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비단길 이야기-35
#121 근데 너 연기는 못 하잖아
오전 8시, 부다페스트의 켈레티 역. 하품을 하며 기차에서 내렸다. 반바지 차림의 내게 갑자기 칼바람이 불어닥쳤다. 주위를 둘러보니 헝가리 사람들은 코트에 목도리를 두르고 있었다. 아무리 9월 말이지만 이건 너무 추운데, 한국은 아직 한낮에는 매미가 울 시기다. 급하게 긴 추리닝을 꺼내 겹쳐 입고 인학 형을 만나기 위해 스타벅스로 향했다.
"형, 진짜 오랜만이네요. 3년 만인가? 근데 너무 피곤해 보이시는 거 아니에요 하하"
프라하에서 야간 버스를 타고 넘어왔다는 형은 야근을 마친 직장인 같았다. 형은 이곳에 머무는 이틀간 빌린 에어비앤비 아파트에서 나도 지낼 수 있게 허락해줬다.
부다페스트에서 교환학생을 했던 친구에게 추천을 받아 향한 맛집, 포 세일 펍(For Sale Pub). 헝가리의 전통 소고기 수프인 굴라쉬를 잘하는 집이다. 꽤 유명한 곳인지 식당 앞에는 사람들이 줄을 서있었다. 한국에서도 식당에서 웨이팅을 잘 안 하는 편인데, 여기서도 당연히 다른 식당을 찾아 지도 어플을 열었다.
"야 이 정도면 20분 안에 다 빠질걸? 어차피 찾는 것도 일인데 그냥 여기서 먹자."
형의 말에 잠자코 식당 앞에 줄을 섰다. 항상 혼자 여행을 하다 이제 동행이 생겼다는 게 실감이 났다. 강바람을 맞으며 서 있으려니 몸이 떨렸다. 다가오는 겨울을 대비해 외투를 하나 사야겠다.
우리 차례가 돼서 식당에 들어갔다. 식당에는 한국인 손님이 많았다. 여기저기서 한국말이 들려왔다. 마음이 놓였다. 나는 맛집에 제대로 찾아온 게 맞구나. 다른 테이블을 흘끗 훑었다.
"형, 보니까 다들 굴라쉬 하나에 밥 시켜서 먹는 것 같은데 저희도 저렇게 시킬까요? 맥주도 두 잔 추가해서요."
"그래, 그러자."
우리는 둘 다 먹는 것에 있어서 모험을 싫어하는 타입이다. 곧 웨이터의 손에 날라져 나온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굴라쉬는 어딘가 익숙한 맛이었다. 밥을 말아먹으니 소고기 국밥 맛이 났다. 푹 삶겨 쭉쭉 결대로 찢어지는 소고기와 포슬하게 익은 감자가 잘 어울렸다.
"이거 밥 두 공기 가능하겠는데요?"
다행히 수프와 함께 빵이 무한리필로 제공돼서 밥을 더 시킬 필요는 없었다.
부다페스트는 도나우 강을 끼고 발달한 도시다. 원래는 강을 사이에 둔 부다와 페스트라는 두 개의 독립된 도시였지만, 도시가 커지며 하나로 합쳐졌다고 한다. 부다 지역에 있는 식당을 나와 도나우 강을 건넜다. 초록색으로 칠해진 리버티 다리 건너편에는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는 겔레르트 언덕이 있다. 언덕을 오르는 길 중간에는 슬픈 표정의 동상이 서 있다. 동상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모르게 오스카 와일드의 단편「행복한 왕자」에 나오는 동상 생각이 났다. 같은 제목을 가진 자우림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오르막길을 따라 정상을 향해 걸었다.
진주로 만들어진 나의 두눈을
루비로 만들어진 나의 입술을
황금으로 지어진 나의 심장을
모두 드리겠어요
외롭고 추운 거리에 그가 남긴 보석들이
오가는 사람들의 발치에서 부서지네 _幸福한 王子, 자우림
언덕 위에 올라 부다페스트 시내를 내려다봤다. 도나우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들과 도시의 상징인 국회의사당이 보였다. 국회의사당을 제외하고는 크게 튀는 건물이 없어서 풍경에서 안정감이 느껴졌다. 강줄기도 둥글게 곡선을 그리며 도시를 지나고 있었다. 다리 때문에 강이 아름다운지, 혹은 그 반대인지는 잘 모르겠다. 10년 전 중학생일 때 가족들과 헝가리를 여행하며 도나우 강에서 유람선을 탔다. 배에서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을 반복해서 틀어줬다. 지금은 그 노래를 생각하면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가 제일 먼저 떠오르지만.
