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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ICA Apr 26. 2020

바티칸에서 먹는 피자와 환타

영화 두 교황 The Two Popes

영화 ‘두 교황’을 보고 나서 아르헨티나 항공권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출국일자는 내년 2021년으로 놓고, 어느 노선을 선택하는 것이 장거리 비행에 취약한 나에게 더 적합할지 이리저리 굴려보았다. 스카이스캐너에서 페이지를 바삐 왔다 갔다 해보았는데, 아르헨티나 여행은 비즈니스석 아니고선 답이 없을 넘나 멀고 먼 지구 반대편인 것이다. (긴급 저축에 도입해봐야겠네)



러블리한 프란시스코교황님


난 프란치스코 교황을 꽤나 흠모해왔다. 그의 언행은 몹시 취저 인터라, 작년 바티칸 방문 시 그의 부재가 솔직히 엄청 아쉬웠었다. 들어서기 전부터 마음을 들었던 성 베드로 성당에서 그를 멀리서라도 보았으면 얼마나 행복했을지. 그렇지만 두 교황 영화에 나오는 바티칸 곳곳 장면을 보며 갔다 온 보람을 뽑은 기분이 들어 뿌듯했다.

이 영화는 종교영화가 아닌 보수와 진보, 인류애, 정의, 그리고 자기 자신을 용서하는 용기에 대한 영화다. 그 과정이 두 명의 명배우(Jonathan Pryce, Anthony Hopkins)의 안정된 연기로 촘촘하게 채워진다. 대부분의 장면에 적절한 음악과 빛이 더해져 아름답고 따뜻하게 보여서 더욱 좋았다.



sooooooooo lovely


성 베드로 성당 화장실에서 댄싱퀸을 흥얼거리고 작은 갑질도 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사는 주교, 소소한 매력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 우리의 프란치스코.

 단단하게 살아왔지만 피자와 환타(이태리 환타 맛 기깔난거 RGRG)를 때리고 약간의 관종력을 뽐내며 인싸 교황을 즐기는 베네딕토.

 이 둘의 조합은 레미제라블의 장발장과 쟈베르만큼이나 강력한 케미였다. 두 분 다 어쩜 두상도 이리 이쁘 신지들.

콘클라베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는데, 영화에서 오밀조밀 생동감 넘치게 보여줘서 흥미로웠다. 작은 소품 하나하나 모두 충분히 공을 들인 흔적이 곳곳에 드러났다. 감독님 쒠쓰쟁이!




마지막 두 교황님들이 함께 축구 관람하는 장면은 영화 전체의 느낌을 고스란히 압축하여 보여주는, 근래 넷플릭스를 통해 관람한 영화 중 가장 인상적인 엔딩이었다.



과거에 내가 한 잘못과 실수를 포스트잇에 하나씩 적어 펼쳐놓으면 그 길이가 최소 한강을 건너고도 남을 텐데. 나는 대부분의 시간에 그 모든 것들을 잊고 살고 있다. 이것은 아마도 내가 유달리 뻔뻔해서라기보다는 평범하기 때문일 것이다.

 평범한 인간으로 살아가려면, 무언가 잘못했을 때 빠르게 인정하고 상대가 있는 경우 충분한 사과를 하고 뉘우치고 반성하고 그로 인해 배운 것을 토대로 앞으로의 단도리를 한 다음, 가능한 그 잘못에 대해서는 잊고 사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짐작조차 할 수 없는 평범하지않은 두 거인의 대화를 보며 상대적으로 가벼운 평범한 인생에 그저 감사할뿐이었다. 난데없는 역병으로 온 세계의 템포가 느려지고 있는 지금, 평범함에 대한 만족 게이지는 역대급으로 올라차 있다.


이 철이라곤 하나 없이 호기심만 많은 푼수 같은 나는, 과연 2021년에 부에노스아이레스에 가게 될랑가 몰라.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면,
우리 모두의 잘못이다



작성일자 : 2020 3 11


두 교황 The Two Popes, 2019

드라마  미국, 영국, 이탈리아, 아르헨티나

(감독)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출연) 조나단 프라이스, 앤서니 홉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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