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은 보이는 데서 해라_코자엘리, 터키

나의 비단길 이야기-29

by 현진

#98 부락의 농장


에센레르, 이스탄불의 가장 큰 버스 터미널이다. 나는 코자엘리로 향하는 카밀코치 사(社)의 파란색 버스를 찾고 있다. 바이람 명절의 첫날 버스 터미널은 커다란 짐보따리를 지고 고향을 찾아가는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한국에서도 명절에 어디 잘 안 움직이는데 날짜를 잘못 택한 기분이 든다. 농장에만 도착하면 이번 주는 거기서 얌전히 있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스탄불에서 멀지 않은 코자엘리까지는 2시간 거리, 코자엘리의 버스 터미널에는 농장 주인 부락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나는 주차장에서 그가 탄 오렌지색 도요타 픽업트럭을 찾아 창문을 두드렸다.

"어서 와요, 오늘 다른 워커도 비슷한 시간에 오기로 해서, 같이 기다렸다가 가도 될까요?"

부락은 꽁지머리를 멋지게 묶은 30대 초반의 젊은 농부였다. 터키의 수도 앙카라 출신인 그는 대학생 시절부터 시골에 사는 게 꿈이었는데, 서른 살이 되자 아내와 의논해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아내의 고향으로 내려왔다며 말을 시작했다.

"제 농장이 있는 코자엘리 북부 지역은 전형적인 터키 농촌은 아니고, 조지아 북부의 압하지야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 일군 정착촌이에요. 그래서 제 아내도 조지아 이민 2세인 셈이죠. 아직 조지아의 색깔이 강하게 남아있는 곳이라 여전히 촌장은 여성만, 그것도 조지아 사람만 뽑힐 수 있어요 하하, 사실 제 장모님이 우리 마을 촌장이거든요. 그래서 저도 수월하게 정착했지요."

그의 얘기를 듣는 동안 또 한 명의 워커가 창문을 두드렸다. 부락의 픽업트럭은 주차장에서부터 눈에 띄어 찾기가 쉽다. 짐을 트렁크에 던지듯 넣어두고 뒷자리에 오른 사람은 앙카라 출신의 터키인 기젬. 그녀는 부락과 구면이었다.

"저는 여기 쉬고 싶을 때마다 와요. 이번 연휴에도 그냥 농장에서 조용히 보내고 싶어서 왔어요."

나는 별로 조용한 농장 생활은 기대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나 말고 다른 워커가 있다는 사실에 조금 마음이 놓인다.


20180830_082119.jpg


부락의 차를 타고 도착한 농장은 생각보다 더 시골이었다. 휴대폰의 인터넷 신호는 LTE에서 3G로 바뀌었다. 가장 가까운 슈퍼가 걸어서 1시간 거리라는 부락의 말은 '탈출은 불가능하다'는 말처럼 들렸다. 나는 짐을 내리고 앞으로 내가 지내게 될 집을 살펴봤다. 1층은 닭장과 창고로 쓰고 있었고, 2층은 워커들이 사용하는 셰어하우스였다. 공용 거실을 겸한 부엌, 화장실과 여덟 명이 함께 쓰는 침실. 침실에서는 이미 와 있는 다른 워커가 반겨줬다.

"안녕, 반가워! 나도 어제 왔는데 나 혼자밖에 없어서 너무 지루했거든, 오늘 두 명이나 와서 다행이다. 여기 있는 침대는 마음에 드는 걸로 쓰면 될 거야."

인도인 지미와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창가에 있는 침대에 짐을 풀었다.


20180820_183014_HDR.jpg


"지금 바이람 연휴인 거 다들 알죠? 나도 내일은 친척집에 가야 해서 일은 쉴 것 같은데, 제 동업자인 무라드가 올 수도 있어요. 혹시 모르니까 일단 그렇게들 알고 있어요."

