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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진 May 14. 2020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실크로드

나의 비단길 이야기-에필로그

 벚꽃이 필 때 집을 떠난 나는 간신히 해를 넘기지 않고 돌아올 수 있었다. 재미로 시작한 여행이었고, 생각보다 더 재미있어서 짜릿했다. 애초에 여행의 컨셉을 역사 속 실크로드라고 잡았지만 이미 그 범위를 훨씬 넘어서버렸다. 대신 나는 나만의 실크로드를 따라갔다. 그래서 나는 이 여행을 원래 있는 것을 찾아가는 '답사'라기보다는 내 이야기를 만들어낸 '서사'라고 부르고 싶다. 나는 그 이야기 속에서 긴긴 날들을 살았다. 매일 반복되는 루틴이 아닌 날마다 마주하는 새로운 하루 분의 삶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 하는 고민은 가끔은 힘들기도 했지만 그만큼 많은 이야깃거리들을 만들어냈다. 애초에 무언가를 얻어오려고 떠난 길은 아니었지만 나는 이야깃거리만큼은 확실하게 챙겼다. 토마토와 양고기가 들어간 면 요리, 산정호수에서 만난 유목민 캠프, 옛 대상들이 세운 사원과 국경에서 본 밤하늘, 나를 따뜻하게 맞아주던 친구들, 술을 마시며 새운 밤, 얄미운 소매치기까지. 나는 집으로 돌아온 첫날 가족들과 밥상에 둘러앉아 그 옛날 여행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내가 보고 들은 것들을 주절주절 풀어냈다.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은 모든 위대한 이야기는 방랑에서 시작된다고 했다. 나는 책을 읽다 발견한 저 문장에 꽂혀서 여행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고생스런 배낭여행을 다녀와서 찌들어있던 인생관이 바뀌고, 막막하던 앞길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식의 '여행 자기 계발서' 같은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나는 단순히 '방랑' 자체가 좋았고 여행 중 가끔 나는 부유하고 있구나,라고 자각할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물론 마음 가는 대로 돌아다닌다고 자유로운 것도, 매일 출근을 해야 한다고 자유롭지 않은 것은 아니다. 어디서 무얼 하든 마음먹기에 달렸지만, 여행은 자유라는 것을 일단 가장 쉽게 피부에 와 닿게 해 준다. 그 자유를 어떻게 쓰는가는 그다음 문제다. 

 '나는 내 여행을 하고 있는가?' 

 여행을 시작하기 전 스스로 나에게 던졌던 질문이다. 여행을 게임 공략처럼 모범 답안을 훔쳐보듯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해야 한다는 말이 싫었다. 같은 맥락에서 '어디에 가면 꼭 해봐야 할 몇 가지' 이런 류의 글도 잘 안 읽어보는 편이다. 그럼에도 내 마음 가는 대로 하는 건 힘든 일이다. 심지어 일행 없이 혼자 여행하는 나에게도. 제한된 예산에 겁이 많고 모험심이 부족한 내가 답답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내가 선택해놓고도 결정이 후회스러워 되돌리고 싶은 적도 많았다. 여행을 하며 끊임없이 나에게 물었다. 

 '이게 니가 진짜 하고 싶은 거야?'

 나는 아직 이 질문에 명쾌하게 대답할 수가 없다. 내가 어떤 걸 좋아하는지, 어디서 행복을 느끼는지 어렴풋이 윤곽만 보일 뿐 아직 찾아가는 단계라고 생각한다. 시간은 많으니까. 


+

 여행을 하며 매일 써둔 일기를 반년이 넘도록 정리했습니다. 여행은 준비하면서 한 번, 여행지에서 한 번, 돌아와서 한 번, 총 세 번을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글을 마무리하며 비로소 여행이 끝났음을 느낍니다. 기회가 된다면 출판까지 도전하고 싶은데, 그러기에는 또다시 다듬어야 할 부분이 너무 많은 것 같네요. 항상 모자란 글을 쓰면서도 이전 글을 돌아보면 더 부족한 점이 보여 몽땅 뜯어고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기도 합니다. 이렇듯 제 혼자만의 일기장에나 적힐 법한 글을 재밌게 읽어주셨다면 정말 감사합니다. 몇 번 시도해봤던 글쓰기 모두 끝을 못 맺었는데, 처음 어떤 이야기의 완결을 내보는 것 같네요. 뿌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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