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비단길 이야기-6
#16 빨래를 합시다
침대 기차를 타면 승무원이 자리로 표를 걷으러 온다. 그때 표를 승무원이 맡아두었다가 승객이 내릴 때가 되면 돌려준다. 아마 자기가 내릴 곳을 모르고 자는 사람들을 위해 체크를 하는 시스템인 것 같다. 승무원이 자리로 와 다리를 무심하게 툭 치는데 신기하게 눈이 번쩍 떠진다. 일어나서 주섬주섬 내릴 준비를 한다. 어젯밤의 친구들도 다 같이 아침인사를 하러 왔다.
"Bonjour!"
나탈리와 니콜라스, 아이들의 부모님과도 인사를 하고 투루판에서의 일정에 대해 잠깐 얘기를 나눴다. 사실 다들 생각하는 곳은 비슷비슷하다.
이제 신장위구르 자치구에 들어왔다. 칭휘말로는 신장에서 정치적 발언은 금지되어 있다고 한다. 확실히 골목 건너 골목마다 경찰서가 있고, 공안들은 수시로 지나가는 차들을 세우고 검문을 한다. 분위기 때문인지 나도 긴장이 된다.
투루판 역은 시내에서 조금 떨어져 있다. 시내로 가려면 택시나 버스를 타야 한다. 역 출구를 나와 1블록을 직진한 다음 오른쪽으로 1블록 더 걸으면 왼편에 버스정류장이 있다. 역에서 나오면 택시기사들과 투어호객꾼들이 달려들지만 상관 말고 걸으면 금방 버스정류장이 나온다. 버스비는 20위안. 시내까지는 50분 정도 걸린다. 택시를 타면 100위안 넘게 생각해야 한다.
시내 진입로에서 검문이 있는데, 마치 국경이라도 통과하는 것 같다. 트렁크를 열고 짐을 검사하고, 보닛까지 열어본다. 그리고 승객들을 다 내리게 한 다음 신분증을 하나하나 검사했다. 우리가 탄 버스에서 나만 외국인이라 따로 불려 나가 몇 가지 뻔한 질문을 받았다.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들어온 목적은? 휴대한 책 종류는? 직업은?"
"워쓰 여우커..."(저는 여행자인데요)
여기 공안들은 일반 경찰과는 달리 다들 헬멧을 쓰고 각진 나무 몽둥이를 들고 다닌다.
날씨는 소문대로 정말 덥다. 해발고도가 해수면보다 200미터나 낮기 때문에 열이 고인다. 아직 5월이지만 오늘 기온은 38도. 한여름에 50도는 예사라며... 그나마 시원할 때 와서 다행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시내를 걸어 호스텔을 찾았다. 둔황과 투루판의 차이는 엄청났다. 피부로 바로 느낄 수 있다. 거주민의 80퍼센트가 위구르 인이라는데, 정말 그렇다. 중국에서 중동의 어느 도시로 갑자기 떨어진 기분이다. 1시간을 걸어 호스텔에 도착해 체크인을 했다. 안마당에는 큰 개가 있고, 믿을 수 없지만 엠마, 마농, 니나도 같이 뛰어놀고 있었다. 아침에 기차역에서 헤어진 지 2시간밖에 안됐지만 너무 반가웠다. 다들 우리를 보고 달려와 반겨줬다.
호스텔은 엘레나가 추천해준 곳인데 포도넝쿨이 무성한 안마당도 있고 토끼장도 있다. 내가 배정받은 8인 도미트리 내에는 에어컨이 없어서 늘 창문을 열어두는데, 파리가 자꾸 들어와 방 안을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는지 2층으로 배정받은 내 침대 옆 창틀에는 파리 시체가 까맣게 쌓여있었다.
샤워를 하려니 남은 속옷이 없었다. 샤워를 잠깐 미뤄두고 빨래부터 해야했다. 손빨래를 마치고 물기를 짜 빨랫줄에 널었다. 덥고 건조한 이곳은 빨래의 고장이다. 그늘에 널어둔 빨래가 3시간 만에 바짝 말랐다. 기분이 좋았다. 내친김에 그동안 미뤄뒀던 겉옷도 다 빨았다.
저녁에는 쾌적한 수준은 아니지만 그래도 열기가 많이 식는다. 엠마네 부모님과 안마당에 앉아 얘기를 했다. 원래 파리에서 살았는데, 아이들을 도시에서 키우기 싫어서 프랑스의 해외 영토인 인도양의 레위니옹행을 택했다고, 결혼 직후 1년간 세계일주를 하면서 아이를 키우고 싶은 장소를 살펴봤다고 했다. 그거 완전 내 꿈인데, 이 분들 말씀을 열심히 들었다.