부락이 말을 전해주고 나갔다. 오자마자 쉰다니, 날짜를 잘 골라서 온 것 같다. 하루 종일 빈둥거릴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침실에는 작은 테라스가 딸려있다. 테라스에는 빨랫줄과 함께 빛바랜 소파가 놓여있다. 하루 종일 햇볕에 따뜻해진 소파에 앉아 오리들이 지나다니는 걸 구경했다. 오리들은 항상 꽥꽥거리며 무리 지어 다니는데 비해 닭들은 흩어져 모이를 찾을 뿐 서로를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 지미도 소파에 편하게 몸을 묻고 헤이즐넛을 깨 먹으며 담배를 피웠다.


20180820_183145.jpg


식료품 창고를 뒤져 기젬이 간단히 요리를 했다. 수프를 끓이고 빵과 샐러드를 곁들여 지미와 함께 둘러앉아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고 산책을 했다. 시골이라 그런지 이스탄불보다 선선해서 걷기가 좋았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시골이라 불편한 점 역시 정해져 있다. 벌레가 많다는 것. 아니나 다를까, 밤이 되니 빛을 찾아 날벌레들이 몰려들었다. 심지어 부엌 옆에 있는 식료품 창고에는 부락이 기르는 누에고치 상자가 있어서 나방들이 끊임없이 나왔다. 거실의 형광등 근처에 모여있는 나방 무리를 보니 한숨이 나왔다.


#99 로즈마리 화분 털기


평소라면 잠들어있을 아침 7시, 옆 침대를 쓰는 기젬이 나를 깨웠다. 잠이 덜 깬 얼굴로 '왜 깨우냐'는 표정으로 바라봤더니 그녀는 시계를 가리켰다.

"일하러 갈 시간이야."

"어제 부락이 오늘은 휴일이라 일이 없을 것 같다고 하던데?"

"맞아 분명 그랬는데, 무라드 씨가 우리를 픽업하러 왔어. 준비해서 내려가야 해."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지미와 기젬과 함께 1층으로 내려왔다. 무라드 아저씨는 부락의 동업자로, 푸근한 인상의 중년이다. 그는 싱긋 웃어 보이며 자동차 뒷자리에 타라는 시늉을 해 보였다.


우리는 별다른 토를 달지 않고 차에 올라타 조금 떨어진 농장으로 향했다. 기술이 없는 단순 인력인 우리가 할 일은 뻔했다. 오늘 우리가 할당받은 일은 잡초뽑기. 비닐하우스 한편에 놓인 수많은 로즈마리 화분에서 잡초를 뽑아내야 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방치된 화분들인지 이미 잡초들은 화분을 벗어나 땅에 뿌리를 박고 있었고, 오히려 주인인 로즈마리는 구석에서 셋방살이를 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처음에는 로즈마리가 안 상하도록 조심조심 잡초만 걸러내려 했지만, 잡초들은 뿌리가 억세서 골라내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우리가 택한 방법은 화분을 뒤집어 내용물을 다 쏟아낸 다음 잡초를 골라 버리고 흙을 다시 화분에 주워 담고 로즈마리를 다시 꽂아두는 식이었다. '뭐, 뿌리는 다시 알아서 내리겠지.' 우리는 서로를 쳐다보며 어깨만 으쓱했다.


20180824_130529_HDR.jpg


단순 작업이라 우리의 작업 자체는 지루했다. 기젬이 노래를 틀었지만 그녀의 플레이리스트에는 구슬픈 노래밖에 없어서 더 쳐지는 기분이었다. 사실 우리가 돈을 받는 것도 아니고 숙식만 제공받는 봉사 개념이기 때문에 '할당량을 채워야 한다'는 압박감은 없지만, 나는 한국인이라 그런지 빨리 작업을 마치고 '이만큼 했다!'는 성취감을 느끼고 싶었다. 하지만 지미와 기젬은 그런 것에 별로 관심이 없는지 물을 마시러 간다며 슬금슬금 나무 그늘을 찾아 누워버렸다.

'야, 일은 보이는 데서 열심히 해야지, 혼자 열심히 한다고 누가 알아주냐?'

군대에서 들었던 선임의 한 마디가 떠올랐다. '보이는 데서 일하라'는 그곳에서 배워온 원칙에 따라 나도 무라드 씨가 다른 일 때문에 가버리자 나무 그늘 아래 자리를 잡고 누웠다.