언덕의 정상에서 맞는 강바람은 꽤 찼다. 이스탄불에서 스웨터라도 사두길 잘했다. 다시 다리를 건너 페스트 지역으로 넘어왔다. 한국인 관광객들도 많이 보이고, 헝가리쯤 오니 유럽에 온 기분이 났다. 한때 부다와 페스트였던 도시가 부다페스트가 된 것처럼, 인접한 나라인 오스트리아와 헝가리도 오스트리아-헝가리로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19세기 말 오스트리아는 여러 민족들의 독립 요구로 흔들리고 있었다. 이에 황제 프란츠 요제프와 헝가리의 귀족들이 타협을 이뤄내 이중 제국으로 제국은 유지되었다.
이 시기 제국을 대표하던 3명의 인물은 황제 프란츠 요제프,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 작가 스테판 츠바이크를 꼽을 수 있다. 인학 형과 함께 4년 전 공연했던 연극도 클림트와 관련된 내용이었고, 배경 또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아터 호수였다. 길을 걸으며 형과 그때 우리의 연극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지나간 얘기를 하고 있으니 같이 공연을 준비하던 사람들이 보고 싶었다. 여름 내내 연습을 하며 방학을 보내고 가을로 넘어가던 그 분위기도. 여전히 형은 내 연기를 가지고 놀렸지만 그런 놀림은 많이 받아서 이제는 아무 느낌도 없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스스로도 못난 내 연기에 답답해서 숨어서 울기도 했다.
인학 형의 계획에 따라 해가 지기를 기다려 야경을 보러 나갔다. 부다페스트의 대중교통은 조금 애매하다. 교통권을 파는 곳이 지하철역이나 몇몇 트램 정거장 밖에 없어서 급하게 버스나 트램을 탈 때는 가끔 표를 살 곳이 없어서 곤란하다. 인학 형은 미리 3일권을 사두어서 문제가 없다. 하지만 나는 3일 권을 사기에는 돈이 아까웠다. 그래서 그냥 안 사고 탔다. 뒷문으로 슬쩍 타서 검표원이 타는지 눈치를 보다 내리면 그만이겠지라는 심산으로. 결과적으로 부다페스트에서 검표원을 마주치는 일은 없었다. 다른 여행자들에게 전해 듣기로 아주 재수가 없으면 걸린다고 한다.
부다 성으로 살짝 마지못해 따라나서기는 했지만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야경이었다. 역시 유명세를 타고, 사람이 모이는 데는 이유가 있구나 싶었다. 내일이 추석이라 거의 만월에 가까운 달이 떴다. 부다 성 옆에 있는 어부의 요새도 야경 포인트인데, 여기서는 조명에 노랗게 물든 국회의사당 건물이 잘 보인다. 성벽의 총안에서 인생 샷을 찍어가려는 관광객들이 많이 보였다. 우리도 그들을 따라 이리저리 각도를 맞춰보며 셔터를 눌러댔다.
#122 부다페스트의 구제 가게
아침을 해 먹고 영웅 광장으로 향했다. 내 기억 속 이 광장은 굉장히 넓은 장소로 남아있었다. 다시 와본 광장은 기억보다 작아져 있었다. 광장에 내리쬐는 가을 해가 따가웠다. 해를 피해 공원으로 들어갔다. 공원에는 작은 호수가 있고 성이 있었다. 우리는 성이 보이는 벤치에 앉았다.
"아직 오전인데도 피곤하네. 직장 생활하니까 여행도 힘들다 이젠."
"에이, 형 일정이 빡세서 그래요. 좀 쉬면서 다니면 되잖아요."
"안돼. 어떻게 휴가 써서 여기까지 왔는데 하나라도 더 봐야지, 추석 끼워서 휴가 쓴다고 눈치도 엄청 봤단 말이야."
그는 한국에 돌아갈 날이 다가온다며 한숨을 쉬었다.
시내의 관광지들을 몇 군데 둘러보고 세컨드 핸드 마켓으로 옷을 사러 갔다. 부다페스트에는 이런 종류의 구제 가게가 많다. '크림'이라는 체인은 구제 옷들이 아울렛처럼 깔끔하게 진열이 돼 있었다. 매장을 둘러보다 마음에 드는 가을 코트를 하나 샀다. 눈을 의심했지만 속옷 코너도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그곳에는 다 수명이 다 한 듯한 삼각팬티가 옷걸이 위에 축 늘어져 있었다. 누가 저런 걸 사갈까 싶었는데 꽤 많은 사람들이 속옷을 고르고 있었다. 나는 남이 입던 팬티는 못 입을 것 같은데, 잠깐 생각했다가 그 말을 취소해야 했다. 훈련소에서 빨래하기 귀찮을 때 야외 건조장에 나가 다른 소대원의 팬티나 양말을 슥삭 집어서 입었던 것 같기도 하다. 우리들은 그걸 '쇼핑'이라고 불렀다.
