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비단길 이야기-5
#13 서역으로 크게 한걸음
유난히 기차가 덜컹거려 밤에 잠이 늦게 들었다. 아침에 3층 침대를 쓰는 아저씨가 내려오면서 내 발을 밟아서 화들짝 깼다. 무슨 꿈을 꾸는 중이었는데, 굉장히 생생했다. 한참을 꿈 내용을 떠올리려 애쓰며 누워있었다. 허리를 펼 수도 없는 좁은 침상이지만, 어느새 이 침상이 나만의 공간으로 느껴졌다. 기차에서 내리면 나는 다시 현실에 내던져지겠지. 몰려드는 택시 호객꾼을 피해 내 길을 찾을 궁리나 해야겠다.
아침 8시지만 공기는 쌀쌀했다. 마치 새벽 같았다. 사실 이곳은 베이징에서 서쪽으로 2천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데, 중국 정부에서 1 국가 1시간을 고수하며 강제로 베이징 표준시에 맞추다 보니 해가 늦게 뜨고 늦게 진다. 덩달아서 나도 늦게 일어나게 된다. 이게 다 시간 때문인 것.
둔황 역은 시내에서 조금 떨어져 있다. 짐도 있고, 아침에 너무 피곤해서 그냥 택시를 타기로 했다. 택시를 타고 보니 꽤 거리가 있어서 조바심이 났다. 차를 타고 가며 미터기를 열심히 흘끔거렸다. 하지만 다행히 3000원 남짓 나왔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낯선 곳에 오면 항상 왠지 모르게 움츠러든다.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길을 잃을까 무섭기도 하고. 귀걸이를 주렁주렁 매단 매니저에게서 열쇠를 받아 6인실에 들어왔다. 북쪽으로 난 창문으로 한 줌 빛만이 스며들어오는 어두침침한 방 안에서는 오래된 나무 냄새가 났다. 짐이 풀어져 있는 자리는 한 곳 밖에 없었다. 왠지 모를 경계심에 제일 멀리 떨어진 침대를 고르고 부스럭 소리를 내며 시트를 깔고 커버를 씌웠다. 하얀 시트에 누우니 긴장이 잠시 풀렸고, 선잠이 들었다.
번뜩 눈을 떠 시계를 보니 아직 점심시간이었다. 이제는 일어나야겠지. 일어나서 샤워, 빨래 등 일거리를 처리했다. 세면대에서 손빨래를 할 때마다, 8개월 간의 내 시간 중 온전한 여행과 부차적인 잡일 중 어느 곳에 쓰는 시간이 더 많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호스텔 방은 깨끗했는데 화장실, 샤워실이 조금 더러웠다. 퀴퀴한 물 비린내가 스며 있어서 왠지 지렁이가 기어 다닐 것 같았다. 샤워를 하면서 바닥을 주의 깊게 살폈다.
빨랫줄에 빨래를 널어두고 호스텔을 나선다. 며칠이나 머무를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내 동네는 파악해야 한다. 어디에 구멍가게가 있고 국수가게가 있는지 정도라도. 나온 김에 야시장으로 가는 길도 찾아두었다. 이따가 밤에 나가서 양꼬치 사 먹어야지. 호스텔로 돌아오면서 이곳 특산품인 건포도를 한 줌 사서 집어먹었다.
#14 실크로드의 유령들
"안녕, 나는 청두에서 왔어. 너는?"
어젯밤에 들어온 중국인 친구가 말을 걸었다.
"니하오, 나는 한국인이고 중국말은 못 해"
"아... 한국인이구나! 반가워, 나는 칭휘야"
여행 준비를 별로 안 했기 때문에, 새로운 도시에 떨어지면 어디를 가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러던 차에 걸려든 이 친구를 붙잡아야겠다는 느낌이 본능처럼 들었다.
"너 혼자 여행하니? 그렇다면 나도 니가 가는 곳으로 데려가 줘"
그렇게 칭휘와 나는 막고굴로 향했다.
실크로드를 여행하는 것은 과거의 유령을 따라가는 것과 같다는 말을 들었다. 대항해시대 이후 바닷길이 열리며 점차 실크로드는 대륙간 교역로의 지위를 잃어갔고, 점차 러시아와 중국에 의해 양분되며 쇠퇴했다. 대상들의 발자취는 끊기고, 길 위의 도시들은 과거의 영화를 묻어둔 채 빛이 바랬다. 지금 향하는 막고굴은 한창 실크로드가 번성하던 시기 조성된 석굴사원으로, 절벽을 따라 몇 백개나 되는 굴들이 올망졸망 뚫려있다.
