. 책장이 그 사람을 잘 표현해준다고 생각한다. 내 책장을 보면서, 난 이런 사람이었구나 싶다. 어떤 종류의 책이 많은지를 보면 어떤 생각을 갖는지 알 수 있다. 그 사람의 세계관이 담겨있으니까.

로운. 남긴 책들의 공통점이 있나?

다연. 밑줄이 그어지고 코멘트가 남고, 접은 게 많아서 지저분한 책. 시인들의 에세이. 예전에는 진리가 담긴 책들을 모았는데 요새는 신물이 나서 좀 거리를 두려고한다. 최대한 자연스러운 개인의 이야기가 담긴 책들을 모으는 중이다. 아포리즘을 좋아했었는데, 지금은 박완서 에세이, 소설가나 시인의 에세이를 보는 게 즐겁다.

로운. 맥시멀리스트보다 미니멀리스트에 가까운 편인가. 가진 물건들을 처분하면서 내 것을 줄이는 성격인지.

다연. 맥시멀리스트에 가깝다. 이유는 버리는 걸 잘 못한다. 물건마다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 그걸 버리면 거기에 깃든 추억이나 이야기를 버리는 기분이라 오래 고민하게 된다. 일단 보관해두고, 쓰임을 찾는 게 나의 성격이다.


로운. 학나경을 빼고 자기소개를 한다면.

다연. 나무를 외우는 사람.

어릴 때부터 주차장이나 일상에 지나가는 나무들을 찜해놨었다. 어느 날은 저 나무가 커보이기도 하고 작아보이기도 하고, 어디를 지나갈 때마다 마음에 드는 나무를 외우는 편인 것 같다. 내 주변에 무심하게 자리하고 있는 나무들을 알아가는 것과 모르고 관심 끄는 건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런 식으로 내 세계에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고 그 방식을 유지하고 싶은 사람이다. 그게 특별한 것 같다. 그 자리에 있는 나무를 지나칠 수도 있고, 마음 속으로 인사를 할 수도 있는데, 어디를 가던 간에 아무 감흥 없이 스쳐지나가는 사람보다는 잠깐 멈춰서서 나뭇잎의 색이라거나 나이테를 보면서 나무를 외우는 사람이고 싶다.

여행의 목적은 도착이 아니라 과정이라는 말이 있다. 목적지에 다다라야만 여행인 게 아니라, 목적지까지 가는 길에 생기는 일들, 눈에 담는 풍경들, 듣는 소리들까지 모두 여행이라는 뜻이다. 이다연은 일상을 살아가면서 작은 것 하나라도 살펴보고 뜯어본다. 그는 길 위에 놓인 수많은 요소들에 의식적으로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다. 삶의 과정을 끊임없이 궁금해하고, 놓치지 않고 싶어하는 이다연은 일상을 여행하는 여행자 아닐까.

작성자 손로운


이전 19화 질문하는 YJ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