새로 산 코트를 걸치고 뿌듯하게 상점을 나왔다. 아직 겨울을 나기에는 부족하지만 여유가 되면 목도리나 모자도 사야 할 것 같다. 내일이면 인학 형인 비엔나로 떠나기 때문에 오늘이 이곳에서의 마지막 밤이다. 부다페스트에서 유명한 루인펍(Szimpla Kert)으로 형을 데리고 갔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커다란 폐건물을 개조해 펍으로 재단장한 곳이다. 이제는 관광객들이 모이는 이 도시의 명물이 됐다. 펍의 내부는 여러 개의 구역으로 나눠져 있다. 각 방마다 꾸민 테마도 다르고, 그에 따라 파는 술도 다르다. 방을 하나하나 천천히 둘러봤다. 앉고 싶었던 곳은 모두 만석이었다. 어쩔 수 없이 맥주 하나씩을 손에 들고 구석방에 자리를 잡았다.
형의 비엔나 여행 계획을 듣고 있으니 나도 따라가고 싶어 졌다. 하지만 내 동선이 꼬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비엔나 같은 관광도시를 가려면 돈이 많이 든다. 비싼 숙소와 식당, 입장료도 꼬박꼬박 내야 하고. 물가가 싼 나라를 주로 여행하다 유럽으로 넘어오니 비싸진 물가가 실감이 났다. 이제 마트에서 물건을 살 때도 한눈을 팔 수가 없다. 미리 필요한 물건을 적은 다음 그것만 집어들고 빠르게 계산대를 빠져나온다.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 습관적으로 주문하던 콜라나 커피도 이젠 다 사치가 됐다. 대신 커다란 물통을 항상 들고 다닌다. 덕분에 배낭이 무거워졌다.
#123 난초 란에 남녘 남
켈레티 역의 스타벅스에서 인학 형의 기차 시간을 같이 기다렸다. 서로 찍은 사진을 교환했다. 동행이 있으면 내 사진을 많이 찍어줘서 좋다. 형은 이틀 전과 같은 자리에서 일어나 캐리어를 끌며 카페를 빠져나갔다. 바뀐 건 안녕히 가세요, 라는 인사말밖에 없는 기분이다. 자리를 뜨며 인학 형은 남은 헝가리 돈으로 커피를 사주고 갔다. 나는 커피를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천천히 마셨다. 투명한 플라스틱 컵 안에서 줄어드는 커피가 마치 내가 여기 앉아 있을 수 있는 시간을 알려주는 모래시계 같았다.
찾아간 호스텔은 어제 갔던 루인 펍이 있는 골목의 중심에 있었다. 이 근처 호스텔은 모두 펍 크롤(Pub crawl) 투어를 진행하고 있었다. 호스텔 스탭에게 신청을 하면 참가자들을 모아 근처의 유명한 펍을 돌아보는 프로그램이다. 3년 전 불가리아의 소피아에서 한 번 참여한 적이 있는데, 너무 빨리빨리 장소를 옮겨서 정신이 없었다. 체크인을 할 때 스탭이 내 참여 의사를 물었다.
"아니요, 오늘은 좀 피곤해서요. 침대도 조용한 방으로 부탁드려요."
그녀는 씩 웃어 보이며 알겠다며 나에게 열쇠를 건넸다. 그녀의 손목에는 팔찌 모양의 문신이 선명했다.
자리를 봐 두고 거실로 나와 빵을 먹었다. 내 맞은편 소파에 앉은 사람도 비슷한 빵을 먹고 있다. 화장법을 보니 중국인인 것 같다.
"니하오"
그녀의 이름은 랑랑(蘭南). 혹시 별명이냐는 내 질문에 난초 란 자에 남녘 남 자를 쓴다며 웃었다.
"넌 왜 펍 크롤 투어에 안 갔어?"
"난 술은 잘 못 마셔서, 그리고 그런 왁자지껄한 분위기는 별로 안 좋아해. 이따가 겔레르트 언덕에 야경이나 보러 가려고."
이른 저녁을 먹고 딱히 할 일이 없던 나는 그녀를 따라갔다.
인학 형과 함께 올랐던 언덕길을 다시 걸었다. 저녁인데도 언덕 위에는 사람이 많았다. 다들 야경을 기다리는지. 우리도 난간에 걸터앉아서 도시에 불이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어둠이 내리며 다리와 가로등, 성당 같은 커다란 건물에 차례차례 불이 켜졌다. 구경하던 사람들의 탄성이 들렸다.
"슬슬 내려가서 맥주 한 잔 할래? 너무 어두워지면 여기 내려가기 힘들어."