둔황은 타클라마칸 사막을 기준으로 하미, 투루판을 지나는 북로(北路)와 러우란, 호탄을 지나는 남로(南路)가 만나는 동쪽 기점이다. 둔황에서 나눠진 길은 사막의 서쪽 끝 카슈가르에서 다시 만난다. 그래서 이곳은 서역으로 떠나는 대상들의 출발지였다. 길을 나서기 전, 상인들은 석굴사원에 들러 여정의 안전을 빌었다. 그들은 다투어 지갑을 열고 부처님께 화려하게 채색된 석굴과 금과 보석을 박아 넣은 불상을 봉헌했고, 이곳에는 석굴의 대단지가 조성되었다.
막고굴 입장료는 엄청 비싸다. 이제 상인들 대신 관광객들이 돈을 뿌리고 간다. 역시 학생 할인은 안 해줬다. 막고굴을 관람하려면 반드시 가이드가 붙는다. 중국어와 영어 중 선택할 수 있다. 중국어를 못하는 나는 영어 가이드를 신청했다. 선택한 가이드 스케줄에 따라 입장 시간이 정해진다. 특히 영어 가이드는 시골버스처럼 간격이 길기 때문에 미리 홈페이지에서 예약을 하고 가는 편이 좋다. 같이 온 중국인 칭휘는 중국어 가이드를 따라 먼저 입장했지만, 나는 2시간을 밖에서 기다렸다.
시간 맞춰 입장을 하면 영상 2개를 보여준다. 이곳의 역사와 고고학적 가치 등을 담은 영상인데 45분이나 봐야 한다. '중국의 문화유산은 이렇게 대단합니다'같이 기름기가 잔뜩 껴있는 느낌이다. 보다가 재미없어서 등받이에 몸을 파묻고 잠이 들었다.
다리를 꼬고 자서인지 일어나 걸음을 디디니 다리가 저렸다. 석굴이고 뭐고 다 귀찮았다. 하지만 이미 지불한 입장료 220위안이 아까워 비틀비틀 일어나 사람들을 따라 셔틀버스를 탔다. 비로소 사막 가운데 위치한 막고굴에 도착했다.
굴 방들은 보호를 위해 기본적으로 다 잠겨있다. 가이드가 사람들을 이끌고 다니며 문을 따고 들어가 손전등을 비추며 그림을 보여주고, 간략하게 설명을 하는 식이다. 영어 가이드 신청자가 나랑 독일인 엘레나 밖에 없어서 거의 개인 가이드였다. 굴에 들어가 설명을 듣고 이어지는 질문과 답변. 재미없게 들리지만 꽤 재미있다. 특히 문을 따고 새로운 굴로 들어설 때. 175번 방이었나,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꽤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남쪽으로 낸 입구로 햇빛이 들어왔고, 석굴 가운데 위치한 불상을 비췄다. 그리고 반사된 빛은 벽과 천장의 벽화를 은은하게 비추고. 이런 곳에서 조용히 앉아 기도를 한다면 뭐든 이루어질 것 같았다.
다리가 아파질 때쯤 투어가 끝나고 우리는 닫힌 굴 앞을 조금 걷다가 시내로 돌아왔다. 둔황에서 꼭 보고 싶었던 명사산과 월아천을 보러. 시내에서 버스를 타고 20분 정도만 나가면 사막이 나오고, 그 중간에 솟아난 초승달 모양 오아시스인 월아천이 보인다. 신기하게 여긴 한글 표지판이 있다. 물론 120위안이라는 입장료도 있다.
월아천과 옆에 자리한 기와를 얹은 도교 사원이 오아시스와 너무 잘 어울린다. 아베 코보의 소설 「모래의 여자」가 생각났다. 그 여자의 집 마냥 지붕에 뽀얗게 모래가 쌓였다. 누군가 시지프스처럼 끊임없이 모래를 치우겠지.
입구에서 주황색 비닐로 된 신발 덮개를 빌릴 수도 있다. 중국인들은 거의 다 빌려서 신고 다니는 것 같았지만 정말 이상하게 생겼다. 샌들을 신고 가거나 차라리 맨발로 가는 편이 낫다. 낙타를 탈 수도 있지만 낙타들은 다 아파 보인다. 우리는 매표소를 통과하자마자 거짓말처럼 나타난 사막을 걸었다. 월아천을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기 위해 모래 언덕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모래언덕을 오르기는 정말 힘들다. 한 발짝 내딛으면 고운 모래 때문에 반발짝은 도로 미끄러진다. 모래가 미끄러지기 전에 다음 발을 빨리 내디뎌야 한다. 물 위를 걷는 것처럼. 반쯤 기어 올라간 모래산 꼭대기에 앉아, 1시간가량 남은 일몰을 기다리며 이야기를 했다. 엘레나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 줄 알았는데, 나랑 동갑이었다. 엘레나도 내가 더 어린 줄 알았단다. 또 할 말이 없어서 축구 얘기, 여행 얘기, 군대 얘기로 시간을 때웠다. 막상 일몰의 타이밍에는 구름이 껴서 해넘이는 못 봤다. 분명 맑았는데 서쪽 하늘에 갑자기 나타난 구름들. 내일은 흐리겠다.