#17 나는 요르고스
투루판은 대중교통이 잘 안 갖춰져 있기 때문에 근교의 유적들을 보려면 차를 빌려야 한다. 하지만 1명이나 2명이 차를 빌리면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호스텔에서 같은 방면으로 갈 사람들을 모아 차를 빌려준다. 안마당 한편의 화이트보드에 가고 싶은 곳과 인원, 날짜를 적고 인원이 모이기를 기다렸다.
나는 화염산, 고창고성, 투유크 마을을 가는 코스를 골랐다. 6명이서 나눠냈기 때문에 1인당 렌탈비는 80위안. 다른 사람들 때문에 베제클리크 석굴도 들러야 했지만, 나는 들어가지는 않았다. 서유기에 나오는, 불이 이글거리는 화염산도 기대했는데, 화염이랄 것도 없었다. 모래바람이 부는 날이라 그런지 붉은 산이 뿌옇게 보였고, 심지어 이글거리게 덥지도 않았다. 밖에서도 산 능선이 다 보이는데, 산 근처를 철조망으로 막아두고 입장료를 받는 것도 우스웠다. 그래서 굳이 들어가지는 않았다.
이어 도착한 고창고성도 실망이었다. 입장료만 70위안인데, 셔틀버스 비용 35위안을 더 내야 했다. 고창고성은 넓기 때문에 무조건 셔틀을 타야 된다며 돈을 추가로 받았다.
"이거 완전 도둑놈들인데?"
같은 투어 프로그램 참가자인 그리스인 요르고스가 불만을 말하자, 다들 동조했다.
"맞아, 중국인들은 돈 벌 줄 아는 거야"
고창고성은 너무 커서 성이라는 느낌도 안 들었다. 황무지에 흩어진 돌덩이를 찾는 느낌이랄까, 어쨌든 기대가 커서 그런지 실망도 컸다. 나는 신청하지 않았지만, 반대 방향의 교하고성을 갔다 온 사람들은 다들 그곳을 추천했다. 저녁에 모여 투어 프로그램 이야기를 하며 서로 사진을 보여주고 비교를 해봤다. 교하고성은 조금 더 건물들도 밀집돼있고 유적 느낌이 살아있다.
투유크 마을은 민속촌 같은 느낌인데 여기도 파리가 엄청 많다. 당나귀와 닭이 길에 돌아다녀서 인 것 같다. 투유크 마을을 둘러싼 붉은 황토산이 인상적이었지만 투유크 마을의 석굴 유적인 천불동으로 가는 길은 왜인지 모르겠지만 막혀있었다.
투루판 근교에는 갈 만한 곳이 많지만 점점이 흩어져있고, 또 대중교통으로 가기도 힘들기 때문에 가고 싶은 곳을 잘 골라야 한다. 하나하나 입장료도 있으니, 다시 갈 곳을 고를 수 있다면 포도구, 투유크 마을, 교하고성 정도를 고를 것 같다. 전통 수로 박물관인 카레즈나 베제클리크 석굴에 갔다 온 사람들도 다 돈만 버렸다고 욕을 했다.
투어를 마치고 호스텔로 돌아와 칭휘와 함께 저녁을 뭐 먹을까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엠마가 쪼르르 달려왔다.
"레오나르도, 저녁 같이 먹자!"
"네, 괜찮으시면 저희랑 저녁 같이 먹을래요? 아이들도 같이 먹고 싶어 하는데."
나탈리와 니콜라스가 우리에게 양해를 구했다. 곁에서 지켜보던 요르고스와 그의 여자친구 스테파니도 동행하게 됐다. 신장닭볶음은 어제도 먹었지만, 한번 더 먹기로 했다. 칭휘를 앞세워 우르르 식당으로 몰려 가서 원탁에 둘러앉았다. 이상한 조합의 대가족 같았는지 식당 사장님이 우리 사진을 찍었다.
그리스인 요르고스는 멋있는 형님이었다. 노동운동을 한다는데, 한국의 민주노총에서도 잠깐 일을 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의 노조 실태 비슷한 주제에 대해서 얘기를 시작했는데, 배경지식도 없고 잘 들리지도 않아서 반은 흘렸다. 그러면서 다 알아듣는 척은 했지만.
"현진, 그런데 왜 저 꼬마들이 너를 레오나르도라고 불러?"
요르고스가 맥주를 따르며 물었다.