오스트리아의 그라츠에서 대학을 다닌다는 그녀는 부다페스트를 꽤 잘 아는 것 같았다.
그녀를 앞장세워 간 곳은 호스텔 근처의 골목이었다. 시끌벅적한 루인펍 골목과는 한 블록 떨어져 분위기가 조금 차분했다.
"여기가 샌드위치 맛집이야. 내가 지나갈 때마다 줄 서있더라."
빵만 먹어서 배가 고팠던 우리는 긴 줄을 서서 산 그릴드 샌드위치를 받아 들고 어두운 공원에 앉아서 병맥주를 마셨다. 그녀의 고향인 청두와 쓰촨 이야기를 들으며 역시 청두 출신인 칭휘를 떠올렸다. 의대를 졸업하고 인턴을 시작했다는 그는 여전히 가끔 위챗 메시지를 보내 안부를 전해온다. 그와 함께 다녔던 둔황, 투루판과 우루무치. 매일같이 희뿌연 모래가 날리던 도시들이 부다페스트에 있는 지금의 나에게 아득히 먼 이름처럼 느껴졌다.
#124 짐 값을 따로 내라고?
내 다음 행선지는 세르비아의 베오그라드로 정했다. 자그레브와 베오그라드 사이에서 많은 고민을 했지만 베오그라드의 카우치서핑 호스트가 내 리퀘스트를 수락해줬기 때문에 그쪽으로 향했다. 버스 시간까지는 시간이 있어 떠나기 전 도나우 강을 걸었다. 강가에 앉아 점심으로 치즈가 든 빵을 먹었다. 비둘기 한 마리가 지나가 빵을 조금 뜯어 던져줬다. 한 마리는 곧 한 무리로 변했다. 서른 개의 눈동자가 내 손 끝을 쫓는다. 비둘기가 모이니 까마귀들도 덤벼들었다. 까마귀들은 꽤 흥미롭다. 큰 덩어리를 던져주면 비둘기들은 어쩔 줄을 몰라 빵조각을 물고 고개만 좌우로 흔들다 빵을 떨어뜨려 버리는데, 까마귀는 발로 빵을 잡고 부리로 뜯어먹는다. 마치 우리가 손을 쓰는 것처럼.
국회의사당 근처의 한인 마트에도 들러 라면을 샀다. 곧 베오그라드에서 만날 카우치서핑 호스트에게 한국 라면을 끓여주고 싶었다. 매운맛에 익숙하지 않을 테니 맹맹해 보이는 연두색 포장지의 '순라면'이라는 외국인용 라면을 사야 하나, 잠깐 고민했다. 하지만 그냥 내가 먹고 싶은 시뻘건 열라면을 두 봉지 샀다. 이왕 먹는 거 제대로 먹는 게 좋겠지.
베오그라드까지는 6시간. 여기는 짐 값 1유로를 따로 받는다. 갑작스럽게 주머니를 뒤졌다. 다행히 동전이 남아있었다. 동유럽의 버스 스케줄은 유동적이라고 들었는데, 역시 국경에서 발목이 잡혀 시간을 질질 끌었다. 결국 버스는 밤이 돼서야 베오그라드에 도착했다. 호스트인 이바나가 터미널로 마중 나오기로 했는데, 본의 아니게 그녀를 꽤 오래 기다리게 하는 바람에 너무 미안했다. 카우치서핑이 처음이라는 그녀는 어색한지 말을 많이 했다. 하지만 나는 너무 배가 고파 그녀의 쏟아지는 말들을 대충 흘려들었다. 비둘기와 빵을 나눠먹은 게 후회가 될 줄이야.
이바나도 내 피곤한 기색을 눈치챘는지 더 이상 말을 걸지 않았다. 세르비아 돈이 없는 내게 그녀는 24시간 유효한 교통권을 사줬다. 우리는 묵묵히 버스를 타고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저녁 안 먹었지?"
"사실 점심부터 제대로 못 먹었어. 지금 배고파서 죽을 것 같아."
"아까 요리해 둔 게 있는데 같이 먹자. 나도 너 오면 먹으려고 안 먹고 있었어."
말과 동시에 그녀는 프라이팬 위에 있던 요리를 데웠다. 토마토소스에 얇게 간 고기, 옥수수와 완두콩을 볶은 음식이었다. 곁들여 먹은 삶은 옥수수까지 다 맛있었다. 정신없이 뱃속에 집어넣었다. 급하게 음식을 먹는 나에게 그녀는 독한 브랜디를 한 잔 권했다.
"이건 세르비아 전통주인 비냑(Vinjak)인데, 한 번 마셔봐."
호박색의 술에서는 꼬냑과 비슷한 맛이 났다. 술기운이 천천히 전기가 통하듯 온 몸에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