다시 버스를 타고 호스텔로 돌아와 머리를 박박 감았다. 옷을 벗어서 털었더니 모래가 우수수 쏟아졌다. 도저히 안 되겠어서 싹 다 빨아버렸다. 그리고 우리는 마파두부와 파가 듬뿍 들어간 돼지고기 볶음, 맥주로 늦은 저녁을 먹었다. 너무 맛있어서 밥을 수북하게 쌓아 두 그릇 먹었다. 그리고 돌아와 바로 침대에 쓰러져버렸다.
하루 만에 너무 많은 일을 한 탓일까, 다음날은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늦잠도 자고, 어제 갔던 식당에서 고기완자와 볶음밥을 시켜먹었다. 그리고 낮잠도 자고, 저녁엔 슬그머니 나가 똑같은 식당에서 마파두부를 먹었다. 산책을 하다 들른 구멍가게에서 둔황의 특산품인 행피수를 샀다. 살구 껍질을 달인 물이라는데, 살구 주스에 물 탄 맛이다. 계속 넘어가는 맛이라 몇 컵을 사마셨다.
#15 투루판행 야간열차
느지막이 일어나서 칭휘와 함께 둔황 박물관에 가보려고 걸었다. 벌써 덥다. 투루판은 더 더울 텐데. 사막 한가운데 있는 둔황은 끊임없이 모래가 날린다. 날씨도 더운데 모래가 날려서 살갗에 붙는다. 차라리 습한 게 나은 것 같기도 하다.
박물관은 여권만 가져가면 공짜로 티켓을 준다. 전시물이 그다지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한국어 설명이 같이 있어서 그걸 읽는 게 재미있었다. 분명 한국말인데 굉장히 색다른 어휘를 구사하고 있었다. 아마 어휘력이 풍부한 사람이 쓴 듯하다.
칭휘와 둔황에서 마지막 밥은 어디서 먹을까 고민하다가 역시 매일 갔던 쓰촨 식당에 들어가서 밥을 먹기로 했다. 칠리새우 같은 요리였는데, 이것만큼 맛있는 게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통통한 새우와 같이 곁들여진 땅콩, 오이까지 조화가 완벽했다.
만족스럽게 밥을 먹고 기차를 타러 둔황 역으로 향했다. 올 때는 정보도 없어서 택시를 타고 왔지만 갈 때는 칭휘를 따라 버스를 탔다. 칭휘와는 여행 루트가 우연히 같아서 투루판, 우루무치, 이닝까지 같이 가기로 했다. 든든하다. 청두에서 의대에 다닌다는데, 이제 이 여행을 마치고 다시 청두로 돌아가면 병원에서 인턴이 시작된다고 했다. 어리숙하지만 귀여운 면이 있는 친구다.
또 야간 침대열차다. 이번엔 조금 낫다.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투루판까지는 13시간. 같은 칸에는 나와 칭휘, 중국인 여자애 4명이 타서 북적북적했다.
"안녕하세요"
"아... 니하오?"
한 명이 한국말로 말을 걸어왔다. 뿔테 안경을 쓴 궈씨아오. 계속 짭짤한 간식을 권하면서 맛있어요?라고 물어봤다. 네, 하오츠입니다, 나는 이것 하나만큼은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다.
옆칸에는 프랑스인 부부가 딸 셋을 데리고 탔는데 꼬마들이 계속 우리 칸으로 놀러 왔다. 그런데 문제는 애들이 너무 귀여웠다. 그동안 영화에서 주워들은 몇 마디를 주워섬겼다.
"쌀류, 싸봐? 쥬 마펠 레오나르-도" (프란체스카가 지어준 내 이름이다 Leonardo)
애기들 이름은 엠마, 마농, 니나.
한참을 우리와 놀다가 엄마가 데리러 왔다.
"오봐 마드모아젤!"
"오봐 무슈!"
아이들은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고 가버렸다. 발음까지 귀엽다. 얘들도 투루판에서 내린다는데, 또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이젠 침대열차의 딱딱하고 좁은 침대에서도 잘 잔다. 휴대폰 지갑은 베개 밑에 넣고, 보조 배낭은 머리맡에. 그리고 곱등이처럼 몸을 구부리고 덜컹거리는 소리에 익숙해진다. 그동안 기차는 황무지를 가로질러 달려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