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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선 Oct 23. 2024

불행한 건 아닙니다


포기하는 삶. 그건 바로 나의 삶이다. 나만 포기하면 모두가 편해진다.


결혼을 해서는 직업을 포기해야 했다. 아이를 낳고선 나 자체를 포기했다. 나는 없고 아이들만 있었다. 나의 삶보단 우리 집 생활비 전체를 책임지는 남편이, 옹알이를 하고 걸음마를 하다 이젠 학교에 다니게 된 아이들이 중요했다. 결혼한 지 10년, 어느새 나는 없고 그냥 아내, 엄마만 존재한다.


포기를 하는 과정은 괴로움 그 자체였다. 이 세상에서 나를 지워버리는 일처럼 느껴졌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보고 싶은 것까지도 포기하며 나를 지워갔다. 울면서 매일의 나를 지운다. 그럼 나는 사라지고 대신 아이들이 커간다. 그 예쁜 얼굴로 나를 보고, 예쁜 손으로 나를 잡고, 예쁜 발로 나와 함께 걸어준다. 아이들은 나 대신 빛을 얻어 반짝거리며 성장한다. 그런 아이들을 보고 나는 다시 포기를 선택한다. 나를 포기하는 것은 행복이자 고통이다.

지금 모든 것을 포기한 나는 위태롭다. 나약하다. 매일 커다란 괴로움이라는 파도를 마주한다.


울증과 조증이 번갈아 나타나는 양극성장애. 쉽게 말해 조울증이다. 나는 울증과 조증 사이의 큰 파도 위에 서서 약으로 간신히 버티는 중이다. 병원에 방문하는 날이 늘어날수록 약은 증량되고 있다. 아침에 한번, 저녁에 한번. 약을 먹으면서도 정말 괜찮아지고 있는 건가 싶지만 하루를 보내고 나면 아 하루를 잘 마쳤다 싶다. 한없이 나약한 나는 약에 의존해 하루하루 버틴다. 포기했다 포기했다 하지만 나는 아직 나라는 얇은 끈을 놓지 않고 있다.


포기에도 용기가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나는 용기 있게 매일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용기 있게 엄마라는 내 자리에서 할 일을 하고 용기 있게 병원에 가고 꼬박꼬박 잊지 않고 약을 먹는다. 포기한 삶이라고 하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있다.

내 인생이 불행한 건 아니다. 내 울타리 안에서만큼은 부지런한(그렇다고 생각한다) 나는 불행할 틈이 없다. 포기했을지언정, 슬플지언정 어여쁜 아이들의 얼굴을 보면 행복이 잔뜩 채워진다. 나는 행복하면서도 슬픈 양극성장애 환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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