20180821_191328.jpg


좁은 시골길로 짐을 잔뜩 실은 지프 한 대가 지나갔다. 오늘 부락이 3명의 워커들이 더 올 거라고 했는데, 그 사람들인가 싶었다. 우리는 지프를 향해 손을 흔들었고, 차에 탄 남자는 손을 마주 흔들며 지나쳤다. 몇 시간 뒤 농장으로 돌아갔을 때 우리는 그 지프를 다시 볼 수 있었다.

"안녕, 오늘 도착했어?"

"응 방금 왔지. 너희들도 여기서 일해? 나는 일루아, 프랑스에서 왔고 이쪽은 여자친구 피나야."
"사실 아까 일하면서 너희가 오는 걸 봤어. 너도 손 흔들면서 지나갔잖아, 못 봤어?"

"아아 봤지. 근데 그냥 여기 사는 사람들인 줄 알았잖아! 하하 생각해보니 터키 시골에서 외국인들이 밭일하고 있는 게 이상하긴 하네"

그들은 피나의 고향인 체코에서 여기까지 일루아가 직접 개조한 지프로 여행을 했다며, 몬테네그로에서 길에서 주운 아기 고양이 카흐벳을 소개해줬다. 카흐벳은 한창 호기심이 많은 나이라 내 손가락을 깨물었다. 아기 고양인데도 물린 손가락이 따끔했다. 하지만 이내 우리는 친해졌다. 카흐벳은 내가 마음에 들었는지 무릎에 곧잘 올라왔다. 그렇게 마당에 앉아 이야기를 하던 중 마지막 손님인 멕시코인 마누엘까지 도착했고, 총 여섯 명이 된 우리는 방을 거의 가득 채웠다. 우리는 간단한 회의를 통해 하우스 룰을 정했다.


-샤워한 후 간단히 뒷정리 하기

-점심 식사는 각자, 저녁 식사는 2명씩 돌아가면서 준비하기

-식사 후 설거지는 요리 당번이 아닌 사람 중에서 제비뽑기

-침실 소등은 11시에 하기


새 규칙에 따라 나와 지미가 저녁밥을 준비했다. 냄비밥을 하고 마침 냉장고에 누가 남겨두고 간 간장에 양파와 계란을 달달 볶아 덮밥을 만들었다. 우리의 '아시안 스타일 프라이드 라이스'는 다행히 모두들 맛있게 먹어주었다. 피나와 일루아는 다음에 프랑스 요리를 해주겠다며 우리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여섯 명이 한 식탁에 둘러앉으니 갑자기 집이 복닥 복닥 해졌다. 일주일만 있을 기젬을 제외하고는 모두 같이 2주를 보낼 예정이라 여름 농촌 체험 캠프 느낌이 났다.


20180821_191105_HDR.jpg 해질 무렵의 농장


#100 희생절의 양고기


20180831_145655.jpg 죽은 듯이 자는 카흐벳


이슬람교의 명절인 쿠르반 바이람은 희생절로 번역된다. 잘은 모르지만 구약에 나오는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야기에 관련된 명절인데, 그들을 기념하기 위해 이 날에는 양이나 소 등 가축을 잡는 의식을 행한다. 우리 농장 주인인 부락은 무슬림이 아니라 따로 의식을 치르지는 않았지만, 근처 다른 농장에서는 양을 거꾸로 매달고 목을 그어 피를 받는 희생 의식을 치렀다. 양을 손질할 때 꺼낸 장기들은 의외로 푸른빛을 띠고 있어 보기가 더 힘들었다. 전통에 따라 이웃인 우리도 신문지에 싼 양고기를 넉넉하게 얻었다.