"레오나르도는 시안에서 만난 이탈리아 친구들이 지어준 유럽식 이름이야, 혹시 내 이름을 발음하기 불편하다면 레오나르도라고 불러도 좋아"
"아하, 그런데 미안하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해. 나도 한국에서 일하며 사람들이 다들 자기를 마이클, 제인과 같이 영어 이름으로 소개했는데, 그럴 필요 없잖아. 너는 현진이라는 이름이 있고, 그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 너를 마주한 사람들의 의무야. 그 사람들이 발음하기 불편하다고 너가 그들에게 맞출 필요는 없지. 요르고스라는 내 이름도 발음하기 힘들어. 하지만 나는 조나스라던지, 그런 줄임말 같은 이름을 쓰지는 않지. 내가 요르고스이듯, 너는 현진이야"
그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나는 요르고스를 형님으로 모시기로 했다.
정말 즐거운 저녁이었다. 막내 니나는 젓가락을 잘 못써서 손으로 음식을 집어먹었는데 엄마 아빠는 신경도 안 썼다. 음식물이 묻은 턱이나 옷을 닦아주지도 않았다. 유럽식 방생이구나 생각했다. 밥을 다 먹고 호스텔로 돌아와 요르고스가 가져온 와인을 까고 맥주를 돌렸다. 아이들은 호스텔 주인집 애들과 안마당에서 어울려 놀다가 자러 가고, 우리는 빈 병을 쌓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새벽에는 보슬비가 내렸다. 안마당의 포도넝쿨 위로 톡톡 떨어지는 빗소리가 듣기 좋았다.
#18 사막의 미라들
어제 자기 전 엠마와 약속을 했다. 아침에 다른 도시로 떠나는 엠마를 일찍 일어나 배웅해주기로. 어찌어찌 8시에 눈이 떠졌다. 머리가 아팠다. 와인이랑 맥주 조합이니, 당연한 결과다. 새벽에 술이 거나해져 요르고스와 객기를 부리며 고량주를 사러 가자고 했던 게 떠올랐다. 그 생각이 스치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래도 고량주는 안 마신 덕에 제때 일어나 엠마네 가족과 같이 아침을 먹었다. 나탈리와 니콜라스가 짐을 다 챙겨 나올 때가지 엠마와 마농을 번갈아가면서 업고 있어야 했다. 아이들이 그렇듯 헤어지는 것이 섭섭한 눈치였다. 사실 나도 아쉬웠다. 하지만 카자흐스탄이나 키르기스스탄 어디서든 다시 만나자며 또 약속을 했다. 여행 루트가 비슷한 엠마네 가족과는 왠지 다시 만날 것 같은 강한 느낌이 들었다.
엠마를 보내고 다시 침대로 기어들어가서 잤다. 배웅은 배웅이고 잠은 잠이지...느지막이 일어나서 안마당에 앉아 있었는데 어떤 아저씨가 말을 걸었다. 카고 바지에 밀짚모자를 쓰고 키는 190은 돼 보이던 아저씨. 여행하면서 처음 만난 한국인이었다. 한국말로 말하는 게 정말 오랜만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입에 말이 붙지가 않아 발음이 새는 느낌이었다.
아저씨가 점심이라도 같이 먹자 해서 따라나갔다. 4개월째 여행하고 계신다고 했는데, 그분도 중앙아시아로 가고 싶다고 하셨다. 그래서 내가 알고 있는 정보를 몇 가지 가르쳐 드렸는데, 정말 고마워하셨다. 중앙아시아 국가들을 여행하는데 필요한 비자나 국경 정보도 모르고 계시던 아저씨가 조금 걱정됐다.
중국은 신기하게 유적지 입장료들은 비싼데 비해 박물관은 거의 공짜다. 투루판 박물관도 역시 무료입장이었는데, 꽤 볼거리가 많았다. 특히 타클라마칸 사막의 건조한 기후 때문에 원형 그대로 보존된 아스타나 고분의 미라들은 흥미로웠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말 이 사람이 살아있을 때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볼 수 있다. 머리색과 피부톤까지. 특히 소름 돋게 그대로인 손톱은 손톱깎이로 깎으면 톡 하고 경쾌하게 깎일 것 같았다.
박물관에서 돌아와 호스텔에서 쉬었다. 칭휘는 다른 중국 친구들을 데리고 양꼬치를 먹으러 나가고, 나는 별로 내키지가 않아 안마당에서 책도 좀 읽고 일기도 쓰고 빨래도 했다. 내일은 투루판을 떠나 우루무치로 가는 날이다. 이제 카자흐스탄으로 넘어갈 궁리를 해봐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