오늘의 일은 오이 따기와 호박밭 김매기. 유기농 농장이라 얼핏 봤을 때는 밭의 생김새가 아니다. 잡초가 너무 무성해 잡초를 헤치고 오이를 골라내야 했다. 우리는 각자 플라스틱 박스를 옆구리에 하나씩 끼고 오이밭으로 들어갔다. 나는 오이가 가지처럼 매달려 열리는 줄 알았는데, 호박처럼 넝쿨이 바닥을 타고 자라 열린다. 그래서 오이를 '딴다'라기 보다 '줍는다'가 맞는 것 같다. 웃자란 잡초 이파리들을 들추고 뒹굴고 있는 오이를 줍는데, 막 발견한 오이를 움켜쥐는 순간 팔 위로 묵직한 게 툭 떨어졌다. 나는 곧 초록색 애벌레가 내 팔에 붙어 있는 걸 봤다. 나는 본능적으로 오이를 집어던지며 팔짝 뛰었다. 내 팔에서 떨어진 손가락만 한 애벌레는 영문을 모른 채 꿈틀대며 축축한 땅을 기어 다녔다. 쟤는 자라서 얼마나 큰 나비가 될까? 아마도 뱀이 되려고 마음먹은 것 같다.


20180822_090237.jpg
20180822_090233_HDR.jpg


호박밭의 상태는 더 심각했다. 우리는 부락이 나눠주는 괭이를 하나씩 들고 넝쿨 주변에 웃자란 잡초들을 파냈다. 농사가 이렇게 힘든 일이었구나... 유기농 채소가 왜 비싼지 이제 알게 됐다. 이 힘들고 귀찮은 작업을 하나하나 손으로 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휴대폰으로 노래를 틀어놓고 한 고랑씩 맡아 땅을 열심히 헤집었다. 계속 괭이질을 하고 있으니 허리가 아팠다. 땡볕 아래서 억센 풀과 씨름하고 있자니 불현듯 익숙한 기분이 들었다. 여름을 좋아하던 내게 한동안 여름이 싫어지게 했던 군대의 제초 작업. 그래도 지금은 내가 이 풀을 뽑는 일이 완벽하게 무의미하지 않다는 사실에 조금 힘이 난다. 큰 호박이 열리는데 도움이 될 테니까.


기나긴 다섯 시간이 지나고, 우리는 흙이 잔뜩 묻은 괭이를 어깨에 걸치고 집으로 향했다. 돌아가는 길가에는 사과나무가 늘어서 있다. 목마르고 배고픈 우리는 사과나무 아래로 몰려갔다. 나무를 잘 타는 지미가 올라가 가지를 흔들어 떨어뜨려주는 사과를 하나씩 받아 벌레 먹은 시큼한 사과를 옷에 닦아 베어 먹으며 터덜터덜 발걸음을 옮겼다.


20180829_122711.jpg


1시에 작업이 끝나고 저녁 준비를 하는 7시까지의 오후 시간은 무료하다. 나는 이 무료한 시간이 좋다. 토마토와 치즈를 먹고, 천천히 샤워를 하고, 낮잠을 자고 일어나도 시간이 남았다. 느린 인터넷과 씨름을 하며 축구 뉴스도 읽고 마누엘과 잡담을 하며 잘 말린 헤이즐넛을 깨 먹었다. 바로 윗 침대를 쓰는, 나보다 한 살 동생인 마누엘은 어딘가 맹한 구석이 있는 귀여운 친구다. 어릴 때 태권도를 배웠다며 나에게 품새를 보여줬다. 나는 어렸을 때 태권도 도장 대신 피아노 학원을 다녔기 때문에 그가 제대로 하고 있는지 봐줄 수는 없었다.


20180827_185049.jpg
20180827_184723.jpg 낮잠 메이트, 깨우면 화냄


오늘의 저녁 당번인 기젬이 선보인 터키식 양고기 요리 카부르마. 공동 당번이었지만 이번에는 보조 역할

을 자처한 마누엘은 다음번엔 자기가 셰프가 되어 살사 소스를 곁들인 멕시코 요리를 해주겠다며 큰소리를 쳤다. 잘게 썬 양고기 볶음과 찐 밥, 으깬 감자를 곁들여 어제와 같이 우리는 한 가족처럼 둘러앉아 저녁을 먹었다. 여섯 명의 국적은 모두 다르지만, 신기하게 다들 말이 많고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친구들이라 한 번 시작한 대화는 끊어지지가 않는다. 냉장고에 있던 맥주가 부족해 두 명이서 한 캔을 나눠먹었지만, 만약 슈퍼가 이 근처였다면 우리는 술을 잔뜩 사 먹고 뻗어버렸을 거라며 웃었다.


20180823_205400.jpg
20180823_205655.jpg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